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 이야기 9

예수님도 등을 돌린 자유화의 현실

by 요아킴

일렉트로브라스를 나온 일행은 점심식사를 위해 미니버스에 올랐다. 김명자 교수와 안현필 교수는 버스에 오르며 서로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뒤따라 가던 최용석도 두 교수의 분위기를 느꼈다. 그래, 지금까지는 꽤 잘 되고 있다.


만난 사람들과 기관들 대부분이 자유화와 민영화에 부정적이었다. 노조 측이 섭외한 사람들과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민영화 실패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한전을 통해서 방문지로 결정한 에프리 마저 구조개편 자체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앞으로 또 어떤 곳을 가고 누구를 만날지는 정확히 몰라도 이대로만 가면 어쩌면 우리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세 사람은 서로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렉트로브라스 방문을 마친 연구단 일행은 정부가 섭외한 브라질전기에너지기구(ANEEL)을 방문하기 위해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로 향하기 전에 약간의 시간이 남아서 코르코바두산 정상에 있는 그 유명한 예수상을 둘러보기 위해 미니버스로 이동했다. 리우를, 아니 브라질을 상징하는 예수상답게 산 아래부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이미 붐비고 있었다.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는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약 7부 능선쯤에서 일행을 내려주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야 했다. 7백 미터 정도 되는 산이니 7부 능선이면 3백 미터가 조금 넘는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최용석은 원래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높은 곳을 올라가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이었지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조금씩 가빠지는 숨결. 괜히 왔나 싶었지만,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여기를 안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냥 참고 산을 올랐다. 같이 오르던 일행 중에 미국에서 날아온 유진 코일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너무나 가뿐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유진, 당신은 등산 참 잘하네, 나이에 비해서 말이야. 아니,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고.”


“허허,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내가 건강한 것 같아. 비결이 뭔지 알아?”


“헉헉... 그래, 비결이 뭐지? 특별한 운동을 하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물어보는 최용석에게 유진 코일은 이렇게 답했다.


“요가야, 요가. 난 벌써 20년째 요가를 하고 있거든. 그게 내 비결이지.”


아, 그랬구나. 머리는 하얗게 세고 몸은 깡마른 유진이 요가 전문가였구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유진 코일이 연구단과 함께 브라질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최용석 때문이었다. 지난해에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유진을 처음 만났다. 최용석은 처음 참석해 본 ILO 총회에서 크게 눈을 뜨게 됐다. 노동에 대한 새로운 세계를 본 것이다.


ILO는 공식적인 유엔의 산하 기구이면서 동시에 기본적으로 노사정 3차 협의기구이다. 노동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각 가맹국의 노동조합, 사용자, 정부의 대표들이 모여서 노동과 관련된 국제적 규범을 결정하고 또 동시에 노동에 관한 현안을 토론하는 마당이다.


혹자는 이를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한풀이하는 마당을 열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아무튼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논제를 다룬다. 제네바에 있는 ILO 본부에서는 매년 6월 첫째 주부터 3주간 총회가 열리며, 2003년 총회에 최용석은 한국노총 대표단의 한 명으로 참석했다. 여기에서 유진을 만났다.


유진 코일은 브라운대학 경제학과를 나오고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경제학자였고 잠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했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런데 주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혼자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어서 일종의 반란을 일으켰단다. 자유주의 계량경제학이 아닌 다른 내용을 강의했다. 그러자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러고 나서는 단독으로 일종의 컨설턴트가 됐다고 했다.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유진은 그때부터 미국의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과 손잡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자본주의의 종말을 부르짖는 광야의 세례 요한과 같은 고독한 선지자가 된 것이다.


ILO 총회의 어느 세션에서 유진의 토론을 듣고 최용석은 그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친구가 됐다. 나이는 40살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뭐 미국식의 편리함이랄까,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브라질행에 그를 불렀다. 유진은 기꺼이 브라질까지 왔다.


사실 유진을 부른 이유는 그가 룰라 대통령의 경제 참모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공동연구단의 내용과 활도 계획을 설명하지 유진은 먼저 제안했다. 자기도 일정에 맞추어 브라질로 올 것이며 가능하다면 브라질 정부의 핵심 인사 또는 가능하다면 룰라 대통령도 연구단과 만나게 해 주겠다고. 안 부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불행하게 룰라 대통령과는 아예 일정을 맞추지 못했고 정부 고위 관계자도 역시 면담에 실패했다. 대신 그는 연구단 일행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전력공기업 민영화의 부당함과 실패 사례, 그리고 실패 원인 등을 간간이 설명했다. 구체적인 자료와 논거를 들이댔기에 연구단 누구도 이를 반박하지 못했다. 이근석 단장은 오히려 유진과 대화하며 많은 것을 배우는 눈치였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산 정상의 예수상은 거대했다. 코파카나바 해변을 향해 두 팔을 벌린 공식 이름이 구세주 그리스도인 38미터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예수상은 모든 근심을 다 내게 가지고 오라는 듯한 자세로 멀리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처럼 내부로 올라가는 전망대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브라질의 랜드마크를 보는 기분은 즐거웠다.



