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지 않아도…

(멀리서도 이어지는 작은 안부의 다리)

by 류정uk


동준은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처럼.


그는 Couchsurfing을 통해 밀양의 내 집을 찾았다.

조그만 20평짜리 아파트이지만, 나그네를 위해 열려 있는 집이다.

봄과 가을, 나는 이 집에서 밀양에 도착한 외국인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한국에 머물 곳을 찾고 있다”는 짧은 메시지였다.

엄마를 찾고 있다는 말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는 한 달 가까이 우리 집에 머물렀다.

아침이면 조용히 일어나 컴퓨터를 켰고, 낮에는 서류를 정리하거나 전화를 기다렸다.

밤이 되면 말수가 더 줄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밤은 늘 그렇다.


그가 태어난 것은 1996년 가을, 충주의 한 병원이었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병원을 떠나 입양기관으로 보내졌고,

곧 서울에서 위탁모로 살던 집으로 옮겨졌다.

여섯 달 뒤 그는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프랑스에서 그는 잘 자랐다.

사랑받았고, 공부했고,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어른이 되었다.

부족함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한국에 왔다.

“엄마에게 안겨보고 싶어요.”

그가 말한 전부였다.


그의 생모는 열아홉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다니던 중, 군 입대를 앞둔 남자와 헤어졌다.

그때 남은 것이 동준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좋은 가정으로 보내는 것’이 아이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아이를 살렸고, 두 사람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입양기관에서 그녀에게 연락이 갔다.

익명의 편지였다.

진실은 말할 수 없었고, 대신 오래전 후원에 관한 일이라고 전했다.


그날 이후, 동준은 한 달을 기다렸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림은 생각보다 육체적인 일이었다.

그는 날마다 자라목을 했다.

마치 이름을 부르는 연습처럼,

목을 가다듬는 소리만이 집 안에 남았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 날에도 그는 습관처럼 목을 축이고 다시 앉았다.


그리고 어느 밤, 전화가 울렸다.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둘은 말없이 울먹였다.


그날 밤 자정을 지나

그녀는 한 번 더 전화를 했다.

어떤 소식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의 삶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거절이었지만, 동시에 응답이었다.


동준은 그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았고, 화내지도 않았다.

다만 그날 밤, 불을 끄지 못한 채 오래 앉아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

잘 자랐다는 것,

여전히 자신을 향한 사랑을 품고 있다는 것을.


동준은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엄마를 찾았다.


찾았다는 것은, 꼭 만났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우리 집을 떠나던 날,

짐은 올 때보다 가벼웠다.

대신 어떤 확신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


지금도 그는 기다릴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마음속에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줄 날을.


그 밤이 오지 않더라도,

그는 가끔 네게 안부를 건넨다.

더 이상 목을 가다듬지는 않는다.


멀리서도,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관계와 사랑은 이미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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