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Discontent)이라는 혼란의 사건이 1970년대 말 영국에서 벌어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상징되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복구를 기반으로 하던 번영의 시대를 끝내던 암울한 기억이었다. 1978년, 영국의 집권 노동당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밀어닥친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과감한 임금 삭감과 복지 축소를 시행했고, 이에 대항한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영국 사회를 휩쓸었다. 그해 겨울, 마침 16년 만의 강추위가 몰려왔고 영국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의 속으로 빠져들었으며 노동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고통은 한계로 치달았다. 그 결과 1979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대처가 수상으로 당선됐고 소위 “영국병” 치료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영국을 거쳐 전 세계로 휘몰아쳤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시작이었다.
파업 중인 영국 노동자들
불만의 겨울은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데,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급은 보수당 정권을 상대로 2년 넘게 투쟁했지만, 영국 자체의 경제 위기로 인해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동계급이 아무리 의식을 가지고 부조리에 맞서도 국가경제 전체가 흔들리면 투쟁의 동력도, 전체 국민의 지지도 사라지게 된다. 오히려 당시 영국에서는 과도했던 노동조합의 힘 그 자체가 부조리 중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과한 힘을 가지고 오랜 시간 그 힘을 누리면 스스로에 취해 무너진다는 것은 진리이다.
영국의 불만의 겨울이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2024년 현재의 겨울이 우리에게는 불만의 겨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정치는 혼란스럽고 경제는 무너지고 있고 사회도 혼돈 그 자체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는 광인 트럼프가 다시 권력을 잡았고 미국을 파멸의 길로 좀 더 가깝게 밀어 넣을 것이다. 세계에 분노해 트럼프를 선출한 미국인들의 처지도 한심하지만, 자격 없는 자의 대통령 코스프레를 보는 우리 국민들위 처지 역시 그에 못지않다.
트럼프 시대의 예측은 매우 간단하다. 2017년부터 4년 동안 이어졌던 트럼프 1기 시대를 기억하면 된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고 기존의 모든 질서를 파괴했다. 이념으로 뭉쳐진 동맹도 필요 없었다. 소련 멸망 이후 이어진 미국 혼자만의 세계관에서 탈피하기를 원했던 미국 유권자들의 요구를 그대로 실천했다. 클린턴, 조지 W. 부시, 오바마를 이어 오는 과정에서 미국은 세계를 바꾸려 했다. 미국식 시장주의와 민주주의로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 했는데, 그게 바로 세계화였다. 경제는 미국식 시장주의, 정치와 사회는 미국식 민주주의로. 이런 오만한 생각은 20년 동안 계속 됐는데, 결국 모두 실패했고, 미국에게 남은 것은 막대한 재정과 무역 적자였다. 보통 미국 시민들은 화가 났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뺏겼고 민주주의 확산으로 전쟁만 늘었다. 트럼프는 이를 뒤집었다. 군산복합체의 돈도, 노동조합의 지원도, 소수인종의 표도 필요 없었다. 트럼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력이었고 선거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미국의 주류 백인 저소득층의 대표자였다. 월스트리트의, 헐리우드의, IT 벼락부자의 민주당이 아닌 힐빌리의 대표자, 공화당에서도 소수였던 그는 소박했다. 소위 말하는 강남 좌파가 아닌 서민들의 대표자. 부동산으로 모질게 돈을 번 그의 아이러니였다.
돌아오는 트럼프는 더 강하다. 의회를 장악했고 심지어 사법부도 꼼짝 못 하게 묶었다. 자신을 기소했던 특별검사는 트럼프 당선과 동시에 도망쳤고, 검찰은 91개나 되는 기소를 모두 취하했다. 사실, 바이든의 트럼프 기소는 무리였다. 선거에서 패배한 경쟁자를 법정에 세운다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자세였고, 바이든은 많은 욕을 먹었다. 물론 트럼프의 범죄 혐의는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던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정치 도의상 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패배자를 끝없이 법정에 세우는 현 정부는 바이든 보다 더 심하다. 검찰의 작위적인 기소가 너무 많다. 트럼프는 바이든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자신을 기소했던 그 사실들을 탈탈 털어낼 것 같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붕괴된다.
트럼프 2기는 아무도 견제할 제동장치가 없을 것 같다. 지난 1기에서 자신을 방해했던 공무원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기세다. 주변의 참모와 장관을 완벽하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 채운다. 국방부 장관은 극우 방송 앵커가 되고, 기후위기 반대론자가 환경부 장관이 되고, 코로나 백신을 음모로 생각하는 사람이 보건을 책임진다. 기인들의 집합체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들의 뜻을 펼칠 것 같다. 물론 이상한 방향으로.
불만의 겨울을 맞이했던 미국인들은 광인 집단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침몰을 앞당길 것이다. 한국인들은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삼한시대에서 온 무능한 족장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들의 무속저인 지배를 받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망가질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가히 걱정스러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