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이야기 22

2차 현장 조사의 시작, 런던

by 요아킴


인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기는 런던을 향해 힘차게 날고 있었다. 예상되는 비행시간은 약 12시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여정이라 비행시간도 길고 피로감도 높은 코스였다. 인천에서 오후 2시 정각에 출발한 런던행 대한항공은 히드로공항에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 착륙한다. 당시로서는 최용석에게 낯선 여행길이었지만, 나중에 이 길을 거의 매달 날아다니게 된다.


이번 런던행은 2차 해외실사의 시작이다. 서울에서 짧은 설 연휴를 보내고 연구단 일행은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로 이어지는 일정으로 자유화의 현장을 찾았다. 특히, 영국은 세계를 휩쓴 구조개편의 발원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일정이 길었다. 가볼 곳도 많고 들을 이야기도 많았다. 연구단 위원 모두가 영국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자유화와 민영화의 진앙지에서 뭔가 원하는 답을 얻고 싶었다. 민영화 찬반 양진영 모두가.


특이한 점인 이번 일정부터 최용석도 다른 연구위원들 일행과 함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1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 김준형 위원장이 한전에 강하게 항의했다. 정식 멤버는 아니지만 일행과 같이 움직이며, 어쩌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전 대신 하고 있는데 그런 차별을 한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특히 브라질에서 워싱턴으로의 여정에서 생긴 일 때문에 더 강하게 한전을 압박했다. 사실 최 부장과 실무자 차장급 한 명 더 비즈니스 좌석에 태운다고 예산이 그렇게 표 나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기에 한전도 슬그머니 동의했다 물론 산업부와 노사정위원회의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2주 동안의 여정에서 서로 어느 정도 친하게 된 상태에서 최용석의 비즈니스석 탑승을 정부도, 노사정위원회도, 이근석 단장도,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역시 비즈니스석은 좋았다. 747 점보기의 경우 주로 2층이 비즈니스석이었는, 연초부터 영국에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지, 연구단 일행 이외의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독무대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전용기와 비슷한 공간에서 일행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휴대용 바둑판을 꺼냈고 대국이 시작됐다. 일행 중 일부는 대국을 하는 두 사람을 둘러싸고 열심히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챙겨 온 장기판을 놓고 장기 게임도 벌어졌다. 승무원들도 연구단 일행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지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일행 전체가 교수와 공무원들이기에 뭐 그리 소란스럽지도 않았기에 보기에 나쁘지도 않은 그런 모습이었다.


장기판에서 오가는 말들의 싸움을 지켜보다 최용석은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광활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몽골 상공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옅은 구름 사이로 황무지 같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인천에서 유럽으로 가는 항로는 서해를 건너 베이징 근처를 지나 몽골로 곧장 북상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북서쪽으로 비행해 러시아 영토를 한참 동안 비행해서 페테르부르크까지 올라간 다음 북해 위를 날아서 영국으로 내려가는 그런 길을 간다. 넓디넓은 몽골땅을 내려다보며 여러 상상을 했다. 칭기즈칸이 50만 명도 채 안 되는 몽골족을 이끌고 세계의 절반을 휩쓸었던 그 모습을 상상하며, 마차 저 아래 평원을 몽골 전사들이 말 달리고 있는 그런 상상이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런던 히드로 공항에 공동연구단을 실은 대한항공기는 안전하게 착륙했다. 12시간에 가까운 비행이었지만 최용석은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비즈니스석 덕분이었다고 생각하니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비즈니스석을 탔던 때가 기억이 났다.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던 때, 김포공항과 로스앤젤레스 사이에는 국적항공사로는 대한항공이 유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시아나 항공이 LA로 취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려니 했다가 1992년 여름, 방학을 맞아 서울로 오는 길에 취항한 지 딱 한 달이 된 아시아나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6월 초, 공항 셔틀을 타고 흔히 LAX로 불리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크기로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LA 공항에서 외국 국적 항공사들은 모두 탐 브래들리 터미널에 몰려 있다. 1980년대 후반에 LA 시장을 역임했던 흑인 시장의 이름을 따서 새로 건설한 터미널이라고 들었다. 터미널 한구석에 있던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를 찾아 가자,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얼핏 봐도 대부분 한국사람들도 보였다. 취항한 지 얼마 안 되는 항공사인데 이렇게 많이 몰리다니하며 줄을 섰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길래 귀 기울여 보니, 뭔가 문제가 있었다. 차례가 돼서 예매 내역서를 직원에게 보여주자, 아니나 다를까, 최용석의 예매에도 문제가 생겼다. 항공사의 착오로 실제 좌석보다 더 많이 예약이 된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더블 부킹. 난감한 마음에 몇 차례 더 문의해도 대답은 같았다. 갑자기 화가 났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공항까지 셔틀 비용만 해도 30달러가 조금 넘었는데 이 무슨 낭패인가.

