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영 소설집, 그 남자의 방을 읽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방에 갇힌 여자들
"그 남자의 방, 그곳은 사랑을 가장한 이기심이 머무는 공간이자 우리가 차마 외면했던 관계의 진실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은 이 소설을 '기쁨과 슬픔, 학대와 고통, 기대와 좌절 등 사랑의 다양한 속성을 그려낸 작품'이라 설명한다. 사랑의 가치가 하락한 시대에도 진정한 사랑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되묻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내 입안에 남은 것은 고구마 100개를 단숨에 삼킨 듯한 지독한 답답함이었다.
연작인 듯, 연작 아닌, 연작 같은 묘한 연결고리 속에서 이야기는 흐른다. 그런데 2026년 오늘날에도 이런 식의 연애, 이런 순애보가 정말 존재할까? 왜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매몰되어 이성적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지 못하는지 안타까움이 앞선다. 누군가의 돈줄이자 밥줄로 전락해버린 여자의 삶, 그리고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비대한 자존심만 내세우는 남자 주인공의 뻔뻔함은 극에 달한다.
질문이 남는다. 왜 남자들은 그토록 뻔뻔하게 여자의 지고지순함에 응답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에 깊은 상흔만을 남기는가. 사랑이 이토록 쉬운 세상에, 왜 이 여자들은 그 사랑 앞에 속수무책으로 '쉬운' 존재가 되어야만 했는가.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작고 소박하지만 애틋함으로 서로를 감싸 안고, 허물을 덮어주며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길어 올리는 그런 온기 있는 사랑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 사랑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서로를 보듬는 진심일 텐데, 소설 속 '그 남자의 방'은 차갑고 비루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 남자의 방'이란, 그들이 사랑이라 믿었던—혹은 사랑이라 가장했던—이기심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 닫힌 방 안에서 상처받으면서도 문을 열지 못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못내 아프게 잔상으로 남는다.
브런치 글친구님의 출간도서이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도 올라와 있어 단숨에 읽었다.
"한 올 한 올 정성껏 길어 올린 사랑이 상처가 아닌 위로가 되는 세상을 기다립니다. 박순영의 <그 남자의 방>을 덮으며, 내 마음속 닫힌 방의 문고리를 가만히 쥐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