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나눔이 ‘찔끔’이 되는 순간

(도움은 언제 의무가 되는가)

by 류정uk


오랫동안 한 친구를 도아왔다.

처음엔 ‘커피 몇 잔 값’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외식 한 번 값’이 되었고,

어느 순간엔 ‘이건 좀 큰데?’ 싶은 금액이 되었다.

그런데 어제, 그 모든 시간이 한 단어로 정리되었다.


“찔끔”


그 친구는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한다.

영국에 오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게 도왔고

나는 “춥게 살지 말라”며 슬쩍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늘 바빴다.

건축 업자들, 막일 노동자들, 세입자들 사이에서

인내심은 날마다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그래도 벌어들인 돈과 시간을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조금씩 흘려보냈다.

노인정으로, 여행객을 위한 잠자리로.


내 삶은 늘 소박한 편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그런데 어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찔끔찔끔하지 말고, IT 학원 부지 하나 사주지 그랬어.

아니면 학교라도 하나 지어주던가.”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뿜을 뻔했다.


잠시 절망스러웠다.

황당했고,

서운했다.


20년이 ‘찔끔’이 되는 데는

문자 한 통이면 충분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났다.

나는 내 기준에서는 ‘마음껏’ 나누어 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재벌이 아니고,

천사도 아니고,

그냥 인간이다.


친구는 신앙으로 나누었지만

종교가 없는 나는 그저 마음으로 나누었다.


어쩌면 그 말은

현장의 절박함에서 나온 과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관계가 만든 무심함일 수도 있고,

기대치가 너무 커져버린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제 한 가지를 다시 배웠다.


도움이 의무가 되는 순간,

그건 봉사가 아니라 할부금이 된다.


그녀는 “더 크게”를 말했고

나는 “지속 가능하게”를 택했다.


친구야,

내 마음은 컸다.

하지만 내 한 달 용돈과 체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도 앞으로도 돕겠다.

다만, 웃으며 할 수 있는 만큼만.


학교는 못 지어도,

문은 열어둔다.


그러니까

“학교 하나 지어 달라”는 부탁은…


커피 한 잔 앞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부지는 못 싸주지만,

커피는 내가 산다.

그리고 그건 ‘찔끔’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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