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과 L 사이에서 살아남기
외국 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배울 여유가 없었다.
대신 나는 웃는 법을 배웠고,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배웠다.
발음이 틀렸을 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다시 말하거나, 웃거나.
다시 말하면 재앙이다.
상대 얼굴에 미세한 긴장이 흐르고,
그 긴장은 설명을 부르며,
설명은 나를 점점 작게 만든다.
반면 웃으면 대부분 이렇게 정리된다.
“아, 외국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는 웃었다.
영어보다 웃음이 더 유창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는 없는 발음이 있다.
r, l, sh.
이 셋은 내 혀의 숙적이었다.
영국에서 사십 년을 살았지만
내 혀는 아직도 단기 체류 비자 상태다.
특히 문제는 walk와 work였다.
나는 산책 얘기를 하는데,
상대는 인생 상담을 시작한다.
어느 날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길을 걷다가 아주 멋진 남자를 만났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다.
“One day, when I was working* in the street…”
상대의 눈빛이 잠깐 바뀌었다.
“길에서…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은 상황을 구체화하고,
구체화는 위험하다.
그 위험 속에서 나는 늘 외국인이었다.
그래서 웃었다.
웃음은 모호했고,
모호함은 안전했다.
선거철은 더 위험했다.
Election이라는 멀쩡한 단어는 혀가 l에서 r로 말려 올라가는 순간
민주주의에서 생식기로 곤두박질친다.**
단어를 말할 때마다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민주주의…
제발 이번엔 민주주의다.’
말을 내뱉는 일은 나에게 늘 작은 시험이었다.
sh 발음은 치명상이었다.
“Please sit down.”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을 통과하면
교실은 순식간에 위험 구역이 된다.
일곱 살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Mummy… your friend keeps telling me to shit… and shit down…”***
나는 아이를 안고 웃었다.
이 상황에서 설명은 금지다.
우리 집에서 웃음은
공식 해명이자 방패였다.
결정타는 부활절이었다.
다음 주 요리 시간에
“Easter egg를 가져오세요”라는 공지가 나왔다.
불교 영향만 받고 자라
초콜릿과 우유에도 낯설었던 나는
Easter egg가 뭔지 몰랐다.
나는 egg만 알아들었다.
다음 날,
생달걀 세 개를 깨질까 봐 조신하게
아기처럼 품에 안고 교실에 갔다.
교실에는
알록달록한 계란 모양의 초콜릿만 있었다.
사람들은 웃었다.
아주 선의의 웃음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깨진 건 달걀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내가 가져간 건 계란이 아니라
문화적 무지였다.
그날만큼은
나도 웃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단어를 믿지 않는다.
항상 한 번 더 의심한다.
이게 먹는 건가,
장식인가,
아니면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건가.
돌이켜보면 외국 생활은
언어 시험이 아니었다.
멘털 테스트였다.
틀려도 버티는 연습,
웃으면서 체면을 접는 연습,
그리고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연습.
나는 아직도 r과 l을
완벽하게 구분해 발음하지 못한다.
walk와 work는 여전히 엉켜 다닌다.
그래도 괜찮다.
엉뚱한 발음으로 일하고
이상한 발음으로 걷지만
나는 지금도 아주 정확하게 살아 있다.
놀랍게도,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서 잘 살고 있으니.
결국 외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순하다.
말보다 웃음이 빠르고,
틀려도 마음이 부러지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가끔은,
walk와 work를 헷갈린 그 순간조차
즐길 줄 아는 마음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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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working 은 “내가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 있을때…..“
** erection 의 의미는?
*** shit dow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