탐브래들리터미널.jpg

“좋아요. 그렇다고 합시다. 그럼 내일 다시 오면 되나요?”

최용석은 화를 참고 질문했다.

“저...죄송한데요, 내일도 사정이 똑같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언제 손님 좌석이 확정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착오가 급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의 항의에 혼쭐이 나간 불쌍한 여직원은 말꼬리를 흐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집에 돌아가 기다려야 하나요?”

“예, 일단 그러서야 할 것 같습니다. 연락처를 주시면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여기 왔다 갔다 하는 비용은 어떻게 하나요?”


“다음에 공항에 오실 때 영수증 가져다주시면 저희다 다 리임버스 해 드립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최용석으로서는 더 할 말도 할 일도 없었다. 화를 낸다고 없는 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학생 신분으로 방학이라 그리 급한 일이 없기도 하고. 하루 이틀 늦게 서울에 간다고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새로 취항하는 기념으로 표를 샀는데 실망이 크다는 말과 함께 전화번호를 남기고 다시 돌아왔다. 헛 걸음이 기분 나쁜 건 사실이었지만 뭐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날 밤, 기숙사 전화가 울렸다. 아시아나 항공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정상화가 됐으니 내일 같은 시간대에 공항으로 오라는 전달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일처리에 일단 잘 됐다 생각하고 다음 날 공항에 도착했다. 정상적으로 발권을 마치고 게이트 오픈 시간에 맞춰 탑승구로 향했다. 보딩 패스를 받고 비행기에 발을 들이는데, 승무원이 손으로 안내하는 방향이 좀 이상했다. 2층으로 올라가라는 신호였다. 747 점보기의 2층은 비즈니스석인데 이상하네 하는 생각으로 보딩 패스를 다시 보니 노란색이었다. 옆을 지나가는 다른 승객들의 보딩 패스를 자세히 보니 옆은 파란색이었다. 아, 항공사에서 업그레이드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얼떨결에 2층으로 올랐다. 그동안 타던 이코노미석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멍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히며 좌석에 앉았다.

아시아나항공.jpg 옛날의 아시아나 항공기


LA 공항에서 김포공항까지는 11간 30분. 그 긴 비행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널찍한 좌석에 하나도 불편한 점이 없었고, 음식은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당시 이코노미 좌석에는 생각도 못했던 개인별 모니터도 달려 있었다. 비행을 즐긴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제까지 느꼈던 아시아나 항공에 대한 실망감은 대만족으로 돌아섰다. 감동 그 자체였다. 이게 고객에 대한 서비스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때부터 아시아나 항공이 너무 좋아졌다. 이후 노조에서 국제활동을 할 때도 대한항공 보다 아시아나 항공을 선호하게 된 계기의 시작이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뭔가 아쉬웠다. LA와의 왕복을 몇 번 더 해도 되겠다는 그런 촌스런 생각까지 하게 됐던 비즈니스석의 첫 경험이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계류장으로 이동하면서 문득 그때의 철부지적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인천공항까지 다시 갔다 와도 하나도 안 피곤하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런던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다듬었다. 런던에서는 먼저 다음 날 그리니치 대학을 간다. 거기에는 역시 친구가 된 스티브 토마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에너지 산업 자유화 전문 컨설팅 기업인 카메런 멕케나라는 회사를 방문한다. 여기는 정부 측이 섭외한 기관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영국의 공공노조 유니슨을 간다. 그날 오후에는 역시 정부가 섭외한 HSBC의 고문 로버트 할리 박사를 만나기로 돼 있었다. 구조개편의 심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주 현장 조사에 이은 유럽과 오세아니아 방문, 이제 서서히 윤곽은 나오고 있다. 최용석은 잘못된 민영화는 막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계속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런던의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이야기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