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희진selfefficacy Oct 30. 2024

눈 높이 줄자

그릇 크기에 맞는 물을 담자

다시 평범이라는 주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며칠 전 대학 후배와 점심을 함께하며 “나는 너무 평범하다.”라고 운을 뗐고, 이런 사람이 이제부터 글을 몇 자 적어 보기로 했다고 내 다짐을 공유해 봤다. 그녀들은 냉큼 “언닌 수필을 쓰는구나.” 하며 아주 정확히 문학적 장르까지 꿰뚫었다. 또한 오히려 나의 수줍은 책 제목, 그러나 나에게는 소중했던 단어 ‘평범’에 대해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을 주었다. 정말 그런 건지 의아하지만 비범하지는 않으니 자연스레 평범함이 따라온 것. 좋은 해석으로 나의 글쓰기를 지속 가능하도록 격려해 준 셈이다.


그런데 지금 떠오르는 제시어는 눈높이다. 어느 초등학생 학습지 광고에서 예전에 썼던 ‘눈높이 교육’ 컨셉인 듯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새삼 느끼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출 줄 아는 것이 번뇌 많은 속세에서 정확히 콕 집어 말하자면 직장에서 미련하지 않고 미려한 삶을 사는 자세가 아닌가 한다.

얼마 전 이력서를 다시금 업그레이드 하다가 28년의 직장 경력을 정정하며 내심 소스라치게 놀라웠다. 아니 이건 뭐 그 영겁의 세월이 흘러 나도 모르는 새 내 나이 50이 돼 버린 것이다. 나이 타령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20년 30년 직장 생활 외길을 걸어 온 그야말로 장인인 셈이다. 사무실에서의 장인. 아무튼 그 긴 시간을 직장인으로서 살아 왔는데, 이제서야 나와 다른 사람들과 보는 눈높이가 다름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24년을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 체득된 것과 중소기업에서 느끼게 되는 차이와 다름을 나는 여전히 내 눈높이에서 가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80% 이상의 직장인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단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것은 나의 불찰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정과 지식과 경험이 다양함에도 불구 나는 나의 잣대로만 과부족을 탓하며 나 또한 불편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때론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위에서 많은 조언을 해 주었고 나 또한 그래야 한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 ‘내려놓다’의 뜻을 물으니 심리적 의미에서 마음속의 걱정이나 부담을 ‘덜어내다’와 ‘포기하다’ 그리고 ‘단념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나는 계속 내려놓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반복했고, 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지 그 끝을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단념까지도 해 봤지만, 역시나 눈높이가 맞지 않는 환경에서 밑도 끝도 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따라 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을….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나 또한 상향하는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 눈높이를 다시 쓰면 그릇의 크기에 맞는 물을 담아야 한다고 정리해 보겠다. 우리는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다. 상대의 눈높이에 맞출 줄 안다는 것은 그릇의 크기에 적절한 양의 물을 알맞게 부을 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작은 그릇에 많은 양의 물을 담으려 하면, 다 담지도 못하고 오히려 밖으로 흘러 넘쳐 부족하게 담기게 된다. 남는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한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채워지지 못한 부족함만을 보며 상대를 탓할 것이고, 물을 붓던 사람은 담기지 못한 물을 그리고 바깥으로 흘려 버린 물을 헛되게 낭비해 작은 크기의 그릇을 탓할 것이다. 이 경우 부족한 것도 그리고 남는 것도 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느 조직에 속해 있건, 그 크기와 용량을 가늠하는 적절한 측정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측정의 결과는 오롯이 상대적인 것이므로 나와 조직을 분리하고 구성원들과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어야 슬기로운 조직 생활이 가능하다.


TV로 방영됐던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떠오른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방영되면 어떨까? 슬기로운 생활은 내가 국민학교 때의 교재 3권 중 산수와 자연, 탐구에 관련된 교과목을 묶은 책의 제목이었다. 국어와 윤리를 대신하는 바른 생활과 음악, 미술, 체육을 통합시킨 즐거운 생활과 더불어. 그래서 요 통합 교재 3권을 항상 책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그중 바른 생활은 일명 “책장 넘기기”라고 하는 게임에 주로 많이 사용되어서 우측 하단의 책장들이 너덜너덜해졌다. 참고로 책장 넘기기 게임은 처음엔 책을 덮은 상태에서 펼쳤을 때 펼쳐진 책에 나오는 사람의 숫자만큼 처음부터 책장을 넘기고, 그다음 장부터 다시 무작위로 책을 펼쳐서 나오는 페이지의 사람 수만큼 책장을 넘겨 가장 빨리 책을 덮을 수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즉 그림 속 사람의 수가 많은 페이지를 찾을수록 책장을 더 많이 넘길 수 있게 된다.

매일의 일상이 바르고, 슬기롭고 즐거운 생활이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