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떨군 날들의 기록)
내 인생의 첫 귀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개를 떨군 채, 숨죽인 채.
국가의 복지라는 말의 존재조차 몰랐던 그해
나는 젖먹이 딸아이와 함께
연탄아궁이 하나로 된 단칸방에 덜컥 남겨졌다.
그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다.
살을 에는 공기 속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고향 친정집뿐이었다.
등 뒤에서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골로 이어지는 그 길은
나를 품어주는 길이 아니라
나를 짓누르는 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부끄러움이 내려앉았다.
그 길은 돌아감이 아니라,
버티지 못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길이었다.
대문 앞에 섰을 때
나는 한동안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낯익은 기침 소리와 장작 타는 냄새가
발을 붙들었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내가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엄마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다 먼저 걱정이 스쳤다.
“왔냐.”
그 한마디에 나는 무너질 뻔했다.
엄마는 말이 없으셨다.
대신 아궁이 불이 우리 사이를 데우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바늘방석이 깔렸다.
어디에 있어도 편히 앉을 수 없는 마음.
그리고 나는 결국 또 한 번 떠났다.
어린 딸을 뒤로한 채,
간호고등기술학교 졸업장 하나에 의지해
중동으로 향했다.
낯선 땅의 병원에서
나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소독약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병실 속에서,
나는 이름 없는 존재로 하루하루를 지탱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살기 위한 시간이었고,
버티기 위한 시간이었다.
계약이 끝났을 때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더 먼 길을 택했다.
영국이었다.
처음 도착한 날,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차가운 공기 속에 서 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빗물 섞인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낯선 땅이 내 피부에 각인되는 듯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길이 집과 전혀 다른 세계임을 알려주었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살아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삶은 나를 흔들었다.
막내를 품에 안던 날,
내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늦깎이 학문의 길이 그 앞에 펼쳐졌다.
돌아보면
사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픔과 선택, 책임 속에서 이어진 삶.
나는 여러 번 떠났고, 여러 번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겨울의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서 있다.
대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지 못하던 사람.
고개를 떨군 채,
그러나 돌아서지 않았던 사람.
그것이
내 첫 귀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