사실 구세주 그리스도상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예수님이 내려다보는 앞쪽 방향은 리우에서도 유명한 부자 동네인 데 비해 등 뒤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민촌인 파벨라라는 동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상을 처음 계획했던 사람들이 구세주 그리스도 동상이 살인, 마약, 매춘 등 온갖 범죄가 들끓는 빈민촌에 등을 돌리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진짜 살아 있었다면 오히려 방향을 반대로 하고 서 있었을 것이지만. 이런 농담에 브라질이 처해 있는 현실이 그대로 묻어났다.


“용, 여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어때? 난 여기 여러 번 왔는데 참 괜찮아 보여. 저기 반짝이는 물결들을 보고 있으면 속이 참 시원하거든.”


예수상 발아래에 선 유진이 최용석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일행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사진 찍기에 모두 바빴다.

“그래, 경치는 참 좋아. 그런데 좀 가파른 느낌이 들어서 아찔하기도 하네. 사진으로만 보던 여기에 오니 좋기는 좋아.”


“그런데 말이야, 지금 한국 정부의 생각은 뭐지? 전에 네가 말했듯이 전체적으로 전력설비를 다 외국에 팔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경쟁과 민영화, 뭐 그런 수준인가? 나는 아까 일렉트로브라스와의 토론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어.”


유진은 시원한 바람에 흰머리를 날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강렬한 햇빛에 미간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글세... 정부가 어디까지 가려는지는 우리도 잘 모르겠어. 당초에는 국제금융위기를 이기기 위해 기간산업을 일부 해외에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금융위기가 조금 잠잠해지자 전력산업의 미래 투자를 위해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말도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경쟁으로 전기요금을 낮추겠다는 말도 하고... 그때그때 정부의 입장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물론 어느 경우가 돼도 우리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다 반대이고.”

유진을 바라보며 최용석이 대답했다.


“내가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하나 있어. 일단 자본주의 사회라는 건 믿을 게 못 된다는 거지. 자본주의의 뜻이 뭐겠어? 돈을 가진, 자본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그 세상은 결국 약자나 사회정의나 뭐 그런 우리가 생각하는, 당연히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은 모두 돈 다음에 오는 거야. 미국을 봐. 가장 전형적인 사례야.”


유진의 뜻밖의 말에 최용석이 물었다.

“그럼 당신은 사회주의자? 아니면 무정부주의자? 하하. 좀 헷갈리네.”


“무슨 이름으로 나를 불러도 상관없지. 나는 그저 이 세계가 조금은 더 서로를 배려하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이지.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아.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 즉 개인의 성공이 최고인 그런 세상은 아니라는 말이지. 그래서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힘들었던 거야. 아, 여기에서 말하는 경제학이란 지금 주류라고 하는 그런 계량경제학을 말해. 수요가 어쩌고 공급이 어쩌고 모두를 시장에 맡기자는 그런 무책임한 헛소리만 하는 경제학 말이야.”


“나도 학부에서 경제학을 했는데, 사실 조금 맛만 본 거지. 제대로 된 공부는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지만. 지금 유진이 말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경제학도 있나?”


따가운 햇볕에 얼굴을 찌푸리며 가늘게 눈을 뜬 유진이 최용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물론 있지. 미국에서는 좀 천대받는 그런 경제학. 나중에 자세히 말해 줄게.”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따사한 햇살이 뺨을 달구는 나른한 오후, 두 사람의 경제학 대화는 예수상을 둘러본 일행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모여들면서 끊어졌다.


이날 오후 늦게 공항으로 이동한 일행은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리우에서 두 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 비행으로 공동연구단은 세계 최대의 인공 수도인 브라질리아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시간에 도착했다.


1956년 새로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된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해안에만 몰려있는 브라질의 도시를 내륙으로 옮겨서 균형 있는 국토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브라질 내륙 깊숙한 고원지대에 새 수도 건설을 발표했다.

