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ind Guide

(시각장애인이 나보다 더 잘 보고 있었다)

by 류정uk


그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햇볕이 없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영국, 맨체스터의 겨울은 두 달째 회색이었다.

도시는 빛을 잃은 채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비는 멈추지 않았고, 몸은 이유도 없이 욱신거렸다.

우울감이 천천히 스며드는 날,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햇볕 좀 보내주면 안 되겠나?”


기다려도 오지 않는 했볕을 찾아 나는 결국 직접 길을 떠났다.

카나리 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 여행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지난 금요일, 나는 카나리 제도로 날아와 크루즈에 올랐다.

여행에서 늘 설레는 순간은 누구와 식탁을 나누게 될지 모르는 그 기대감이다. 첫날 저녁, 여덟 명이 앉는 식탁에는 다섯 명이 모였다.


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왔다.

사람의 말투와 언어에는 삶이 담긴다. 교육, 직업, 경험 - 설명하지 않아도 배어 나오는 것들.


그는 옥스퍼드에 살고 있는 Alan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영국인 아버지와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마흔일곱의 싱글이라고 했다. 부모와 형제들은 여전히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 살고 있으며, 어린 시절 치안이 불안해 늘 문을 잠그고 지내야 했던 기억도 담담히 들려주었다.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저녁 햇살이 창을 가득 메웠다.

Alan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런 날씨라면 마음도 가벼워지죠. 햇살은 보이지 않아도 느껴져서 좋아요.”


그의 얼굴은 빛을 향해 있었다.

나는 그저 풍경을 보고 있었고,

그는 온기를 먼저 느끼고 있었다.


반짝이는 바다와 따뜻한 공기가 그 순간을 감싸 안았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하얀 지팡이를 펼쳤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반자처럼.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앞을 못 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설명도, 변명도 없었다.

그저 사실 하나가 조용히 놓였을 뿐이었다.


순간, 생각이 멈췄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조용히 무너졌다.

앞을 볼 수 없는데도 혼자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서 날아와 크루즈에 오르기까지 - 나는 그 여정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선언이 아니었다.

조용한 초대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주저 없이 나누며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며칠째 같은 식탁에서 저녁을 함께하며 나는 그를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그는 독립적이고 당당했다.

그러면서도 작은 순간의 기쁨을 놓치지 않았다.

유머와 재치가 있었고, 대화 속에는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관심이 담겨 있었다.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골다공증으로 몇 번이나 부러졌던 뼈, 여전히 불편한 걸음.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불평하며 살아왔던가.


그 앞에서 내 고민은 작아졌다.


나는 내 절룩이는 발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루만 눈 감고 살아볼래?

그래도 지금은 보고 있잖아.”


이번 여행은 단순히 날씨를 피해 온 도피가 아니었다.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을 통해, 나는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빛은 창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의 태도 속에서도 빛은 나고 있었다.


햇볕, 건강, 걷는 발, 보는 눈 -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여행은 며칠 뒤 끝나겠지만, 이 깨달음은 오래 남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매일 일어나는 소소한 기적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한 사람은 태양을 볼 수 없고,

한 사람은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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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은 영국 맨체스터 근교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여행길에서 스쳐 간 장면들, 뜻밖의 만남, 그리고 일상 속 소소한 생각들을 담담하게 글로 옮긴다.

날마다 흐린 영국의 겨울처럼 하루가 늘 맑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은은히 번지는 감사와 작은 깨달음을 천천히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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