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홀을 작은 토론회
로키산맥의 휘슬러와 밴프를 돌아서 일행은 밴쿠버에 도착했다. 탄복할 만한 로키의 경치를 구경하느라 추운 줄도 몰랐는데 온화한 태평양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밴쿠버에 오니 여기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가를 새삼 느끼게 됐다. 최용석은 생각했다. 이번 일정은 정말 계절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일정이었다고. 언젠가 일행이 같이 둘러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던 자리에서 김창석 교수가 재미있는 말로 공동연구단의 일정을 표현했다.
“이번 우리 일정은 말입니다, 시차 절차 다 파괴하는 아주 파괴적인 일정입니다. 하하”
김 교수의 말에 간사 역할을 하던 중립위원인 이병호 교수가 물었다.
“시차 절차가 뭐지요?”
“아, 일정표 한번 보세요. 서울에서 미국 서부로 오면서 시차가 무너졌지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브라질로 가면서 계절이 바뀌잖아요? 그럼 절차가 무너지지요, 다시 브라질에서 워싱턴으로 날아가면 또 계절이 바뀌네요. 절차가 무시되네요.”
김창석 교수의 재치 있는 표현에 일행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랬다. 공동연구단은 지구를 아래위로 훑으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시차는 물론이고 계절의 차이도 넘나드는 그런 일정이었다.
공동연구단의 해외 현지 조사 의견을 처음 꺼낸 사람은 이근석 단장이었다. 원래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에는 구체적인 일정이 없었고 그냥 1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합의서가 작성되고 정부, 노조, 한전의 대표자가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2003년 8월 말이었으니, 원론적으로 하면 2004년 7월까지 합의를 도출하면 되는 그런 연구용역 형태의 공동연구였다. 용역의 발주자는 노사정위원회였고, 실무적인 행정은 산업부가 하는 것이었는데, 산업부는 이를 다시 한전으로 내려 준, 그런 형식이었다. 문제는 배전부문 분할과 민영화를 결정하는 연구용역의 발주 주체가 산업부, 한전, 노조인데, 이의 실무 행정을 다시 한전이 맡는다는 이상한 구조였다는 점이다. 한전은 분할의 대상이며, 스스로가 다시 용역을 맡기는 주체도 되고, 또 동시에 용역을 집행하는 실무 기관도 되는, 한마디로 한전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그런 구조였다. 자신을 분해하고 해체하는 연구용역에 스스로 돈을 대는 그런 바보 한전이었다.
한전이라고 흔히 부르는 한국전력공사는 1981년에 탄생했다. 이전까지는 한국전력주식회사였는데, 5.18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공기업 형태로 지배구조를 바꾸면서 공사화한 것이었다. 거꾸로 더 올라가면 한국전력주식회사는 역시 군사쿠데타인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이전까지 민간기업이던 조선전업주식회사, 경성전기주식회사, 남선전기주식회사 등 3개 전력회사를 강제로 통합해서 1961년에 세운 공기업이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이 3개 민간전력회사는 이전까지는 한반도에 난립했던 수백 개의 전기회사를 1943년 일본제국 조선총독부가 전쟁동원령으로 묶어서 만든 회사들이었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고종황제가 직접 설립한 한성전기회사까지 올라간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그만큼 역사가 길었다. 에디슨이 필라멘트 전구를 발명한 때가 1879년이고, 일본의 도쿄전력이 생긴 해가 1883년이고, 한성전기회사는 1898년에 생겼으니 우리나라는 결코 전기에서는 늦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던가?
공동연구단이 마주한 이번 과제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네 번째의 큰 변화의 일부분이었다. 원래 민간기업이었던 전력산업의 국유화 이후 분할, 그리고 민영화로 가는 그런 중요한 변화. 민영화를 반대하든, 지지하든, 관계없이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연구위원들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웠다.
밴쿠버의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행은 1차 현지 조사 일정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빅토리아섬이 보이는 바닷가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로 식사를 마친 연구단은 휴식을 위해 먼저 방으로 돌아간 사람들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호텔의 맥줏집에 모였다. 사진에서 많이 보던 독일풍으로 꾸며진 자그마한 맥줏집 내부는 평범했다. 일행은 10명. 떼로 몰려다니는 회식 문화가 없는 미국인들로서는 동양인이 10명씩이나 한꺼번에 몰려오는 모습을 신기한 표정으로 시선을 모았다. 일행은 원형 테이블 두 개에 자연스럽게 나눠 앉았다. 늘 그렇듯이 같은 일행이라도 테이블이 나눠지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최용석이 앉게 된 테이블에는 마침 전기위원회 문재송 과장도 같이 앉게 됐다.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졌는지 일행은 흥겹게 맥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최용석 테이블에는 안현필 교수와 김창석 교수도 있었는데, 서울대 경제학과 5년 선후배 사이인 두 교수는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학창 생활로 이어졌다. 캠퍼스 시절로 기억들이 회귀하자 다들 천진난만한 청년의 상태로 돌아갔다. 같은 서울대 출신이지만 경영학과를 졸업한 문재송 과장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었던 최용석과 이강산 실장은 약간의 소외감은 느꼈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만큼 이제 이들 사이에는 묘한 동질감이랄까, 동류의식이랄까 뭐 그런 게 생기고 있었다. 숙식을 함께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집단의식을 키우는 목적인가 보다.
