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들었고, 죽고 싶었다.
2013년 11월, 고1이던 나는 학교폭력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학창 시절은 나에게 지옥이었다. 보잘것없고 존재감 없던 나는, 주변 친구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내가 만만해 보였던 탓일까, 툭툭 치면서 건드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선을 넘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팔에는 멍이 들어가는 날도 많았고, 체육복이나 교과서를 빌려가서 못 돌려받기도 했다.
친구 사이에서 권력이 생기는 걸 느꼈고 잔반처리는 내 담당이 되어갈 때, 나는 혼자가 되기로 했다.
그렇게 자퇴를 결심한 나는, 사회부적응자가 되었다.
가족들에게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학교 시스템이 문제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러고도 성공할 거 같냐, 너는 무조건 실패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 순간 나는 내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이 괴로웠다. 우습게 보인 내 탓이라며 자책하고 나에게 원인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상태가 심각해짐을 인지한 나는 부모님의 권유로 정신과에 가게 되었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며 호전됨을 느끼긴 했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나를 탓했다. 나는 왜 이리 나약할까, 다른 사람들은 잘만 견디는데 난 왜 이리 약해빠진 걸까..
저녁이 오면, 다음날이 너무 두려웠다. 눈을 뜨기가 싫었다.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었다. 손목을 긋는 상상도 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가도 죽을 용기가 나진 않았다.
어느 날,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심장을 망치로 두드리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가슴을 부여잡고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겨우 버텼다. 처음 느낀 공황발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에서 뛰어들 것만 같고,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우울증과 공황, 불안을 안고 나는 생각했다. 왜 내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암이라도 걸렸으면 이라는 못된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문제라 생각했고, 별거 아닌 사춘기에 지날 뿐이라고 했다.
나를 탓하던 생각들이 파국적으로 흘러가 세상이 멸망했으면 하는 바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용기가 조금이나마 생겼다. 처음에는 방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이제는 편의점에도 들러 과자를 살 에너지가 생겼다.
스무 살이 될 무렵, 나는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느껴 새로운 환경을 택했다. 피디가 되고 싶던 나는 영상을 통해 내가 겪어온 것들을 말하고 싶어 영화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2년 만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사실은 두려웠다. 새로운 만남을 가지는 거 자체도 나에게는 일이었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혹여나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힘들었다.
행복하지 않을 땐 웃지 않아도 되고, 배려하지 않을 땐 배려하지 않아도 되고, 몰두할 땐 몰두하면 되는데 우울을 이기려고 마냥 즐거운척하며 지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나의 상태를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혹여나 그걸 약점 삼아 나를 괴롭히진 않을지, 주변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지 매 순간 고민하며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군대를 전역하고, 나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나처럼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상담교사를 꿈꾸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다행히 전공은 나에게 잘 맞았다. 내 상태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고 약도 거의 줄여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 후, 10년간 곪았던 상처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하는 게 행복이라고 믿었던 나는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예전에 내가 했던 기도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참을 힘들어했다. 그 후 나는 상담 일과 다른 알바를 병행하며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교수와 상사의 폭언과 갑질, 인신공격을 당하며 버티던 어느 날, 잡고 있던 운전대를 틀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가슴을 움켜쥐고 운전하는 날들이 늘었고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헛구역질을 하며 응급차에 실려가는 날도 생겼다.
그렇게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재발하여 어떻게든 졸업을 마치고 다시 고립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예전보다 견딜힘이 생겼고 그때는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걸 지금은 두려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어학연수와 해외여행을 다니며 많이 극복이 되었고 지금은 거의 완치라고 생각할 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다시 재발하더라도, 나는 이제 안다. 감정은 억누르면 안 된다는 것을, 실컷 울고, 맘껏 슬퍼하고, 힘들어해도 됨을 받아들였을 때 치유가 된다는 걸.
아직까지 우울증이라 하면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의지를 가져라, 스스로를 사랑해라, 네가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 와 같은 말들.
하지만 나도 안다. 걷기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뛰라고 한다면 과연 뛸 수가 있을까.
사실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지금도 두렵다. 혹여나 나를 비난하면 어쩌지, 나보다 힘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지 와 같은 고민들.
그럼에도 나는, 미움받을 용기가 생긴 거 같다.
그리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생겼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생기는 것만 같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듣고 싶었던 말은 힘들어해도 된다는 공감이었다.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사연이나 원인을 궁금해한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힘들어해도 될만한 이유가 따로 있지 않다고. 결국엔 내가 힘들면 힘든 거라고.
우리 주변에도 우울을 티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공감을 해준다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고, 조금씩이라도 털어놓으면 편해질 거라고!
요즘 나에게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 저녁에 먹을 맛있는 치킨을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고,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반려견들과 산책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들이라고..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 나는 인생 최초로 눈물을 흘리며 울어보았다. 내 삶도 이제는 정상궤도에 올랐구나, 나도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구나..
이런 힘든 시절을 겪으며,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나를 더 내려놓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우울의 늪에 빠질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걸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극복할 힘이 생겼다는 것,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것, 불행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즐기자 이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