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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진selfefficacy Oct 30. 2024

깊은 숨을 쉬고 진정효과 얻기

술을 잘 마시진 않는다. 잘 마신다는 거에는 마시는 술의 양과 빈도를 포함한 것이니 이 문장부터가 나와 잘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그러면 왜 술을 마시는가? 2명 이상 함께 즐기는 자리라면 당연 사회 활동의 매개체로서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대화가 오가고 그 자리에서의 즐거움과 슬픈 감정을 서로 교류하며 때론 술의 힘을 빌어 용기를 내어 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하다.

혼술은 어떠한가? 여름날 퇴근 후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한 음료수가 될 수도 있고, 기뻐해야 마땅한 일에 대해 스스로 축하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기쁘지 아니한 일을 마주하며 고난에 대한 탄식 아니면 소리 없는 침묵으로 위안 삼을 동반자는 아닐는지. 만약 술을 즐기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아직 초여름의 기세로 저녁 나절은 더위가 꺾이고 제법 선선한 편이다. 많은 이들이 야외에서 플라스틱 테이블에 세팅된 치킨과 시원한 생맥의 유혹을 이겨 내기 힘들 수도 있다. 아마도 저녁에 뭘 먹어야겠단 생각이 찾아올 즈음 5시에서 6시가 되면 끼니를 대신할 만한 안주를 찾고 맥주를 곁들이는 것으로 갈음하는 것이다. 여기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가족 또는 지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맥주 맛이 싱겁다는 이유로 적절한 비율의 소주를 희석하면 마주 앉은 이들이 모두 흡족해하며 만찬은 시작되는 것이다. 소주 컵 두 개를 나란히 겹치고 이 두 개가 겹치는 높이까지 소주의 양을 맞추고, 이를 다시 맥주잔에 섞어 숟가락 두세 번 위아래로 힘껏 탁탁 두드려 주면 더 많은 맥주 거품의 생성으로 세상 부러울 거 없는 소맥의 혼합주가 그 탄생을 알리게 된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야외의 트인 공간에서 왁자지껄 떠들썩한 웃음 한바탕에 차가운 맥주의 목 넘김을 유쾌히 바라보는 듯하다.


맥주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있다. 맥주의 본 고장 독일의 벡스,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미국의 버드와이저, 아일랜드의 기네스가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있다면 체코는 세계 맥주 소비량이 가장 높은 국가이고 맥주로 자부심이 높다. 맥주 제조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1842년에 처음 양조되었다는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요즘 K푸드가 유행이고, 바삭하게 튀긴 치킨과 갖가지 소스로 무장된 양념 치킨의 맛 또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만큼 삼겹살에 소주와 같이 우리나라의 황금 비율로 믹스된 소맥도 번창하리라 믿는다.


나의 음주 생활은 어떠한가? 건강검진 문진표에 묻는 알코올 섭취 문항에서 주 1회에도 못 미치는 연 단위 4회 정도가 빈도에 해당된다. 마시는 음주량도 기껏 355ml 캔맥주 2/3정도에 달하는 주량으로 음주가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미량일 것이다.

그러나 어제 저녁은 이전과 다른 음주량의 증가로 크게 진일보한 날이다. 냉장고에 있던 500ml 캔 맥주를 거의 다 마신 것으로 보아 이전보다 대단한 진화를 보였다. 이제 거뜬히 355ml 캔맥주 하나가 나의 음주량이라 말할 수 있을까?

왜 오늘은 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마음이 불편한 주제가 하루 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기에 잠시라도 생각을 멈추고자 했다. 그래서 즐기지 않았던 맥주 한 캔으로 불유쾌한 순간 순간을 제어해 보자는 작은 기대치가 생겨났다. 그런데 예상보다 그런대로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술술’ 넘어가고- 그래서 ‘술’이라 하지 않던가? 알코올이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리얼 타임의 순기능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숨일는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숨 쉬는 것이 훨씬 더 가벼워지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가라앉게 되는 부수적 효과가 나타났다. 후우우~. 깊은 숨을 내쉬고 그것이 마음의 번뇌를 호흡과 함께 훌훌 털어 내는 기분이랄까?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통해 가슴을 탁 내리면 시름도 홀연히 빠져나간 듯 마음이 후련해진다.


내겐 이상하리만치 맥주의 쓴맛이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데, 그 맛을 좋아하진 않아 한 모금씩 마시면 이 쓴맛이 계속 입안에 농축되어 버린다. 어쩌면 이 약간의 쌉쌀한 맛이 짭쪼름한 안주들과 곁들여져 궁극의 맛으로 조화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안타깝게도 결국 이 쓴맛으로 인해 음주량에 한계가 온다. 어쩌면 나와 잘 어울리는 맥주를 선택하고 그에 어울리는 맥주 페어링 푸드를 잘 선정하면 이 쓴맛을 순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어찌하든 맥주 캔 하나로 진정 효과를 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이런 순간의 빈도가 자주 반복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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