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한 번 써 보겠노라 작정해 본다.
나는 한때 은퇴를 하면 영어 동화를 번역하는 작가가 되겠다 생각했다. 동화를 직접 쓰겠다는 창작의 의지는 없었으나, 그나마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영어를 즐겁게 활용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 중 떠오른 것이 학습과 취미와 직업이 결부되면 가장 좋겠고, 그래서 최종 선택한 것이 바로 영어 동화 번역 작가다.
그러나 지금은 AI가 생활에 밀접해질수록, 이제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배우고 익히는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까? 더욱이 번역가라는 직업이 소멸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이다. 물론 번역의 창작성과 전문성을 AI가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영어는 주변에서도 누구나 잘 하고 쉬운 듯하면서도 결코 정복이 쉽지 않은 언어임에 틀림없다. 이 언어 장벽이 AI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는 조짐이 보이는 듯하다.
예전에 인기였던 매우 중독성이 강한 테트리스 게임이 떠오르면서 귀에 익숙한 테마와 함께 화면에 화려하게 떠오르는 크렘린 궁의 이미지 또한 생생한 기억을 소환시킨다. 블록 하나를 이리 저리 돌려 가며 맞춤이 되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또한 어떠한가? 이 게임의 묘미는 절체절명의 순간 블록 하나가 떨어지면서 그동안 쌓아 놓은 필드의 여백에 딱 맞춰지고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그 시원한 감정의 해소를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얀 볼드 글씨체로 GAME OVER가 게임기 화면에 나타나면 게임은 종료된다.
이렇게까지 AI의 유용성을 예찬하는 이유는 요즘 Chat GPT나 제미나이에게 다양한 번역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영작 번역 원고를 훑어 보면서 가장 좋은 것으로 선택하는 것만이 내 몫이지만 물론 나의 세밀하고 신중한 숙고의 과정을 거쳐 선별 사용한다.
얼마 전 MBA 동창들과 지금은 반드시 책을 몇 권 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고 얘기를 나눴다. 다들 글쓰기와 책을 내는 것에 동의하지만 도대체 어떤 주제로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여 글 쓰는 어려움 또한 동감하는 눈치였다. 공통된 의견은 “우리는 정말이지 평범해서 글을 쓸 소재가 딱히 없다.”였다.
“뭔가 글을 쓸 만한 소재 거리가 없고, 또 내가 쓴 글이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읽힐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더니 도서의 수요층이 MZ 세대로 넘어가면서 “요즘 MZ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하던데.”라며 어느새 독자층이 점점 더 얇아지고 있는 것에 염려하는 분위기로 들어섰다.
요컨대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유년 시절이 평탄하지 않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마침내 극복하여 상당한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난과 성공이라는 흥미진진하고 다이나믹한 소재들을 엮어 이처럼 평범한 우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혹적인 스토리 전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구입한 책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인류는 평범한 중간의 이들 덕분에 살아남았다!”라고 하는 단순한 메시지를 던지는데, 여기에 평범과 중간이라는 범주에 해당되는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에서부터 열렬한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렇게 찾은 ‘평범’이라는 단어는 아르키메데스가 나무 욕조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대리석 욕조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목욕 중 흘러 넘치는 물의 양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것과 같다. 유레카! 이 ‘평범’의 단어는 내 심장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솔직히 정말 느무느무 평범한 직장인이기에 무작정 이 책 제목에서 쓰인 ‘평범’이란 단어에 매료되었고 나의 글쓰기는 “이만하면 됐다”로 정해졌다. 좀 더 정확히 ‘평범’이란 단어 앞에 수식어 ‘지극히’를 붙여 ‘지극히 평범’함으로 써야 옳지 않을까?
혹여 동일한 제목의 책들이 존재하지나 않을까 의구심이 들어 온라인 서점을 점검해 봤는데 크게 눈에 들어오는 도서 목록은 없으니 다행이다.
‘이만’한 게 도대체 뭐란 말이지? 됐다는 거는 만족한다는 뜻인가? 하며 반문해 본다.
나의 해명은 이렇다. ‘이만하다’는 거는 그닥 잘난 거 하나 없는 나의 이만저만한 현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됐다’라는 것은 현 상태가 평범해서 성공과 잘난 체하기에 부족함이 많으니 이로써 감내하겠다는 의지이다. 제목에 대한 나의 합리성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뭔가 거창한 것을 생각지 않았다. 그냥저냥 나라는 사람이 특별한 소재 없이 글을 쓰기에 적당한 제목임을 자처해 본다.
또 오늘은 예사롭지 않게 강물 위에 아주 큰 새가 멋지게 하늘을 나는 꿈을 꾼 날이다. 그 새는 청둥오리와 같이 색감이 다소 화려했는데 컬러 꿈이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컬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새의 모양새는 아무래도 오리과의 철새처럼 둥글둥글한 체형이라기보단 날개가 제법 길었던 듯 수면 위를 멋지게 비상하는 모습에 의미를 부여했다. 늘 그렇듯 컬러풀한 꿈이 주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있었지만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날로 마무리될 듯하다.
이처럼 나는 평범한 사람이 ‘이만하면 됐다’는 제목의 글을 오늘부터 써 내려 가기로 했다. 근래 50에 읽는 OO시리즈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나는 50에 에세이를 쓴다. 단지 우려스러운 점은 혹시나 이 평범함이 내내 평범한 직장인의 불평을 하소연하는 글감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