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그리고 화해.
방으로 올라온 최용석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사명감 있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정부 측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과도 자연스럽게 잘 지내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중립 측 위원인 이병호 교수가 질책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브루노가 예정보다 더 많은 사람을 섭외했고, 그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했지만, 분명 이근석 단장의 확인도 받았는데 마치 최용석이 혼자 맘대로 일정을 조정한 것으로 잔소리를 듣고 나니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시계를 한 번 보고 최용석은 이승곤 실장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살짝 노크하니 이 실장이 조용히 문을 열어줬다. 방에는 이미 김명자 교수와 안현필 교수가 다 와 있었다. 저녁 시간 반주가 약간 있었는지 세 사람 모두 얼굴이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조금 전 로비에서 이병호 교수에게 질책을 받는 자리에 김 교수와 안 교수도 함께 있었는데, 그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병호 교수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 실장은 정식 연구위원이 아니었기에 그 자리에 없었다. 최용석은 두 교수에게 당시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날씨가 꽤 추워요. 나는 여기 토론토에 겨울에는 첨이라서 잘 몰랐는데, 한겨울이 맞네요.”
안 교수가 일행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겨울 아닙니까. 허허. 지도를 놓고 보면 위도가 상당히 높아요. 우리로 치면 만주보다 더 높은 거 아닌가?”
이 실장이 안 교수의 말을 받아서 대꾸했다.
네 사람은 이 실장 방의 탁자를 둘러서 앉았다. 작은 탁자 위에는 이 실장이 늘 들고 다니는 보물창고라 부르는 두꺼운 노트가 놓여 있었다. 자유롭게 페이지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바인더가 끼어 있는 이 실장의 노트는 민영화를 비롯한 구조개편의 각종 자료와 데이터가 첩첩이 묶여있었다. 그리고 일행과 토론을 하거나 무슨 자료가 필요할 때는 페이지마다 붙어 있는 작은 인덱스 갈피를 찾아서 순식간에 관련 내용을 찾아냈다. 얼마나 자주 그 노트를 열어보고 자료를 검색했는지 표지는 너덜너덜한 수준을 넘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이강산 실장의 부지런함이 그대로 보였다.
이 실장과 김 교수, 안 교수, 최용석은 해외실사 일정이 시작된 첫날부터 매일 저녁 이렇게 모였다. 그날 있었던 방문지에서의 면담 내용을 복기하고, 다음날 있을 방문지에서 제기할 논제 등을 미리 점검했다. 오늘도 그래서 모였다. 김명자 교수는 피곤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연구위원 중 가장 젊은 안현필 교수와 나이는 좀 들었지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이승곤 실장은 팔팔했다. 날씨도 추웠고, 일정도 길었고, 저녁에 알코올도 좀 들어갔기에 모두가 짧게 오늘 일정을 공유했다. 모두가 입을 모은 가장 중요했던 이벤트는 역시 고든 교수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완강한 주장, 똑똑한 민간전력회사보다 약간 뒤떨어지는 국영전력회사가 결국 국민들에게는 이익이라는 그의 주장. 물론 국영회사가 똑똑하기까지 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모두의 의견은 같았다. 민간기업은 투자자들의 이익을 챙겨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기업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영기업은 흑자와 적자의 개념을 떠나 국가의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때로는 손해도 볼 수 있다. 그 손해가 결국 전체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하루가 끝났다. 하지만 최용석에게는 늦은 밤의 사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침이 되자 일행은 체크아웃을 위해 로비에 모였다. 9시 비행기로 캘거리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오늘로 미국과 브라질, 그리고 캐나다로 이어지는 1차 해외조사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그럼 곧장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일정 가운데 3일이 비었다. 그리고 일행은 캘거리로 가는 것이다. 최용석은 궁금했다. 아니 모두가 다 궁금했다. 왜 캘거리지?
15명이 넘는 일행이 동시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니 시간이 좀 걸렸다. 로비에서 멍하니 서 있던 최용석을 이병호 교수가 손짓을 하면서 불렀다. 어젯밤 근엄한 표정으로 잔소리하던 때의 표정과는 뭔가 달랐다.
최용석을 로비 구석으로 데리고 간 이 교수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띠고 말했다.
