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 1부 - 흔들의자 아래서, Snake Pass 위에서)
서른일곱, 젖먹이 아들과 네 살 난 딸을 가진 엄마가 대학생이 되었다. 계획도, 대비책도 없이, 오직 마음속 꿈만을 붙잡은 채였다.
꿈속에서만 그려오던 ‘영국의 대학생’의 모습은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아이들을 맡길 곳도, 경제적 여유도 없었던 나는 결국 딸은 유치원으로 보내고, 아직 젖먹이인 아들은 품에 안은 채 강의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보기로 했다.
현아는 내 책상 아래에서 흔들의자 노릇을 했다. 내 두 발은 그의 작은 흔들림을 받쳐주었고. 필기를 하다 말고 발로 흔들고, 흔들다 말고 다시 책장을 넘기며, 나는 곡예사처럼 균형을 맞추었다.
학과 친구들은 웃으며 “새로운 서커스 단체 모집 중이네”라고 했고, 아들 현아는 자연스레 우리 학과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한 번은 수업 중 갑자기 울음이 터진 아이에게, 교수님은 장난스레 말했다.
“오늘 발표는 너 때문이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들도, 나도, 이곳에서는 존재 자체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던 인종차별은 없었다. 대신 국적과 나이를 넘어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작은 온기가 있었다.
교수님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학우들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웃어주었다. 덕분에 내 험난한 이국 타향살이는, 교실 안에서만큼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수업은 보통 3시면 끝났지만, 나는 1시면 서둘러 학교를 떠나야 했다. 딸아이 학교 마치는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가 쉬는 날에는 수업에 아예 가질 못했다.
애 둘을 데리고 강의실에 들어갈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아서.
그래도 학업만큼은, 그렇게 허술한 나를 두고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은 교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A57, Snake Pass가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漢字試験(かんじしけん) 준비로 한자를 너무 많이 쓰다보니, 오른손이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나는 왼손으로 글을 쓰고 운전하며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했다.
오른손은 마치 불만이라도 있는 듯 “왜 나만 놀리냐!” 하며 시위했지만, 왼손은 이를 악물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 무렵부터였다. 내 하루의 중심이, 교실이 아니라 ‘길’로 옮겨간 것이.
나는 그 두 손 사이에서, 매일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의 새로운 리듬을 찾으며, 하루에 왕복 두 시간, Snake Pass를 달렸다.
‘뱀이 지나가는 길’이라는 이름처럼, 길은 끝없이 구불구불했고, 눈과 안개가 길 위를 덮었다. 남편이 힘겹게 마련해 준 미니 고물 차를 타고, 아직 잠이 덜 깬 몸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은 내 작은 교실이었다. 손 하나로 핸들을, 다른 손으로 노트를 받치며 일본어 문장을 중얼거렸다.
“これ、どういう意味だっけ…?”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시 반복하고, 다시 읽고, 또 중얼거렸다.
마음속으로는 동시에 “이 길만 무사히 넘으면, 오늘도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어”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차가 미끄러져 도로 한쪽으로 밀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순간, 나는 혼자 웃었다.
‘이 길 위에서 내 인생의 드라마가,… 주인공이 나 하나라서 다행이야.’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흔들의자 아래서, Snake Pass 위에서.
나는 늦깎이 학생으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한 손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도 흔들렸지만, 다시 중심을 잡고 숨을 고르며 오른손과 왼손,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조금씩 배워갔다.
그때는 몰랐다.
매일 아들과 함께 넘던 그 ‘뱀의 길’이,
내 인생의 가장 길고 고된 예습이 되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