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책방 투어 길에 우연히 만난 나태주 시인의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딸에게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육아라는 치열한 일상에 치여 딸의 책장에 오랫동안 멈춰 있던 그 책을, 오늘 아침 내가 슬며시 꺼내 들었습니다.
싱그러운 녹음이 가득한 표지는 곧 다가올 여름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 푸르름에 마음이 환해지는 것도 잠시, 시인의 말을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가슴이 울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첫 시 '오늘 하루'와 이어진 '안녕'에 닿았을 때, 결국 오랫동안 눌러 담아온 마음이 툭! 하고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 동안 / 이런 날 이런 저녁을 함께할 것인가!"
시 속의 이 서늘하고도 애틋한 질문이 가슴에 깊게 박혔습니다. '아,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지.' 시인의 문장은 내가 차마 외면해왔던 시간의 유한함을 가감 없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작년 환갑을 맞이하며 몸의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시선은 곁에 있는 남편에게로 향했습니다. 나보다 네 해를 앞서 걷고 있는 저 사람은 얼마나 더 고단할까.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알콩달콩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가슴 한구석이 콱 막혀왔습니다. 30여 년을 달려온 일의 종착역, '정년퇴직'이라는 완주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두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나는 완주를 3년 앞둔 올해, 명예퇴직을 결정했습니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퇴직의 명분이 되었지만, 사실 오늘 만난 나태주 시인의 시 속에 내 진짜 이유가 들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은 나를 조급하게 했고, 너무 늦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해야겠다는 결단으로 이끌었던 것이지요.
내게는 사회적 완주의 훈장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은 '오늘 하루'의 '안녕'이 훨씬 더 소중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그 인사를 충분히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딸의 말처럼 그저 감성이 풍부해지는 것일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좋습니다. 오늘 시 두 편 필사를 통해 '나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따뜻하게 응원받은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문학의 숲에서 길을 묻던 내게, 시인은 '완주'보다 중요한 것은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오늘 하루'의 '안녕'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