“엇 저녁에 기분 나빴지?”
이게 무슨 소리이지? 최용석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이 교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사실 말이야, 어제저녁 먹을 때 정부 측에서 항의가 들어왔어. 왜 처음 약속대로 안 하고 바꾸냐고. 토론토 대학 교수님 하고 시민단체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이 교수의 설명에 비로소 상황이 이해됐다. 아, 그랬구나. 입장 바꿔 놓으면 그런 항의가 가능하겠구나.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금까지 노조에서 준비를 너무 잘했어. 나하고 단장님이 중립적으로 보고 있어도 정부 쪽 논리가 약해. 지금 노조가 아주 잘하고 있어. 그거 모두 최 부장이 한 거잖아?”
이병호 교수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쪽, 정부 쪽에서 조금 당황한 것 같아. 그래서 엊저녁 최 부장하고 김 국장 없을 때, 밥 먹을 때 항의가 들어왔어. 그래서 어제 그 사람들 앞에서 야단을 좀 친 거야. 기분 나빴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됐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 교수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구나.
“아, 예, 그랬군요. 사실 좀 어리둥절했는데요. 뭐, 그랬다면 잘하셨네요.”
최용석은 웃으며 이 교수에게 대답했다.
정말 진심이었다. 만약 정부 쪽 교수들이 그런 마음으로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다면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잖아. 눈 녹듯 억울했던 마음이 씻겨 나갔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 주는 이 교수가 너무나 고마웠다. 어쩌면 이제 이 교수는 우리 편인가?
“나도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까지 노조의 주장이 다 맞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사실 여기 올 때까지는 나도 반신반의했지만 말이야. 물론 다 끝난 것도 아니고, 유럽도 가야 되고 호주도 가야 되는데. 지금까지 미국, 브라질, 캐나다만 본 걸로만 생각하면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잘해봐. 기대할게.”
말을 마치며 이 교수는 예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돌려 로비 쪽으로 걸어 나갔다.
멀어지는 이 교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최용석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 더 잘하자.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이길 수 있다.
토론토를 떠난 일행은 캘러리 공항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기다리던 미리 예약한 여행사의 미니버스를 타고 휘슬러로 향했다. 그 유명한 캐나다 로키국립공원. 1월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흰 눈으로 뒤덮인 경치를 넋 놓고 보면서 일행은 조그만 오두막집 흉내를 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공동연구단의 실질적인 일정과 비용을 책임진 한전에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토론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배려를 한 것이었다. 구조개편의 대상인 한전이 준비한 이런 여흥 일정은 어찌 보면 부당하고 불법적인 향응일 수도 있지만, 당시 교수들, 공무원들, 노사정위원회 직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행은 다음 날 밴프의 루이스 호수도 둘러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TV의 여행 프로그램에서나 볼만한 그런 경험이었다. 모처럼의 휴식이 된 일정 내내 일행은 즐기기에 바빴다. 약간의 긴장감으로 서로를 경계하던 마음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원래 사람들은 같이 먹고 자는 합숙을 하면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한 솥밥을 먹는다는 그런 공동체의 감정으로 서로에게 편해진다. 최용석도 처음에는 한전을 민영화하려는 쪽 사람들을 속으로 미워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로도 보였다. 하지만 2주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나누기 시작했고 입장은 달라도 어차피 생각은 비슷하다는 그런 동질감이 커져갔다. 사실 모두가 대한민국의 전력산업을 고민하기는 피차일반이었다. 다만 그 방향이 달랐을 뿐. 휘슬러와 밴프에서의 휴식기간 이런 생각은 커져갔다.
캐나다의 로키를 여행한 일행은 밴쿠버를 통해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날짜가 1월 22일이었다. 바로 다음 날이 설 연휴의 시작. 숨 가쁜 일정이었다. 설 연휴를 쉰 연구단은 다시 2차 해외실사를 위해 인천공항에 모여야 했다. 2차 실사 지역은 유럽과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였다. 미국 보다 더 기대가 되던 지역이었다. 전력산업의 구조변화가 시작된 곳이었고 또 내용적으로 좀 더 복잡한 곳이었기에. 2주간을 함께 지냈던 일행은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뒤로하고 각자의 길로 총총히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