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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 10년의 시간

by 요아킴
00503286_20161229.JPG 세월호의 기억



딱 10년 전, 2014년 4월 16일 아침이었다. 당시 마산에 근무하던 내가 출근을 하니 책상에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알 수 없게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고 다만 “생일 축하해”라는 말이 쓰인 리본만 하나 묶여있었다. 내 생일이 분명하기는 했지만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다니 황당했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을 해봐도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꽃을 보낸 화원 이름이 있었다. 마산 현지의 꽃집이었다. 그리로 전화를 하니, 서울에서 누군가 꽃 배송 전문회사로 주문을 했고, 자기들은 주문 내용대로 꽃다발 배달만 했다면서 최초 주문자가 누군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의 꽃배달 전문회사로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서울의 꽃배달 회사로 전화를 하니, 주문자가 비밀로 하라고 했다면서 가르쳐주기 어렵다는 답을 했다. 대충 답은 나왔다.


집으로 전화했다. 처음에는 시치미를 뚝 떼던 집사람이 한순간 웃음을 터뜨리며 자백했다. 그러면서 혹시 어떤 여자가 보냈는지 궁금하지 않았느냐면서 장난을 쳤다. 그렇게 생일날 아침의 작은 소동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속보가 떴다. 세월호의 첫 뉴스였다.


지사장실에서 부장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뉴스를 시청했다. 평온한 바다에 꽤 큰 배가 약간 기울어져 있고 주변에는 작은 배들이 분주히 오고 갔다. 공중에는 헬리콥터가 배 위를 부지런히 낮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별문제가 아니겠다, 이런 대낮에 저렇게 평온한 바다에, 육지에서도 가깝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고 수습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점심시간이 되면서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승객을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를 봤다.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저 봐, 별문제 아니잖아. 우리나라 수준에서 저 정도 사고는 금방 수습이 되잖아.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후 나른한 사무실에 또다시 속보가 울렸다. 전원 구조라는 소식은 오보였고, 지금 배는 곧 침몰할 위기에 빠지는데 4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은 아직 배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떤 비극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


2015년 1월, 새로운 발령지가 안산이었다. 사무실이 단원구에 있었고, 단원고등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해가 바뀌었지만, 안산의 공기는 무거웠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단원고등학교 주변을 몇 번 둘러봤다. 학교는 뭔가 큰 어둠에 싸인 듯 무거운 기운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2014년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전한 사고 당시의 이야기는 참 슬펐다. 안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울고 있었다. 나도 같이 울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것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 큰 배가 왜 갑자기 기울었고 왜 아무도 배 속의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없다. 배에 불이 난 것도, 파도가 높이 친 것도, 무슨 물체가 와서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왜 멀쩡한 배가 넘어갔는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배 속에 있는데 멀뚱멀뚱 보기만 하고 구조하지 않았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안산에 있던 분향소에 갔다. 아이들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 줄 수 없었다.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차 뒤에, 가방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아직도 본다. 세월호는 말 그대로 세월을 넘어서 우리 마음속에 있다. 언젠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의문이 다 풀릴 때까지. 세월호의 비극과 생일이 겹치는 내게는 그날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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