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의 시, 겹쳐서

양말에 구멍이 났다

by 홍반장

겹쳐진 마음에 대하여



"양말에 구멍이 났다."


이 시의 첫 문장을 쓰고 나니 지난 미국 연수 길의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귀국을 준비하던 공항, 검문대 앞에 서 있던 내 친구의 구멍 난 양말을 보던 내 마음 말이다.


당시 친구는 기꺼이 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짐 속에 요플레와 사과 두 알이 들어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사과는 무사히 통과되었지만, 요플레는 결국 검색대를 넘지 못하고 그곳에 남겨졌다. 사실 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잊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짐을 재검사하는 긴 시간 동안, 친구는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발로 오도카니 서 있어야 했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그 작은 구멍이 마치 내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아릿했다. 너무 미안하고 절박한 나머지, 내 발로 친구의 그 민망한 발등을 살포시 덮어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의 내 심정을, 아니 어쩌면 그 자리에 서 있던 친구의 심정을 시인은 이렇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오래 있어야 하는 자리였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양말 구멍으로 내민 살이

꼭 그곳에 있기 싫은 내 얼굴 같았다


하긴 사람만 없으면 그것도 별일은 아니겠지만

밖으로 나가 새 양말을 사서 얼른 신었다

신었던 양말을 벗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 위에다 신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겹쳐서>이다.



부끄러움 위에 새 양말을 겹쳐 신고서야 비로소 안도했을 시인의 마음을 필사하며 생각한다. 속옷을 두 장 입는 사람도, 무안함을 감추려 가면을 겹쳐 쓰는 사람도, 터진 마음을 여미려 만두피를 겹쳐 빚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서로의 빈틈을 모른 척 덮어주는 그 사소한 '겹침'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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