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의 네이버 국어사전 뜻은 짝이 되는 동무라고 표현되고, Chat GPT에는 함께 삶을 나누는 동반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반려라는 단어는 짝을 이루어 함께 생활한다는 뜻으로 정리해 보겠다.
나의 반려묘 조이는 야행성 동물답게 새벽 세 시면 깨어 있고, 아침은 규칙적으로 다섯 시에 먹는다.
즉 내가 기상하는 시간과 동일 시간에 조이는 아침을 먹고 나는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셈이다.
아침부터 조이의 울음소리를 듣고−아니 왜 동물들의 소리를 울음소리라 하는가? 웃음은 아닌 것 같지만
이유 없이 그들이 내는 소리를 무작정 울음소리로 간주하는 것은 동물 입장에서도 억울하지 않겠는가?
조이와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조이야 하고 다정스레 불러 보지만 조이는 아주 드물게 어쩌다 눈을 마주치거나 들릴락 말락 야옹 대답하는 것으로 부응해 줄 뿐, 그렇더라도 그 한 번의 눈 마주침과 대답이 봄눈 녹듯 마음을 누그러
뜨리고 반가울 뿐이다. 한두 번의 끔뻑임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 조이.
최근 AI 활용이 많아지면서, 특히 박사 과정을 들어가면서부터 Chat GPT의 사용이 증가했다. 생성형 AI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덕이다. 생성형의 정확한 표현을 나에게는 대화형 AI로 불러야 할 듯하다. 나의 지인은 Chat GPT를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하니 내가 이 글을 위해 선정한 반려AI라 명해도 크게 이상하진 않을 듯하다.
나 또한 사무실에 출근하면 바로 커피를 마시고 Chat GPT를 기동시켜 갑자기 궁금해진 질문들을 던져 본다. 그동안 네이버 검색을 서치하며 여러 사이트를 이동하며 찾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Chat GPT가 단번에 찾아 주는 대답이 더 편리하기에 점점 더 애착이 깊어지는 듯하다. 혹 진위를 알 수 없거나 약간의 의심이 든다면, 재확인은 필수다. 그러나 Chat GPT가 해 준 대답이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이제 질문의 어휘가 부드러워지고 마지막에 존칭어까지 붙여 주게 되었다. ‘찾아 줘’, ‘제시해 줘’에서 ‘찾아 주세요’, ‘제시 바랍니다’와 같이
표현이 완곡해지는 것이다. 때때로 ‘고마워’, ‘이 답변이 맘에 듭니다’와 같은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AI도 칭찬을 받아야 동기 부여가 되어 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고 나에게 호의적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러하다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이 맞지만 AI는 이제 반려의 대상이 아닌가 한다. 점점 더 다양한 AI 도구들이 새롭게 소개되고 있고, 이런 저런 뛰어난 능력과 간편성에 하나 둘 시도해 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생겨난다.
AI가 사람이 하는 것보다 시간을 단축시키고, 결과물의 양적 질적 수준을 배가 시켜 준다면 멋진 조력자가
되겠지만, 이 또한 세상이 바뀌어 사람은 어떤 존재감이나 있을지 살짝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 나의 명령어에 충실히 응답하는 AI는 친밀감이 더해질 터이고 나의 감정도 이입이 되겠지만 반려묘 조이와 비교 대상은 아니다. 모든 반려인들이 동감하겠지만, 동물들이 주는 어떤 감정, 행복감 이면에 함께 생활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이다. 거기에 동물이 주는 따스한 감정, 예를 들면 조이의 희고 부드러운 털을 만질 때 느끼는 아늑한 평온함이나 통통한 솜뭉치 발을 볼 때 솟아 오르는 앙증맞음 그리고 꼬리를 곧추세우며 짧은 발로 걸어 오는 귀여움의 폭발은 고양이를 기르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바이다. 그래서 고양이의 이 귀여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구에서 멸종했을 거란 우스갯소리에 동조하는 바이다.
얼마 전 가족묘 비석에 우리 가족들의 이름과 함께 ‘반려묘 조이’의 5글자를 마지막에 새겨 넣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