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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21. 2023

보다. 느끼다,   선택한다. 나의 세상을


 어둑어둑한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자, 봄의 세상이 눈앞에 있다. 은은한 햇살이 건물, 거리, 나무에 물들어 있다. 금빛 머금은 초록의 잎들은 바람결에 하늘거린다. 가볍게 몸을 흔드는 여린 풀잎이 아름다워, 늘 똑같은 출근길이 오늘따라 행복하다. 내가 처한 환경은 전혀 다른데, 어쩐지 그때와 느낌이 똑같다.


 반복되는 야근으로 일상이 찌들어 있던 때였다. 할 일은 계속 쌓이고, 의무감은 충만했으나 인정과 대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평일 저녁 시간, 주말의 일부도 회사 일에 바쳤다. 매일매일을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느라 바빴다. 수시로 웃기도 했지만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작은 행복 하나쯤은 찾아내는 사람이었는데... 일 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 돈을 벌고, 때로는 답답함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가난해서 먹고살 걱정을 하는 게 아니며, 몸이 아프지도 않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도 없으니 절망적으로 힘든 상황이 아니라고 나를 달랬다. 그럼에도 나는 일상에서 작은 행복 하나를 찾아낼 수 없는 상태라는 게 힘겨웠다. 끝없는 업무에 매몰되어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나의 메마른 마음이 안타까웠다.


 지친 눈으로 출근하던 길, 창 밖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초록이 돋고, 솟아 나온 작은 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메마른 마음처럼 늘 겨울일 것 같았는데, 햇살은 어느새 따뜻한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봄의 생동감이 좋았고, 작은 변화를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이 내 안에서 깨어난 것이 행복했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같지만 매일이 똑같지는 않다.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작은 변화를 알아챌 수 있도록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계절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한다. 흐린 눈으로는 모든 게 회색 빛을 뒤집어쓰고 비슷하게 보이지만 맑은 눈으로는 각각이 가진 고유한 빛을 감지한다.


 여리한 금빛, 봄의 빛감을 좋아하는 나의 눈은 봄이 깨어날 때 회색빛 어둠을 걷어냈다. 내 마음이 문을 열자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그때처럼 일에 파묻혀 살지 않으니 살 만하다.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으니 불만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치열한 삶처럼 안정된 삶도 반복이 길어지면 눈을 멀게 한다.


 지금의 감정은 그때와 다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 타인의 감정 상태를 살피기에 앞서 나를 보려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살핀다. 그럼에도 아직 제자리인 듯한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다.


 변화와 성숙의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했으나 삶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나를 알아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나 행동은 여전히 시작도 못 하고 물러난다. 마음에 변화가 필요하던 때, 전처럼 봄이 눈을 깨웠다.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흘러가는 세월에 떠밀려 살지 않으려 한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성숙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은 그저 금빛 머금은 가녀린 풀잎이 예쁘다는 걸 느낀다. 나도 반짝이는 봄빛 속에 있다. 미소가 지어진다. 힘차게 나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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