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연 작가의 유쾌한 착각 여왕을 읽고

가볍게 즐겁게 칠렐레 팔렐레

by 홍반장

이 책은 브런치 작가가 되고 얼마 안되어 글친구가 소개하여 구입하였다.

어떤 분의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고,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출판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감히 함부로 품으면서.

책은 이틀 정도 되어 집으로 도착했다. 평소 책을 너무 자주 구매하고 책 욕심이 유독 많은 나를 늘 경계하는 남편은 종이책 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한때 월급의 10프로를 도서구입비로 지출하던 그 열정적인 독서가는 어디로 갔는지, 원. 집에 책이 너무 많아 보관할 곳이 없다는 것이 그의 첫번째 이유이고, 이사할 때 곤란하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란다. 결국 남편 몰래 얼른 포장지를 뜯어 책장에 꽂아 두었다가, 밤이 되어서야 살짝이 꺼내 도둑 독서를 해야했다.


1장 은퇴 부부의 동거 일기, 2장 손녀랑 할미랑은 지금 나의 상황과 너무나 같아서 200%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나의 남편과 딸의 모습은 책 속의 인물들과 많이 달랐지만. 그들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한다.

3장 가족, 내 삶의 합창단, 4장 나는 이제 유쾌한 할머니를 꿈꾼다는 가족과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내가 책을 쓴다면 이와 같은 흐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단숨에 읽었다. 그만큼 몰입하게 하는 글맛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발칙한 생각 "나도 딱 한번만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
나만의 방식으로 이 고립을 즐길 작정이었다.
생동감 있던 공간은 정물화가 되어 갔다.
남편과 손녀가 흐트러뜨릴 때마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공간의 질서와 말끔함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문장을 읽는데 그 기분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 손자들이 어지르고 다니는 그 뒤를 졸졸 따르며 정리하고 있는 나. 컴퓨터 자판 앞에 앉기 위해 바닥에 널브러진 바지와 양말, 장난감, 흐트러진 책상위를 치우기까지 한참이 걸리다 보면 가끔은 한숨이 나오기까지 하니까. 그 모든 것이 사실 덧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책 읽기나 글쓰기가 안 되는 사람이 나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안다. 어질러짐이 있을 때 정리정돈이 비로소 빛난다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 저절로 온화해질 줄 알았는데, 웬걸, 예전 같으면 무심히 넘겼을 일에도 마음이 먼저 급해지고, 사소한 일에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나를 발견하며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내 꿈은 -제발 웃지 마시라- 빵터질듯한 뺨과 오동통한 몸집, 그리고 온화한 팔자 주름이 매력적인 '하하호호 할머니'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동통한 몸집은 성인병으로 다이어트 대상이고, 팔자주름은 한살이라도 젊어보이기 위해 없애야 할 성형의 대상인 세상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하하호호 할머니'를 꿈꾼다. 물론 그 '하하호호 할머니'는 늘 인자한 웃음과 모든 것을 수용하는 넓은 품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작은 일에도 화가 버럭 올라오고, 서운함이 먼저 앞서 서럽기까지 하니 '이건 뭐 어린애도 이런 어린애가 없다' 싶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기운은 없어서 작은 것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황도 어이 없고 슬픈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앱하나 설치하는 데도 수십번 반복하고도 안되어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 되고 보니 '하하호호 할머니'는 동화속에만 존재하나 싶기까지 하다.

서툴게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듯, 이제 또 서툴게 노인이 되어가는 법에 적응해야 할 시간인 것이다.


남편이 사다주는 커피 한잔에 행복을 느끼고, 넘어져도 깔깔 웃으며 일어나는 할머니, 삶은 무겁게 움켜질수록 힘들다며 가볍게, 즐겁게, 칠렐레 팔렐레 살고 있는 작가, 멋진 당신을 감히 응원합니다.

"서툰 노년이면 어떠랴. 마음 한 자락 가볍게 비워내고 '하하호호'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근사한 삶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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