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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 가던 길

by 허진년

도축장 가던 길 / 허진년


기차표 검정고무신 안으로

한여름의 땡볕이 흘러들어 미끈거리고

도축장 가는 제방은 멀기도 하였지만

쇠고깃국 저녁내음에 가슴 설레며

말없는 오후를 친구 삼아 걸었다

겉보리 한 자루 머리에 이고 가던

어매의 나일론 통치마자락 펄럭일 때마다

강바람은 이리저리 제바람에 지치고

겉보리가 선지 핏덩이로 바꾸어져

구겨진 양은주전자 가득 채우고 남으면

정육肉 두 근을 따로 베어 묶는다


뿌연 기억이 스멀거리며 다가온다


샹들리에chandelier 밝은 조명아래

연하게 붉어진 쇠고기 살점들이

도란-도란 돌아눕는다

부위별 좋은 맛 다 취하고도 투정부리는

고기 굽는 오늘 저녁 끝까지

그 옛날 기다란 제방이 가슴으로 이어지면

고깃집 통유리 창가에 붙어 서서

또 다른 내가 누군지 물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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