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일지 1 - 집을 되찾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
세상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다지만,
이 정도면 인생이 나를 블랙코미디 작가로 키우려는 게 분명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성탄절과 신정을 숨 가쁘게
지나 1월 5일, 나는 비닐봉지 몇 개에 인생을 접어 새 거처로 옮겼다.
말 그대로, ‘집안 짐=나의 생애’였다.
루턴 시내의 테라스드 하우스.
한때 네 명이 살던 쉐어드 하우스였지만, 이미 두 명은 조용히 사라진 뒤였다.
“집을 팔아야 해요. 한 달 후 나가 주세요.”
그 말과 함께, 그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남은 건 두 남자였다.
스무 살 후반의 헝가리 남자 타마스,
검은 수염을 단정히 다듬은 인도 남자 하딥.
이 집은 분명 내 집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영국은 세입자의 천국이다.
정확히 말하면, 집주인이 가장 불리한 나라다.
“직업을 잃었습니다.”
“집세를 못 냅니다.”
“주인장이 우리를 내쫓을 수 있나요?”
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그들은 당당했고, 나는 멍했다.
눈앞에 앉은 두 남자는
법이라는 무기 앞에서 마치 귀여운 고양이처럼 도도했다.
나는 계산을 시작했다.
이 년 동안의 수익 없는 법정 절차인가,
아니면 또다시 홀로 몸으로 맞서는 일인가.
지난 20년 동안,
나는 늘 같은 방식으로 위기를 통과해 왔다.
말이 안 통하면, 몸이 먼저 나서는 방식.
그래, 이번에도 몸으로 때우기다.
일단 전입 신고를 하고, 자동차 주소도 옮겼다.
시내 주차권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선언했다.
“나 여기, 너희들이랑 살러 왔어.”
아래층 현관 입구 방으로 몸을 들였다.
마흔 해 전, 영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처럼
다시 쉐어드 하우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무기는 단순했다.
일흔 고개를 바라보는,
조그마한 몸 하나, 손자 네 명을 둔 한국 할머니.
덩치 큰 두 남자 앞에서
이 몸은 너무 작아 보여 오히려 위험했다.
“너희 둘 중 누구라도
내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나는 바로 경찰 비상번호를 누른다.”
그들은 이해했다.
이건 몸싸움이 아니라,
치열한 신경전이라는 것을.
한 달 동안의 전쟁은
완벽한 심리전이었다.
아침마다 욕실 앞에서 발을 구르며 외쳤다.
“야! 빨리 안 나오면 나 문 앞에 오줌 쌀 거야!”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건,
그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그들이 잠들 시간에는 페인트를 칠했다.
저녁마다 부엌 바닥엔
도구와 페인트 통을 일부러 흩어 놓았다.
집은 얼마든지 손볼 수 있었다.
집수리는 내 권한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내보낼 권리는 없었다.
나는 집을 고치는 사람이었고,
그들에게 집은 점점
살기 불편한 공간이 되어갔다.
속으로 매일 점수를 매겼다.
오늘은 내가 1점.
내일도 내가 1점.
모래는 누가 먼저 무너질까.
한 달째 되는 날,
그들은 짐을 쌌다.
두 손을 들고나갔다.
집은 드디어 내게 돌아왔다.
한 달 동안 덧칠한 페인트와
일주일 만에 들여놓은 식물과 꽃들로
집은 개천이 아니라, 거의 용궁이 되었다.
그리고 집은 팔렸다.
세 명이 경쟁했고,
만 파운드의 웃돈으로 거래가 끝났다.
그제야 나는 숨을 쉬었다.
인생은 가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계산이 맞아떨어지기도 하는구나.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조용하지 않았다.
집은 돌아왔지만,
나는 정말 돌아온 걸까.
그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법을 등에 업은 세입자와,
몸을 방패 삼은 집주인 사이에서
나는 더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며칠 뒤,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집의 세입자 하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창고를 가득 채운 스포츠 용품만 남긴 채,
그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날 나는 아들과 런던의 박물관을 돌고
점심을 먹었다.
아주 평범하고,
그래서 더 소중한 하루였다.
삶은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흘러가다가,
문득 전혀 다른 계산서를 내민다.
집을 되찾는 데는
한 달이면 충분했지만,
이 나라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에는
여전히 정답이 없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영국은 세입자의 천국이다.
그리고 가끔,
몸 하나로 버텨야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조용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코미디 논픽션.
이 글은 승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타국에서 ‘정당함’의 경계를 몸으로 통과해 온
한 개인의 생존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