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비 £15, 세계 여행기

(평화의 값은 생각보다 싸다)

by 류정uk


혼자 인 사람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재워주고, 밥을 먹이고, 심지어 관광까지 시켜준다고?


또 혼자서 전혀 모르는 나라에 가, 누군가의 집 문을 두드리고 공짜로 먹고 자고 온다고?


“오메, 무서운 거.”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무모해 보였고, 괜히 위험을 자초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지난 20년 동안 남의 집에서 잠을 자며 세계를 누볐습니다. 멀쩡하게, 그리고 즐겁게.


이 일을 가능하게 해 준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Servas International - 일명 ‘서바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덴마크의 두 청년이 한 다음의 질문이 이 서바스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 만나서 서로를 알게 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거창하게 들리지만, 요즘 식으로 바꾸면 이런 것 같습니다. 우리 키보드로 싸우지 말고, 밥이나 같이 한번 먹어 보는 게 어때?


Servas International는 여행 단체라기보다, 서로의 집을 열어 만나는 작은 평화 실험에 가깝습니다. 영국 기준 연회비는 15파운드. 런던에서 커피 두 잔 값입니다. 평화가 생각보다 저렴합니다.


비슷하게 침대, 소파 등을 나누는 서비스로 Couchsurfing도 있습니다. 하지만 Servas International 와는 조금 다릅니다.


Couchsurfing은 빠르고 자유로운 만남을 지향하는 반면, Servas International는 인터뷰와 추천서, 신뢰 확인을 거친 뒤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방문과 체험이 조금 더 느리고, 깊이 있습니다. 한 번 초인종을 누르면, 그 집에서의 시간과 사람 냄새가 오래 남습니다.


브런치 작가 김별님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브리지트는 영어 ‘호스트(host)’보다 불어 ‘아꿰이르(accueillir, 마음을 열어 맞이하다)’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숙식 제공을 넘어, 마음의 문을 여는 일. 이 말은 서바스 여행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저는 이 네트워크를 통해 단지 손님으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 집 초인종도 여러 번 울렸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저는 그들과 밥을 먹고, 동네를 걸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브런치에 몇 편 남겨두었습니다.


「여행자가 넥타이를 매는 밤」

「만나지 않은 인연」

「한 번의 호의가 사람을 건너갈 때」

「부르지 않아도」


이 글들이 낯선 이들이 제 집 문을 두드렸던 기록이라면, 이제는 제가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를 차례입니다.


보통은 이런 식입니다. 공항에 도착하면 누군가 제 이름을 들고 기다립니다. 그들은 단순한 숙박 제공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 속으로 저를 초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관광객이 가는 길 대신, 실제 사람들이 사는 골목을 함께 걷습니다.


잠자리는 늘 새롭습니다. 화장실이 방보다 넓은 집도 있었고, 침대 바로 옆이 부엌인 작은 방도 있었습니다. 아침 냄새가 잠결까지 스며드는 집도 있었고, 식사 전과 후에 기도를 올리는 중동의 가정집에서는 눈치껏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스라엘 Israel, 사우디아라비아 Saudi Arabia, 남미 몇 나라, 유럽과 미국 United States. 나라 이름은 달랐지만, 부엌의 풍경은 언제나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저는 수많은 집과 부엌, 그리고 냉장고를 구경했습니다. 그 풍경들을 이제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물론 저는 ‘공짜 숙박 전문 여행자’는 아닙니다. 보통 이틀이나 사흘 정도 머무르고, 마지막 날에는 제가 장을 봐서 불고기를 만들거나, 영국 위스키 한 병을 건네거나 작은 선물을 남기기도 합니다. 빈손으로 떠나는 건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모든 경험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개를 갸웃했던 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눈부셨습니다.


호텔은 깨끗하고, 에어비앤비는 편리합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어디에서 잤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비슷한 침대와 비슷한 구조, 비슷한 조식이 기억 속에서 서로 겹쳐집니다.


반면, 누군가의 거실에서 늦게까지 이어진 대화와 함께 마신 차 한 잔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습니다. 그 집의 공기 속 커피 향과 갓 구운 빵 냄새, 창밖에서 들리던 아이들 웃음소리까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20년 동안 낯선 집에서 머물며 배운 것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사람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것. 그리고 작은 만남 하나가, 누군가의 세계를 조금 덜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낯선 집의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 문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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