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었던 여름방학

(대학생활 5부 – 인간 교재가 되다)

by 류정uk


1993년,

내 인생 첫 대학 여름방학은

‘방학’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놀 계획은 없었다.

쉴 체력도 없었다.

남은 건 단 하나,

재시험.

번역과 문법,

역사와 논술.


이건 공부라기보다는

구조 요청에 가까웠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내 문제는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교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재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법책을 펼치면

설명은 친절했다.

너무 친절해서

세 페이지를 읽고 나면

내가 뭘 읽었는지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건 A다.

하지만 B일 수도 있고,

C인 경우도 있으니

문맥을 봐라.”

문맥이 어디 있냐고요.

나 지금 아이 기저귀 갈다가

문법책 다시 펼친 사람인데.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책을 이해하려 하지 말자.

내가 책이 되자.

그날부터 나는

인간 교재가 되었다.



여름방학을 버티기 위해

나는 “일어 따라잡기”라는 이름으로

세 가지 계획을 세웠다.


1. 일본 사람과 어울리기

2. 일본 TV와 비디오 보기

3. 일본 책 읽기


문제는 늘 그렇듯,

“어떻게”였다.


먼저 일본 교회를 찾아냈다.

무종교였던 내가.

일본 교인들에게 사정을 해서

비디오를 빌렸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

끝없이 보고 또 본 드라마가

**〈모모코네 가족〉**이라는 연속극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도 일본어 대사를 기억한다.

서로 싸우다 뭐 좀 돌려달라며

외쳤다.


“카에 시테 쿠다사이!” かえしてください!


둘째,

인터넷도 없고 모바일 폰도 없던 시절,

한 달에 40파운드라는 거금을 들여

NHK 위성 방송을 신청했다.


그때 우리 집은

영국이 아니라

작은 일본 영토가 됐다.


셋째,

학교 일본학 도서관에서

연애소설, 추리소설을

종류 가리지 않고 몽땅 빌려왔다.


지금은 작가 이름도

책 제목도 다 잊어버렸지만,

처음엔 몇 페이지 넘기기도 힘들다가

챕터 2쯤 가면

히라가나를 좀 놓쳐도

한자로 대강 이해가 됐다.


특히 그…

약간 색스러운 장면이 들어간

추리소설들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공부가 아니라

거의 탈출구였다.



집 안은 점점

교재로 변해갔다.


주방 벽에는 일본어 동사가 붙었고,

냉장고에는 조사 설명이 붙었다.


“は와 が의 차이”는

우유 옆에 있었다.


아이 이유식을 만들며

중얼거렸다.


“食べる…

食べさせる…

아, 이건 사역이구나…”


아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컸다.

아마 그의 인생 첫 외국어 노출은

일본어 문법이었을 것이다.


차를 타면

그 안은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었다.

이동식 강의실,

아니, 이동식 자습실 겸

정신 수련장이었다.


신호에 걸리면 속으로 번역.

길이 막히면 문법 복습.

그러다 문득

나는 혼자 웃었다.


‘이 나이에,

애 둘 키우면서,

일본어 문법 때문에

운전하다 눈물 흘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웃긴데,

좀 서러웠다.

밤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았다.

아니, 앉아 있었다는 표현은 과하다.

대부분은 멍하니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뇌는 이미

업무 종료 상태였고,

눈은 글자를 읽고 있었지만

이해는 다음 생으로

미뤄진 느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건 네가 못해서가 아니야.

지금 네 인생이

문법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복잡할 뿐이야.”


그 말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조금 울컥했다.


나는

뒤처진 학생이었고,

나이 많은 학부생이었고,

젖먹이를 안고

시험지를 넘겨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까지 온 사람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나는 알았다.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고,

여전히 느렸고,

여전히 자주 틀렸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놓지 못한 추리소설 덕분에

독해력은 눈에 띄게 늘었고,

NHK 뉴스 덕분에

듣는 귀도 현저히 열렸다는 것.


인간 교재는

도망가지 않는다.

책은 덮을 수 있어도,

나는 나를 덮을 수 없으니까.


어쩌면 그 여름은

내가 처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웃으면서 시작했는데,

마지막엔

조용히 울었다.

하지만 그건

망해서 우는 울음이 아니라,

아직 여기 있다는 사실이

조금 벅차서 나온 울음이었다.


— 다음 회에 계속.

재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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