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와 비빔밥
전주는 먹거리가 많은 동네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중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 비빔밥일 것이다. 보통 갖은 나물과 밥을 비비는 음식을 비빔밥이라고 부르는데, 나무위키의 정의에 따르면, “비빔밥은 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장을 넣어서 비벼 먹는 전통 한국 요리다. 옛날 궁중에서는 골동반(骨董飯)이라고 불렀다. 근대 이전부터 전국적으로 많이 먹는 음식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전주시의 전주비빔밥이 가장 유명하다.”라고 돼 있다. 여기에도 전주가 비빔밥이 유명한 동네라고 나와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빔밥을 좋아했다. 나물을 좋아해서라기보다 뭔가 잔뜩 비벼서 먹을 때 나오는 그 복잡하면서도 오묘한 맛이 좋았다. 특히, 보통 먹는 비빔밥에 꼭 들어가야 하는 고추장 맛이 밥과 나물, 그리고 소고기 등의 고명과 어울리는 맛이 좋았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살 때, 당시 비빔밥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한류와 같은 엄청난 유행은 아니었고, 일식과 중국식처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한식도 조금씩 미국인들에게 소개되던 때였다. 특히 비빔밥은 나물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서 여성들에게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비슷하게 건강식품으로 유명해지던 것이 두부였다. 두부는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한중일 세 나라가 모두 다양하게 요리하는 좋은 음식이다.
비빔밥도 종류가 많다. 돌솥에다 지글지글 끓으며 나오는 돌솥비빔밥도 있고 육회를 얹은 육회비빔밥도 있다. 집에서 남은 반찬을 몽땅 털어 넣어 대충 비비는 양푼 비빔밥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비빔밥, 채소 비빔밥, 참치 비빔밥, 꼬막 비빔밥, 육회 비빔밥, 날치알 비빔밥, 멍게 비빔밥, 나물 비빔밥 등등 밥과 반찬을 비비면 다 비빔밥이 된다.
이렇게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비빔밥의 본고장이라는 전주에 온 이상 비빔밥을 안 먹을 수 없다. 한 달 반 사이에 유명하다는 비빔밥집 세 곳을 찾아갔다. 전주에서 지금까지 먹어 본 비빔밥의 특징은 우선 타지에 비해서 깔끔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양도 많았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비빔밥 한 가지만 먹기에는 허전한지 뭔가 한 가지씩 특별한 반찬이 꼭 같이 나왔다. 어떤 집에서는 육전을, 또 어떤 집에서는 생선전을 기본 찬으로 줬다. 원조 동네라는 암시 때문인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이면 전주에서 비빔밥이 유명할까? 궁금해서 몇 군데 검색을 해 보니 다양한 이유가 설명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주의 물이 깨끗해서 황포묵과 콩나물 같이 전주비빔밥에 꼭 필요한 재료가 맛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순창에서 맛있는 고추장이 나와서 그렇다는 말도 있었다. 두 설명이 다 옳다. 전주는 바다도 가깝고 들도 넓고 뭔가 생산하는 산물이 많다. 지금과 같은 산업화 시대에는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겠지만, 과거 농경시대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한 달 반을 살면서 느끼는 전주는 정말 풍광이 좋다. 높은 산은 동쪽과 남쪽을 멀리 물러나 있고 서쪽과 북쪽은 틔어 있어서 뭔가 아늑하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산과 들, 그리고 주변을 흘러가는 만경강 역시 유순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말투와 성격도 참 차분하고 유순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먹거리도 많다.
나 혼자 생각하는 전주비빔밥의 유명세는 아마 옛날에 이곳에 양반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유교를 국가의 가르침을 삼고 양반들과 관료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집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를 강요했다. 조전 초기에는 이는 많은 저항을 불러왔다. 고려시대의 불교적 관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무위로 돌아가는데, 조상의 영혼을 불러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태종을 비롯한 조선의 왕들은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신봉했지만, 과거 고려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불교를 억누르고 새로운 지배 이념으로 유교, 그중 주자성리학을 새로운 지배층에게 강요했다. 정도전의 불씨잡변 같은 책도 그런 목적이었다. 주자성리학에서 제일 중요한 교리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성공하지 못했다. 불교적 세계관에 빠져 있던 조선민중과 심지어 사대부 같은 새로운 지배 세력도 위패와 제사를 거부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위패와 제사를 모시지 않는 사대부는 과거시험도 못 보게 하고 벌까지 줄 정도로 강한 탄압을 했지만 제사를 뿌리내리기에 쉽지 않았다. 성종 대에 가서야 겨우 지금과 같은 유교식 제사가 양반들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모든 백성들이 지금과 같은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임진, 병자 양난 이후 조선후기라고 한다. 그만큼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튼, 주자성리학에서 핵심은 제사인데, 전주는 조선왕조의 뿌리, 즉 전주 이씨들의 본고장이다. 당연히 사대부와 같은 양반도 많았을 것이고, 제사도 많았을 것이다. 제사를 지내고 남은 각종 음식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법, 그것이 바로 비빔밥의 시작 아니었을까. 어디서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만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역시 양반 많기로 유명했던 경상도 안동의 헛제삿밥과도 묘한 공통점이 보인다. 물론 유래는 다르지만.
이제 막 전주 생활을 시작한 이 시점에 비빔밥 한 가지만 놓고도 생각이 많다. 조금씩 더 전주를 배워 나가고 싶다. 그러면 더 할 말도 많겠지. 이 역시 내 삶을 풍족하게 하는 즐거운 배움의 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