계획을 발표한 지 4년 만에 브라질의 수도라는 뜻의 브라질리아 건설을 마무리하고 상파울루에서 모든 행정기관을 옮겨 왔다고 했다. 사실 브라질은 남미 대륙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라의 북쪽부터 내륙의 상당 부분까지 열대지방이고, 특히 아마존강이 뱀처럼 이리저리 휘어지며 흐르고 있어서 국토 개발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아마존강 유역은 지구의 허파로 불릴 정도로 우거진 열대우림지역으로 인류의 생존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마치 늪과 같이 흐느적거리는 토질 때문에 농사를 짓기에도 힘들고 수로로 물자를 수송하기에도 힘이 들어 브라질 개발에 큰 장애를 주고 있다. 따라서, 브라질의 주요 도시는 모두 해안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는 브라질의 경제와 국토 개발에 큰 한계였다.


도시공학자 루시우 코스타는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따서 인공 수도를 설계했다고 하는데, 기존의 주요 도시들이 포르투갈 풍이었는데 비해 브라질리아는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현대화된 도시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브라질리아는 황량한 고원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도시 주변의 풍광이나 낭만을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는, 말 그대로 행정도시의 모습으로 최용석에게 다가왔다. 훗날 출장으로 방문했던 터키의 앙카라와도 어딘가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공동연구단은 브라질의 에너지규제기관인 ANEEL을 방문했다. 규제기관의 공무원들은 전력산업 자유화에 대해 모호한 입자이었다. 사실 공무원들이 무슨 입장이 있었을까. 정권을 장악한 정치인들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공무원이 아닌가. 이들은 왜 자유화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민영화를 전제로 했던 자유화의 결과가 왜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영혼이 없다는 공무원들을 뒤로하고 연구단은 떠났다.


공동연구단의 해외 현지실사 의견을 처음 꺼낸 사람은 이근석 단장이었다. 2003년 가을부터 시작된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개혁특별위원회 산하의 한전 배전분할공동연구단은 한마디로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다. 한전을 분할하고 경쟁시키겠다는 생각은 최종적으로 한전을 완전히 민영화하겠다는 최종 목표를 정해 놓은 상태에서 시작됐다. 영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이 정책은 주로 영미권 국가를 중심으로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로 유사한 형태로 번져나갔다.


영국이 시작한 방법은 매우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점점 비싸지는 석탄 대신 북해에서 솟아나는 해저의 천연가스를 발전소 연료로 사용하면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를 위해 영국, 그중에서도 잉글랜드 지방의 기존 석탄발전소를 모두 없애야 했다. 그 방법으로는 발전소들을 하나씩 시작에 내놓고 매각해 버리고, 그 빈자리를 값싼 천연가스 발전소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당시 석탄발전소는 모두 국영이었기에 이들을 헐값에 민간에 매각하고, 새로 짓는 발전소 역시 민간 투자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었다. 영국 정부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낡고 비싼 석탄발전소를 시장에서 없애고 동시에 건설비와 운영비가 적게 드는 신형 가스발전소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전력산업구조개편의 핵심이었다.


전기를 고객들에게 공급하는 부문인 배전과 판매는 원래 정부 산하 전력청의 독점산업이었지만 영국 정부는 이 역시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눠 민간에게 매각했다. 그림은 완벽했다. 발전소들은 더 싼 가격에 전기를 생산하도록 서로 경쟁시켰고, 이 전기를 사서 고객들에게 공급하는 배전과 판매회사들도 민영화해서 서로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발전과 판매 양쪽을 모두 경쟁체제로 만들었고, 더 중요한 것은 각 발전소와 판매배전회사 소유권을 민간에 넘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민간투자자들은 한 푼이라도 수익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었기에.


이 영국식 시장은 처음에는 대성공이었다. 원가가 싼 천연가스 발전소가 늘어나니 당연히 전기요금은 내려갔다. 이 시장을 고안했던 스티븐 리틀차일드 교수는 영웅이 됐고,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태국, 심지어 한국까지 영국식 경쟁 모델을 연구했고 각자의 나라에 도입하려고 줄을 섰다. 전력산업 경쟁체제 구축의 기본적인 설계는 호주의 유명한 컨설팅 회사인 PWC가 주도했고, 이 회사는 낡고 병든 전력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구세주로 군림했다. 그리고 막대한 컨설팅 수수료를 물론 챙겼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 떨어진 김대중 씨는 이 시기에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국가발전의 비전을 끝없이 연구하던 타고난 공부 벌레 김대중 씨에게는 전력산업의 자유화와 경쟁체제는 시장경제 발전의 새로운 사례로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1997년 대선에서 3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IMF 금융위기.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특단의 개혁 조치 중 하나로 전력산업 자유화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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