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하게 삶을 정의해 버리는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생명의 경이함보다는 무섭다. 그렇다. 정답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여물어진 씨는 싹을 틔우고 새순을 밀어내고 꽃대를 세우고 자기본분대로 채색을 불러내어 멋을 부리고도 의연하다. 산다는 과정이 저러하다는 이치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단지 까불거리느라 잊고 있을 뿐이거나 모르는 척하거나 애써 외면할 뿐이다. 여건을 따지지 않고 부족하다 칭얼대거나 투덜거리지 않고, 바람 하나만 믿고 저렇게 자기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들은 생명체의 지존이다. 네 바퀴 달린 자동차, 두 바퀴 달린 인간들이 무수하게 오고가는 길바닥에 침범할 수 없는 위엄으로 관할표시를 하고 있다. 바탕이 없다고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도움이 시원찮다고 한탄하지 않고, 오직 바람 한 올이 다독여도 ‘고맙습니다’ 인사치레 하고, 자기역할로 성장하고 빛을 만들고 생명의 중심으로 진화한다. 생각하면 뜻 아닌 것이 없다. 봉숭아 꽃잎 떨어지고 줄기마저 말라버리는 날에 묘비를 하나 세워주고싶다. "이번 생애는 마술같이 살다가는구나" 시멘트 길바닥에 핀 봉숭아의 명복을 빈다. 주제 넘지만 괜스레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