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탁은 병원이 되었다)
약 3년 전, 이태리에서 온 한 여행자가 밀양 집에 머물렀다. Dott. Giuseppe,
귀향을 목적으로 마련한 작은 아파트의 첫 손님이었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배낭여행자인 줄 알았다.
지도 보고 길 묻고, 배낭 하나 메고 다니는 그런 사람.
며칠 지내다 보니 슬슬 의심이 들었다.
이 사람, 배낭보다 이력서가 더 무거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는 정신과 의사였다.
이태리 시간에 맞춰 세계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환자를 만났다.
여행 중에도 상담은 멈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직업과 동행하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태권도 블랙벨트였다.
젊은 시절, 이태리에서 한국인 사범에게 태권도를 배웠다고 했다.
근처 태권도장을 꼭 가보고 싶다며 나를 졸랐다.
수소문 끝에 도장을 찾았고,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관장님은 흔쾌히 문을 열어주셨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조용히 인사하더니,
이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장 안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괜히 어깨를 펴고 서 있었다.
마치 내가 데려온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이어 옛날 이태리에서 만났던 한국인 스승 이야기를 꺼냈다.
이름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때부터였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스르르 무너졌다.
도장을 나설 때 그는 티셔츠와 논문집까지 선물로 받았다.
예상치 못한 환대였다.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장 근처 슈퍼로 달려가 와인을 사 들고 돌아왔다.
감사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의 눈가에는 살짝 물기가 맺혀 있었다.
아마도 오래전 스승의 기억이 따라온 모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다시 슈퍼마켓에 들르자고 했다.
이번에는 이태리 식재료와 양념을 한가득 샀다.
“감동을 받으면 요리를 해요.”
꽤 건강한 방식이다.
나는 보통 감동을 받으면 눈물부터 나는데.
그날 저녁 그는 파스타와 쇠고기 요리를 만들었다.
맛있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 안에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그의 삶과 기억,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깨달았다.
감동의 최고 표현은 눈물이 아니라 파스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식사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또 다른 이력을 조용히 풀어놓았다. 요리사, 운전 강사, 다이빙 강사 자격까지.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삶을 성실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는 SERVAS International을 통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를 Couchsurfing으로 안내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떠돌이 인생 중 서바스를 통해 오랫동안 많은 환대를 받아왔다.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씩 돌려주는 중이다.
그는 지난 2년간 남미를 여행했고,
한국은 마지막 여정이라고 했다.
곧 서울을 거쳐 이태리로 돌아가, 2년 만에 부모님을 만난다고 했다.
여행 중에도 그의 일은 계속됐다.
그날 저녁, 티셔츠 차림에서 셔츠와 넥타이로 갈아입는 순간,
여행자는 사라지고 의사가 앉았다.
내 식탁이 갑자기 국제 병원이 된 기분이었다.
마치 사무실에 있는 것처럼 환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무려 일곱 시간 동안.
나는 중간에 커피를 두 번 마셨는데,
그는 환자를 일곱 명 만났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거의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웃으며 말했다.
“여행하다 돈이 부족해지면 이렇게 몰아서 일을 해요.”
프로 여행자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를 떠나보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은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태도가 좋아서
어디서든 환영받는 사람이구나.
괜히 스승을 기억하는 게 아니고,
괜히 눈물이 고이는 게 아니구나.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좋은 인연들이 참 많다.
다행히 그날,
그 좋은 인연 한 명이
내 식탁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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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호스팅이라는 것은, 내가 배워가고 있듯이,
단지 잠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한 삶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사십 년을 떠돌아다닌 끝에,
나는 이제서야
머문다는 것의 의미를 —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절실히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