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을 나는 왜 피했을까)
몸바사의 열기는 피부를 스치는 정도가 아니다. 뼛속까지 스며든다.
한낮의 거리는 먼지와 디젤 냄새,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케냐 해안 도시 몸바사의 공기는 늘 끈적했고, 소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며칠째 속 쓰림과 설사가 이어졌다. 몸은 빠르게 지쳐갔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이들이 팔에 매달렸다. 맨발에 먼지투성이 얼굴. 그러나 그 또렷한 눈빛들은 오랫동안 나를 붙들곤 했다.
“내일이라도 영국으로 돌아갈까 보다.”
깨끗한 물, 조용한 침대, 익숙한 식사. 도망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떠나지 못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힘이 나를 그 자리에 붙들어두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자 흙먼지가 발목까지 차올랐다. 공기에는 진득한 요리 냄새가 배어 있었다. 좁은 골목 끝에 조오지의 집이 있었다. 평범한 회색 벽 너머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또 다른 세계가 숨 쉬고 있었다.
서른 명이 한집에 살고 있었다. 세 세대의 가족, 그리고 부모를 에이즈로 잃은 다섯 명의 고아들까지. 그 아이들은 서류도 절차도 없이 그저 조오지집 앞에 도착했다.
서류는 없었지만 이름이 생겼고, 절차는 없었지만 자리가 마련되었다. 서른 명 중에는 피로 맺어진 가족도 있었고, 선택으로 이어진 가족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경계는 의미를 잃었다.
천장은 없었고, 지붕에는 빛과 빗물이 함께 스며드는 구멍이 나 있었다.
“비가 오면 양동이를 써요.”
조오지의 아내 루시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조용한 저항이었다. 얼굴에는 자기 연민 대신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조오지는 작은 호텔의 매니저로 일했다. 딸 제인은 주방에서 아버지를 도왔고, 결핵을 앓는 루시는 학교 도서관을 지켰다. 처제는 열다섯 명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묵묵히 이어갔다.
조오지 가족, 중동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세 명의 20대 아들들까지 포함해, 그들이 흘린 땀의 대가는 동전 하나까지 서른 식구의 음식과 공과금, 학비와 약값으로 흘러 들어갔다.
돈은 머무르지 않았다. 이 집은 축적이 아니라 ‘순환’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늘 고단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번지는 작은 온기가 집 안을 감쌌다. 이 집은 마치 연약하지만 기적처럼 균형을 이루는 생태계 같았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거의 가져본 적이 없었다. 과일이나 간식은 특별한 날에만 허락되었다. 식탁도, 의자도, 각자의 침대도 없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큰아이가 작은아이의 밥을 덜어주었고, 십 대들은 희미한 불빛 아래 숙제를 했다. 어른들은 다음 날의 식사를 계산했다.
모든 움직임 위에 희생이 얇게 깔려 있었다.
오랜 후원자인 피터의 초대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이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청소하고 밥 짓고 달래고 돌보는 손으로 밥을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식탁도, 의자도, 숟가락도 없었다.
아이들 중 두 명은 HIV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 한 10대 청년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도와줄 수 없는 무력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동정하는 나 자신을 들킬까 두려워서였다.
그 작은 눈빛은 오래도록 나를 흔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관대한 사람이라 믿어왔다. 늘 도움을 주는 쪽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관계의 방향이 뒤집혔다. 그는 도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떠나기 전, 나는 가지고 있던 현금 - 달러와 유로 - 을 모두 조오지에게 건넸다. 연민이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절박한 질문에서 비롯된 존경의 표현이었다.
나는 주고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 돈이 실제적인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집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인지, 아니면 내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집을 나서며 나는 하늘만 바라보고 걸었다. 답이 있다면 저 위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청년의 눈빛, 아이들의 작은 손길, 조오지 가족의 일상. 삶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이 집은 부유했는가, 가난했는가.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풍요를 판단해 왔는가.
몸바사의 열기와 먼지는 멀어졌지만, 한 청년의 눈빛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그 시선을 온전히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눈을 피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청년이 던진 말 없는 질문.
“당신은 왜 여기 있는가.”
그 질문은 아직도 나를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견디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