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며 책을 골랐다. 편의점 알바생 두호, 그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소설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영종도 하늘도시 외곽, '안락정원'. 자살에 실패한 이들이 죽음을 준비하러 모여드는 곳이다. 테오는 동생 테린이 남긴 서류를 따라 이곳에 잠입한다. 1층 커피숍과 반찬가게, 2층 호스피스 병동, 5층 테라스 식당까지. 소문과 비밀이 가득한 그곳에서 테오는 동생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동생 테린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를 안락정원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소설은 죽음을 예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이 '죽음을 실행하는 곳'이 아니라 '삶을 되살려내는 곳'임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안락정원에는 '마니또'가 되어 서로를 보살피는 규칙이 있다. 그것은 곧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삶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다. 늘 도망치기 바빴던 테오가 순이 할머니의 방망이질 소리에 분노하고, 마침내 타인의 방문을 거침없이 두드릴 용기를 배우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책을 읽으며 내 삶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주변에도 죽음은 늘 있었다. 가난이 문틈마다 끼어 있던 시절,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옆집 오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유품으로만 소식을 접했던 둘째 오빠. 어디선가 살아있을 것이라 믿으며 전국을 찾아다녔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정확한 사인도 모른 채 치러야 했던 장례와 49재. 그리고 암으로 투병하던 친구가 떠나던 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그 영특했던 딸의 소식까지. 그 기억들 때문일까. 박검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세상 어딘가에 안락정원 같은 곳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박검은 아들을 잃은 어미의 마음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다. 죽음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믿는 이들의 손을 잡고, 그저 한 걸음만이라도 삶 쪽으로 이끌고 싶다는 절박함. 그 마음이 안락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해졌다.
현직에 있을 때, 유행처럼 번지던 아이들의 자해와 자살 시도를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 정책과 매뉴얼이 쏟아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가정 내의 지지가 없는 상담은 공허했다. 부모들은 낙인을 두려워했고 상담을 거부했다. 그들의 마음 또한 이해했다. 나 또한 그런 부모였으니까.
사춘기 시절, 아들의 자살 사고가 높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다그쳤고 고통을 외면했다.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더라면 후회는 조금 덜했을까. 엄마로서 스스로 빵점이라 자책하던 시절, 혼자 앓던 아들의 손을 끝내 놓지 않고 품어주었던 그 상담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아들이 있다.
『안락정원』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치유의 공간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막는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매일 함께 식사하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사람을 살게 한다. 삶은 늘 고달프고 구차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죽고 싶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구원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 곁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밥을 나눠 먹는 일이다.
[밑줄 긋기]
"세상 어딘가에 안락정원 같은 곳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차를 나눠 마시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일들이 이토록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드는지 테오는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삶은 늘 그렇게 고달프고 구차해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 것 같다가도, 또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는 모양이었다. 누구에게나, 속절없이."
"그저 죽음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믿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한 걸음만이라도 삶 쪽으로 이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늘 죽음의 그림자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던 누군가에겐 그런 말조차 조롱처럼 들렸다." (첫 페이지 시작하는 말)
"태어남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 죽음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선택을 하면서 왜 그렇게 죽음을 하찮게 여기는 거죠?"
"인간은 태생이 자기중심적이라 자신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삶과 죽음도 그런 것 아닐까? 삶이 보는 죽음과 죽음이 보는 삶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자신의 편에서만 삶과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테오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조차 모르면서 무조건 도망치기를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테오는 항상 직면하지 않고 외면하기만 했다."
"죽음이란 것은 공감조차 할 수 없어서 더 고독한 건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구원이 아니어도 좋다. 오늘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우리를 내일이라는 삶으로 이끄는 가장 단단한 밧줄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