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수필이나 요리책은 바쁜 일상 속에서 좋은 글감을 선물해 줍니다. 요즘 제 손에 들린 초록색 표지의 책, 장석주 시인의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도 그중 하나입니다.
난데없는 겨울 호우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봄처럼 포근한 공기 속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문득 멈춰 서게 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오늘 제 마음에 와닿은 소제목은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오래전 시골집 아랫목에서 실뜨기 놀이에 열중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펼쳐졌습니다.
"아니, 아니, 거기가 아니라 요렇게 넣어야지."
"이렇게?"
"아니라니까! 아이 참, 다 엉켰잖아~"
유독 실뜨기에 서툴렀던 친구 ‘남이’와 놀다 보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습니다. 결국 실타래가 엉망으로 엉켜버려야 끝이 나던 놀이. 마음이 상해 며칠씩 얼굴을 외로 꼬고 못 본 체하다가도, 결국 놀 동무라곤 서로뿐이라 슬그머니 다시 마주 앉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남아선호사상이 짙어 딸이 귀한 줄 모르고 후남, 말남 같은 이름을 붙이곤 했지요. 제 친구의 이름도 '말남'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뜨끈한 사랑방 아랫목에 발을 묻고, 어머니의 두꺼운 실타래나 곡식 자루를 묶던 끄나풀을 연결해 실뜨기를 했습니다. 손가락을 걸고 뜨며 모양을 변형시키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오가던 실타래처럼, 우리네 인생도 각자의 방향으로 풀려나갔습니다. 유년을 함께 보낸 동무들이었지만, 가난은 우리를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들었습니다. 70년대 초반, 새마을 운동의 물결 속에 고향 친구들은 구미나 대구의 공단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낮에는 '산업 역군'으로 미싱을 돌리고, 밤에는 산업체 부설 학교에서 못다 한 배움을 이어가던 친구들.
멀리 떨어진 우리를 이어준 것은 엉킨 실타래 대신 '편지'와 '라디오'였습니다. 그때 한참 유행하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는 타향살이하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유일한 응원이었습니다.
"DJ 오빠, 대구 공단에서 공부하며 일하는 제 친구 남이에게 힘내라고 꼭 전해주세요. 남이가 좋아하는 전영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 신청합니다. 고향에서 ‘영’ 드림."
보내는 이의 이름을 슬쩍 이성적인 느낌이 나게 적어야 사연이 더 잘 채택된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순수함. 연습장에 몇 번을 고쳐 쓴 사연을 엽서에 옮겨 적고 정성껏 그림까지 그려 보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어쩌다 사연이 방송을 타면, 며칠 뒤 어김없이 답장이 날아왔습니다.
"미야, 네가 보낸 사연이 나와서 공장 식구들이 다 부러워했어. 정말 고마워. 보고 싶다."
라디오 스피커를 타고 흐르던 <단발머리>의 선율처럼, 그 시절 우리들의 꿈과 우정도 공중파를 타고 서로에게 가닿았나 봅니다.
나의 소중했던 동무 남아, 너도 기억하고 있니?
함께 실뜨기를 하며 모양을 만들던 그 손길과 별밤 사연에 설레던 밤들을.
10년 넘게 초등학교 동기회에 나가보지만 여전히 소식이 닿지 않는 너를 떠올려 본다.
손가락 사이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던 실뜨기 실처럼, 우리 비록 지금은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생을 살아내고 있지만, 언젠가 그 실끝이 다시 맞닿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