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를 2년 동안 해 왔다. 내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고 또 밝고 화사하게 사무실의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꽃을 사무실에 두고 가까이 지켜보았다. 동료들은 왜 굳이 사비를 써 가며 꽃을 사무실에 꽂아 두는지 물었다. 물론 매주 새로운 꽃으로 바꿔 주고, 또 꽃꽂이에 맞는 예쁜 화병들과 꽃바구니 및 부자재를 구비해야 한다. 그래서 취미는 돈을 부른다는 말이 맞긴 하다. 특히 꽃 수요가 많은 시즌과 한겨울에는 꽃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꽃 값이 중요한 게 아니고 스트레스로 머리에 꽃을 꼽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보다 그냥 화병에 꽂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였다.
그렇다. 나의 꽃꽂이는 그 무엇보다도 스트레스 해소라는 근본적인 치유의 힘을 믿고 시작한 것이다. 내가 대학원에서 음악 치료를 공부하던 시절, 예술과 융합된 다양한 치료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미술 치료, 댄스 치료, 원예 치료 등등.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고속터미널 꽃 시장에 다녔다. 꽃 시장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는 순간 여러 꽃들이 뿜어내는 복잡하고 맹렬한 향기로 꽃 시장의 만찬이 시작됨을 알게 된다. 지금은 5월말이니 3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아마도 장미 향이 더 풍부하게 묵직하게 섞여 있으리라.
고속터미널 꽃 시장은 도매 시장이기 때문에 다발에 묶인 꽃들을 신문에 폭 싸서 포장을 해 준다. 이렇게 꽃이 다치지 않도록 신문 옷을 둘러 입은 꽃들을 소중히 팔에 안고 걷다 보면 꽃의 종류에 따라 다소 무게가 나가는 녀석들도 있어 제법 무게감이 든다. 또 그냥 이뻐서 이 꽃 저 꽃 마구잡이로 구입하다 보면 수량이 많아서 한 팔 아름드리로 안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하철이 주 교통수단이라 한 가득 품에 앉은 꽃 내음을 맡으며 어서 가서 이 아이들에게 물을 먹여 주고 자리를 잡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꽃꽂이가 치유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꽃은 예쁘니까? 꽃꽂이가 만족스러워서? 둘 다 해당되며, 또 4계절 내내 볼 수 있는 꽃들이 있는 반면 그 계절에만 나오는 꽃들이 있기에 꽃 시장 방문은 계절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먼저 꽃을 꽂기 전 컨디셔닝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꽃들을 그야말로 최상의 컨디션 상태로 만들어 줘야 한다. 필요 없는 잎들과 꽃잎들을 정리하는데, 이때 하나씩 하나씩 이파리들을 떼어 내면서 마음을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시든 장미잎을 떼어 낼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도톰한 장미 꽃잎의 질감, 거베라의 통통한 줄기를 잡을 때의 촉감이 손끝에서부터 뇌리의 어떤 감성 영역에 도달한다. 뿐만 아니라 늦여름도 전에 다양한 국화꽃들이 일찌감치 시장에 선을 보인다. 특히 국화꽃은 이 컨디셔닝을 하고 나면 손에서 계속 풍성한 국화향이 베어 들게 마련이고, 이 아련한 향기에 취해 국화향을 맡게 되면 단번에 쨍한 향기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꽃꽂이를 하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동양 꽃꽂이를 배워 보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나기도 했다. 다양한 컬러와 질감을 갖는 꽃들을 화려하게 수북히 꽂는 서양 꽃꽂이에 비해 동양 꽃꽂이는 두서너 가지 소량의 꽃으로 마무리된다. 수수한 듯하지만 묘한 매력과 그것을 바라보는 내내 공간의 여유감이 느껴지는 것이 동양 꽃꽂이 나름의 멋이 있다. 아마 이는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이로 잘 설명될 거 같다.
유튜브에서는 대게 중국의 꽃꽂이 영상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풍성한 이파리와 꽃을 아낌없이 싹둑싹둑 잘라 내어 공간에 잘 어울릴 만한 형태로 다듬고 다듬어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물론 고수의 솜씨로 댕강댕강 줄기를 잘라 내는 모습에 거침이 없다. 이런 영상을 보노라면 어디까지 얼마나 더 꽃잎과 이파리를 제거하는지 쭉 지켜봐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정리되고 남은 꽃 소재는 절제 미를 갖춘 미학의 끝판왕이다. 한편으론 꽃의 안 좋은 부분만 제거하고 되도록 다 사용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도 한다.
이처럼 서양 꽃꽂이와 동양 꽃꽂이에 많은 차이가 있다. 센터피스, 꽃바구니 등에서 자주 쓰이는 오아시스는 서양 꽃꽂이를 더 수월하게 해 주는 발명품이다. 사실 이 오아시스는 이를 개발한 회사의 브랜드명으로 초록색 스티로폼 형태처럼 생긴 플로럴 폼을 말한다. 물을 머금은 오아시스는 꽃을 자유자재로 꽂고 형태를 유지해 주며, 지속적인 수분 공급이 가능해서 매우 유용한 화훼 용품이다. 그냥 화병에 꽃을 꽂기에는 플로럴 폼을 따로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오아시스를 사용하는 서양 꽃꽂이와 달리 동양 꽃꽂이에서는 침봉이라고 하는 것을 사용한다. 수반에 침봉을 위치시키고, 침봉 위에 돋아난 굵은 바늘에 꽃과 나무를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최근에는 친환경 플로럴 폼이 나오기도 했지만, 침봉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환경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플로리스트들도 침봉을 사용한 꽃꽂이 작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서양 꽃꽂이냐 동양 꽃꽂이냐는 개인의 취향일 것이다. 나는 이 동양 꽃꽂이 작품을 볼 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볼 수도 있어서 좋다. 그렇다면 요즘 말하는 꽃멍이 될 수 있겠다. 작품들은 수반과 꽃이 어떻게 조화로우며, 또 어떤 구조와 공간감을 살렸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강한 이끌림이 있다고 생각된다.
제목과 같이 화무는 십일홍이다. 다만 대다수의 꽃들은 사나흘이 절정기다. 특히 한여름은 더위에 쉽게 물러지기에 나는 아침마다 물을 갈아주며 화병에 얼음을 넣어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키려 부단히 애썼다.
곧 다가오는 6월이다. 꽃 시장엔 해바라기, 수국, 백일홍, 제법 이 맘 때의 여름 꽃들이 나왔으리라. 잠깐 쉼이 있었던 꽃꽂이에 다시 한 번 열망의 꽃망울이 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