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상담소를 읽고

독립과 친밀 사이, 우리 가족의 적정 온도는 몇 도일까?

by 홍반장

퇴직 후 딸아이네 집으로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주말이면 밀린 모임과 볼일을 보러 대구 집으로 내려가고, 평일에는 딸아이를 도와 손주들 육아와 살림을 거들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내 자식이라 해도 떨어져 지내다 다시 합쳐 사는 과정이 마냥 달콤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서로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며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각오를 했음에도, 실제 맞닥뜨린 일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우연히 찾은 위로

어느 날 아침, 큰 손자는 어린이집에 가고 둘째는 딸과 함께 문화센터로 향했습니다. 남편은 하루 먼저 대구로 내려가 오랜만에 집안에 혼자 남게 되었지요. 청소를 도와주러 오신 이모님이 편히 일하실 수 있도록, 저는 본의 아니게 제 방에 ‘격리’ 아닌 격리가 되었습니다.


방을 정리하며 적적함을 달래려 들어간 ‘밀리의 서재’에서 눈에 띄는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호선의 가족상담소'였니다. 현직에 있을 때 저자의 유쾌하고 통쾌한 특강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나 곧장 오디오북을 재생했습니다. 저자가 직접 읽어주는 목소리가 귀에 쏙쏙 박히더군요.


책장을 넘기듯 오디오북을 듣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찔리기도 하고, 깊은 공감이 가기도 했습니다. ‘아, 내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그래서 딸아이가 그때 불편해했구나’ 싶은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스치기도 했지요.



"엄마, 이거 나 들으라고 크게 듣는 거야?"

한참 몰입해 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화센터에 갔던 딸이 돌아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때 오디오북에서 흘러나온 내용은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 관한 대목이었습니다. 방 밖으로 새어 나가는 소리를 들은 딸이 짐짓 장난 섞인 말투로 한마디 던집니다.


“엄마, 이거 나 들으라고 이렇게 크게 듣는 거야?”


멋쩍은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함께 웃으며 잠시 그 내용을 같이 들었습니다. 오해 살 법한 상황이었음에도, 오히려 그 순간이 서로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가족의 거리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음에 남긴 문장들: 가족 사이에도 '선'이 필요하다

책을 들으며 제가 꼭 기억하고 싶어 메모해 둔 구절들을 공유합니다.

1. 사랑한다면 적정 거리를 유지할 것

가족에 대해 다 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가족 또한 하나의 사회적 관계이며,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경계’가 분명할 때 건강한 관계가 유지됩니다.

지나친 친밀함은 때로 독이 됩니다. 가족이 원하는 친밀도의 수준을 파악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2. 걱정은 ‘응원’의 말로 바꾸어 전달할 것

자녀가 잘하고 있다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전한 뒤, 아이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서운함이 잔소리가 되지 않게 주의하고, 자녀를 한 명의 주체로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3. '내 탓'이라는 과도한 사과는 금물

자녀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다 내 탓이다"라며 자책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에게 간접적인 수동 공격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부족한 점은 있었으나, 그럼에도 잘 자라주어 고맙다는 ‘공감과 격려’가 훨씬 큰 힘이 됩니다.


4. 부모의 삶 또한 독립적이어야 한다

자녀의 삶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만의 노후를 철저히 준비하고, 나만의 ‘막춤’을 출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은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숲'입니다

이 책은 가족을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아니라, 각자의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숲’으로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숲이 아름답게 유지되려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바람이 지날 길, 즉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하니까요.


딸아이네 집에서 보낼 남은 시간 동안, 저는 이 ‘관계의 적정 온도’를 지키며 좀 더 차갑게 사랑하고 뜨겁게 응원해보려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지 않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숲을 가꾸어가는 과정. 그것이 지금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성숙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의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분 좋은 바람이 지날 만큼의 거리를 선물하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