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은 인연

(작은 친절이 국경을 건너는 방식)

by 류정uk


나는 미국인 터커(Tucker)씨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아니라, 메시지와 신뢰,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터커는 Couchsurfing을 통해 알게 된 여행자였습니다.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밀양 우리 집에 머물 것을 요청했지만,

나는 그때 영국에 있었고 직접 도와줄 수 없어서 친구 낭근 씨의 집을 소개했습니다.


그 집에는 며느리 선희 씨와 손자, 손녀들이 있었습니다.

터커는 단 36시간 머물렀지만, 그는 그 시간을 “일주일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 속에는 단순한 방이나 소파가 아니라, 한 가족의 하루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찰과 연못을 함께 걷고,

집에서는 계절 과일과 김치, 된장으로 차린 밥을 나누고,

온돌이 깔린 안방에서 잠들고, 가족은 거실에 모여 밤을 보냈습니다.


작은 통증에도 약을 내어주던 손길,

아이들과 언어 없이 웃고 놀던 시간.


터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지금 가장 성가신 한국 홍보대사가 되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이야기를 하고, 커피와 식사를 나누며,

사람들을 집에 재워주기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배운 환대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1년 뒤, 터커는 다시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는 광주 박물관에서 3개월 동안 공부할 수 있는 예술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국으로 꼭 다시 돌아오고 싶어 최선을 다해 도전한 결과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터커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머무는 곳은 여전히 낭근 씨의 집이었습니다.


선희 씨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 터커가 도착해요.

이렇게 귀한 인연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이들이 터커를 무척 기다리고 있어요.”


잠시 뒤 터커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부산으로 가는 중이에요.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짧은 영상 하나가 전송되었습니다.

고속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들이 터커를 발견하고 달려가고,

터커는 허리를 굽혀 아이들과 눈을 맞춥니다.


그 순간 나는,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을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꼈습니다.


우리가 나눈 것은 단순한 잠시 머물 곳 하나, 밥 한 끼, 마음을 여는 태도뿐이었습니다.

그 작은 친절은 한 여행자를 ‘손님’이 아니라 이야기로 만들었고,

그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한국을 알리는 일은 이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그저 사람을 맞이하는 일로.


그리고 그 마음은 멀리 있어도, 서로를 알아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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