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번지는

오늘도 열려있습니다

by 류정uk


코로나가 처음 퍼지던 해,

나는 한 집을 고치고 있었다.


주소는 44번지, Broadbottom.


그리고 그 집이

내 인생의 마지막 약속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임대 사업을 시작한 이후, 스무 번째 프로젝트였다.

그때 나는 이 집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은퇴를 준비하며, 내 고향 밀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벽을 허물고 배관을 드러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은 앞으로도 나보다 오래 살지도 모른다는 것.

집은 늘 사람보다 오래 남는다.


그러다 내가 먼저 무너졌다.

백신이 나오기 전,

초기 감염자 명단에 내 이름도 올랐다.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지자

공사 일정도, 자재도, 계산서도 의미를 잃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숨을 셌다.


하나,

둘….


다음 숨이 올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밤을 넘길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죽음은 영화처럼 오지 않았다.

비장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했고, 지나치게 일상적이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누군가에게 맹세했다.

특정한 신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약속이었다.


살아난다면,

이 집을 나만의 공간으로 두지 않겠다.

항상 누군가를 위해 열어두겠다.


그 약속은 그날 밤을 넘기게 했다.

그리고 나는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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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가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Broadbottom은

영국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내가 사십 년 전, 영국에서의 첫 삶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고

세 아이를 키워낸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민은 약 천 명.

그중 삼분의 일가량이 예순을 넘겼다.

선술집 하나, Chinese takeaway, 그리고 Garden Centre 가 전부인,

시간조차 천천히 흐르는 곳이다.


회복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노인정’이라는 단어였다.


한국에서 자란 기억 속 노인정은 늘 열려 있었다.

겨울이면 따뜻했고, 혼자여도 들어갈 수 있었으며,

나이 든다는 것이 곧 고립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국가와 지역이 함께 책임지는

최소한의 돌봄이 그곳에는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말했다.

“지난주에는요,

일주일 내내 누구와도 말 한마디 나주지 않았어요.”


그 말은 설명도, 항변도 아니었다.

사실을 나열하듯 조용히 던진 문장이었다.


그때 나는 이 마을의 복지가

제도 속에만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노년의 외로움은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었고,

특히 배우자를 잃은 뒤의 시간은

아무에게도 배정되지 않았다.


나는 내 집 안방을 내놓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이 작은 동양인이, 그것도 자기 집을,

왜 노인들에게 열겠다는 건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질문보다 침묵이 길었다.

그래도 문은 열렸다.


처음엔 한 명.

그다음엔 두 명.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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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번지는 그렇게 사람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6년 동안

접이식 간이 의자를 몇 번이나 더 추가 주문했다.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차를 끓이고 의자를 놓았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저 앉아 있고, 말하고, 듣는 시간.

그게 전부였다.


“여기가 없었으면 겨울 내내 집에만 있었을 거예요.”

“일주일 내내 오늘만 기다려요.”

“고맙습니다.”

비슷한 말들이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생명줄’이라 불렀다.

나는 그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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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이 교사였던 J는 늘 창가에 앉았다.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었다.


가끔 내가 “차 한 잔?” 하고 물으면

“한 모금이면 충분”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컵을 두 번 채워 마셨다.


그녀는 딸과 가까이 살기 위해

Sheffield로 이사했다.


몇 달 뒤 편지가 도착했다.

그곳에서 작은 모임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44번지에서 배웠어요.”


한 집의 온기가

다른 도시로 옮겨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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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는 예술가였던 A를 떠나보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던 사람이었다.

A는 늘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날도 코트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의자를 접으려 했지만,

사람들이 바쁘게 몰려오자 결국 멈추었다.


“오늘은 그냥 앉아 있어야겠네.”


나는 속으로

‘의자 접기 금지!’라고 결재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날 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뒤 도착한 메시지 한 통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다. A의 두딸로부터였다.


“당신과 44번지는

제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에

생명줄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집은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사람의 시간을 담는다.


44번지는

그녀가 마지막까지

사람 속에 머무를 수 있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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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번지는 지금도 따뜻하다.

난방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지만,

그때 맹세했던 약속으로

한 번도 꺼본 적은 없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어쩌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하지 않으면

그 자리는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그 공백은 외로움이 된다.


나는 그 빈자리를

잠시 맡고 있을 뿐이다.


집은 여전히 44번지다.

하지만 이제는 주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병상에서 했던 약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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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만의 집이 아닌 44번지.


외로운 하루도 이곳에서는 따뜻하게 살아 숨 쉰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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