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작가의 장편소설 <시평선 너머: 수상하고 발칙한 다이어리>를 밀리의 서재를 통해 만났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더니, 소개글을 보고 이끌리듯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열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는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에 단숨에 매료되고 말았다.
소설은 중2병을 코로나19에 비유하며 시작된다. 질병관리청의 관리 대상인지, PCR 검사가 필요한지, 혹은 감염과 격리가 필요한 질환인지를 묻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유쾌하면서도 날카롭다.
"나는 변한 게 없는데 어느새 중2라는 틀에 갇혀버렸어. 엄마는 너 중2병이라 반찬 투정 하는구나, 하며 날 환자 취급했어." (본문 55p 중)
나 역시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말하는 그 어른들처럼 뭔가 불손한 것과 맞닺뜨릴 때마다 '중2병이라 저렇다'며 너무 쉽게 치부했었기에 이 문장은 쉽게 넘길 수 없었다.
반찬 투정 같은 사소한 행위마저 '중2병'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에 갇혀버린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공감이 교차했다. 어른들이 규정한 '질병'이라는 틀 안에서 아이들은 배려받는 환자가 아니라, 조롱받고 포기되어진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아이들은 묻는다. 왜 중2병 백신은 없냐고.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백신이 개발된다는 건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바른 생활 로봇'이 된다는 뜻임을.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의 폭발하는 자아를 거세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치유일까. 오히려 아이들은 '빨리병'에 걸린 어른들을 위한 백신이 먼저 필요하다고 일갈한다.
책을 읽는 내내 설주와 친구들의 성장을 따라가며 내 마음속 케케묵은 편견들이 조금씩 비워지는 것을 느꼈다.
"좋아하는 게 곧 재능이야." (본문 153p 중)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부모들에게 "내 꿈은 내가 꾸겠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당당함이 대견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지 못하는 건 비단 아이들만의 숙제는 아닐 것이다. 설주가 "타인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발가락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나 역시 생의 도처에서 나를 옭아매던 타인의 시선들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새삼 실감했다. 콤플렉스마저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아이들의 거침없는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편안한 안도감과 행복으로 물들게 했다.
시간이 떠나가는 소리와 새로운 시간이 달려와 만나는 곳, '시평선(時平線)'. 그 경계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고 스스로 치유해 나간다. 중2병이라는 이름의 터널을 지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을 환자 취급하며 백신을 기다리는 모든 어른들에게 이 '수상하고 발칙한' 기록을 권하고 싶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덧 내 마음도 한 뼘 더 맑아져 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고칠 백신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시평선을 넘어올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