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설날 아침,
오래된 이름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머나먼 타향, 영국 땅에서 맞는 명절이지만
마음은 늘 오래된 자리로 돌아간다.
사람마다 마음이 쉬어 가는 곳이 있다.
누군가는 바다라 하고,
누군가는 술집이라 하고,
요즘 사람들은 명상 앱이라던데,
내게는 한 사람이었다.
이름부터 편안한 아이, 순득.
순할 순(順)에, 얻을 득(得).
이름이 그러하니, 삶도 순해야 할 텐데
다행히 그는 그 이름을 끝내 배신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관계지만,
아직까지 서로를 차단하지 않았다.
순득이는 동네 제실 옆 흙집에서 살았다.
벽은 흙이었고,
창문은 유리가 아니라 창호지였다.
요즘 아이들이 보면
“체험형 민속촌이야?” 하고 물을 법한 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늘 따뜻했다.
난방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선하면 집도 선해진다는 것을
나는 그 집에서 처음 알았다.
우리 집은 딸 다섯.
늘 다툼이 있었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겼다.
반면 순득이네 집은 조용했다.
노부부와 늦둥이 딸 하나,
쉰을 넘긴 아버지가 얻은 귀한 아이였다.
내가 말썽을 부려 집에서 쫓겨나면
내 발은 저절로 순득이네 안방으로 향했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 방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숨이 가장 편히 쉬어졌다.
아마 잔소리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가난은 착한 아이에게도 공평했다.
순득이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채
산업혁명의 물결과 함께 도시로 떠났고,
나는 학교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갔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시끄러워야 할 십 대를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건너갔다.
세기가 바뀌던 어느 날,
나는 그녀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부산 주례까지 찾아갔다.
중국집 문을 열고 물었다.
“류순득을 찾아왔습니다.”
“그런 사람 없는데요.”
허무해 돌아 썼는데, 주인장이 헐레벌떡
나를 불러 세웠다.
“아, 가만 생각해 보니… 요,
류 순득이가 내 마누라네요.”
그 순간 알았다.
사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가 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고,
이번에는 또 내가 떠났다.
중동으로, 돈을 벌기 위해.
그때는 우정보다 생계가 먼저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거의 사십 년이 흘렀다.
잊고 산 줄 알았는데,
잊힌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세계여행을 핑계 삼아
우리는 한 달을 함께 보냈다.
젊었더라면 오래 서서 감탄했을 풍경 앞에서도
순득이는 잠시만 머물렀다.
“예쁘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대신 그는 사람을 보았다.
시장 아주머니의 빠른 손놀림,
허둥대는 종업원들의 어설픈 동작,
말이 통하지 않아도 꿋꿋이 웃는 얼굴들.
버뮤다 시내 한복판,
줄지어 선 노숙자들.
순득은 그들 사이로 걸어가
무료 급식소에서 나누어 준 점심을 조용히 받아먹었다.
그녀가 서 있는 곳마다 삶이 있었다.
작은 가게 주인,
땀에 젖은 청소부,
언어가 달라도 웃음을 나누는 아이들.
순득은 그 모든 순간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불평도, 감탄도, 과장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의 호흡과 마음의 온도를 느끼며
자신의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오랫동안 중국집 불 앞에 서 있었던 사람답게.
어느 밤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놓았다.
그녀는 십수 년을 공장에서 일하며, 또 한때는
중국집 배달통을 옆에 끼고 아이들을 키웠다.
아들은 공학 박사가 되었고,
딸은 교사가 되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조금도 자랑하지 않았다.
“애들이 지 할 일 한 거지.”
울지도 않았고,
위로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땐 그랬지.”
치열하게 살았지만 날카로워지지 않았고,
많이 견뎠지만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순득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다시 알았다.
인생에서 가장 귀한 동행은
앞서 끌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조용히 걸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멀리 떠나지 않는다.
그저 순득을 떠올린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냥 순득이면 충분하다.
인생이 아무리 돌아도
마음은 결국 그 자리로 돌아온다.
순득에서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