대화 주제는 학교에서 사회로 등등 자연스럽게 번졌다. 전력산업이니, 민영화니, 분할이니 하는 주제는 맥주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의 생활 패턴이 이랬다. 낮에는 방문지에서 또는 이동하는 교통수단 안에 때로는 첨예하게, 또 때로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구조개편 문제가 오고 갔지만, 일단 하루 일정이 끝나고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들이키거나 하는 시간에는 모두가 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게 서로에게 편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자, 테이블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생겼다. 옆자리 사람이 바뀌고 대화가 바뀌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느 순간 문재송 과장이 최용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 일행 중 가장 껄끄러운 사람이 바로 문 과장이었다. 교수들이나 노사정위원회 사람들은 문 과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한전은 다르다. 한전을 감독하는 상위기관이 산업부이고, 그중 전기위원회는 전력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조직이고, 문 과장은 그 조직의 총괄과장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안경까지 동그란 문 과장은 약간 작은 키에 통통한 모습이었다. 눈에는 서울대와 고시 출신답게 똑똑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약간 새침해 보이면서도 얼굴 자체는 온화한 분위기를 보이는 약간은 푸근해 보기이고 하는 인상이었다. 연구단 일정 중에 방문기관 인사들과의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해외의 구조개편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 보였다. 사실 이 업무를 총괄하는 중앙부처 과정이니 그건 당연했다.
얼굴이 약간 불콰해진 문 과장이 최용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최 부장님, 고생이 많아요. 근데 해외사정을 상당히 많이 알던데, 혹시 해외 경험이 많나요?”
“아, 예. 학부를 미국에서 다녔고요, 전력노조에서 국제담당입니다. 그래서 남들 보다는 좀 자신이 있어요.”
최용석의 대답에 문 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음을 얼굴 한가득 품으며 말했다.
“아, 어쩐지. 아무튼 최 부장 덕분에 저도 공부 많이 합니다. 하하.”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문 과장이 다시 물었다.
“근데, 최 부장님, 만약에 말입니다, 정부가 민영화를 절대 하지 않고 인력 구조조정도 하지 않겠다는 그런 공식적인 약속을 하면, 배전을 분할하는데 노조가 동의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저도 노조가 배전분할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 이해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인위적 구조조정이 없다면 노조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문 과장의 말을 듣고 최용석은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일단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의견을 물어 준 문재송 과장의 태도에 놀랐고, 두 번째로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크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옆자리의 이강산 실장, 안현필 교수, 그리고 옆 테이블에서 자리를 넘어온 정하수 부장도 모두 답변을 기다리는 듯 최용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최용석은 문 과장의 질문을 진지하게 들은 후 후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테이블에 잔을 가볍게 내려놓고 답했다.
“과장님, 뭔가 약간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 같은 문제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근데 이번 분할 문제는 아직 이런 수준까지 논의된 바가 없는 걸로 압니다. 물론 분할되고 경쟁체제가 되고 또 민영화까지 가게 되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겠지요. 저희 노조가 배전분할을 반대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와 보셔서 아시겠지만, 분할경쟁 자체가 실패한다는 그런 이유에서 저희가 반대합니다.”
짧은 답변을 마치고 최용석은 문 과장을 비롯한 주변을 둘러봤다. 안 교수를 비롯해 같은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동의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그 테이블에는 한전 사람들과 안 교수뿐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분할 찬성론자들은 모두 옆 테이블에 있었다.
“사실 전력산업은 발전에서 판매까지 수직으로 통합돼 있는 게 정상입니다. 수직통합. 영국이나 캘리포니아처럼 이를 분할해서 부문별 경쟁을 한다는 말은 듣기는 좋지만 성공 못합니다. 일관체제에서 유기적인 조정이 필요하잖아요? 어느 한 축도 안정성이 흔들리면 산업 자체가 붕괴하는 게 전력산업인데요. 차라리 통째로, 한전의 발전과 송배전, 판매를 묶어서 민영화하면 어떨까요? 저희 노조는 분할과 민영화를 반대합니다. 한전을 하나로 묶어 민영화하겠다면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지요.”
최용석은 대답을 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너무 위험한 말을 한 건 아닌가? 노조가 언제 한전의 통째 민영화를 찬성했는가? 너무 앞서나간 느낌. 하지만 문 과장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논점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렸으니.
최용석의 답변에 문 과장은 눈을 껌뻑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상치 않는 답변에 좀 황당했다고나 할까, 그런 표정이기도 했고. 잠깐 생각을 하던 문 과장이 다시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순간 노사정위원회 양인식 위원이 테이블에 합류했다. 항상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구수한 언사로 좌중을 웃기는 양 위원은 문 과장의 어깨를 잡으며 의자를 끌고 옆자리에 앉았다. 문 과장과 최용석의 작은 대화는 생각보다 너무 짧게 끝났다.
자유화, 구조개편, 민영화, 이념의 차이에서 나오는 논쟁이다. 어느 쪽도 정답은 없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선택인가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최용석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모두가 즐겁다.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이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