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필요 없는 날

(우크라이나 여인 - 보이지 않는 빛과, 돌아갈 수 없는 땅 사이에서)

by 류정uk


카나리 제도의 저녁 바다는 유난히 고요했다.

햇살은 물 위에 금빛 조각을 흩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빛을 사진으로 붙잡느라 분주했다.


이번 크루즈에서 같은 식탁을 나누고 있는 눈먼 Alan은 보이지 않는 햇살을 가장 먼저 느끼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그 식탁에 앉아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Mariana.


Alan이 온기를 말하던 사람이라면,

Mariana는 불길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고향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과 할머니는 아직 전쟁 한가운데에 남아 있다. 창문이 폭격으로 날아간 집, 밤마다 사이렌이 울리는 도시에.


마리아는 러시아 침공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고향을 떠났지만, 전쟁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붙들고 있다.


15년전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녀가 가진 것은 희망과 희미해져 가는 몇 가지 추억뿐이었다. 타국에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이 버텨냈다.


세월이 흐른 끝에, 그녀의 아들이 케임브리지 공대에 합격했을 때, 지난날의 모든 어려움과 희생이 눈부신 빛으로 되돌아오는 듯 느껴졌다. 마음 한편에는 조용하지만 깊은 자부심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스무 살 아들과 남동생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는 순간 징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국경을 넘어 폴란드에서 부모님과 만난다.

짧은 재회.

잠시의 포옹.

그리고 다시 각자의 나라로 흩어진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태양을 볼 수 없고,

한 사람은 고향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보면서도 불평하던 사람이었다.


그날 저녁, Alan이 말했다.


“빛은 꼭 눈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따뜻하면, 그걸로 충분하죠.”


Mariana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매일 기도해요. 아무도 영웅이 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영웅.”


그 단어가 식탁 위에 잠시 내려앉았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야 할까.

돌아가지 않으면 비겁한 걸까.

남아 싸우는 이는 애국자이고, 떠나 지키는 이는 배신자인가.


어쩌면 전쟁은 사람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버티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 총을 드는 용기.

남아 가족을 지키는 용기.

그리고 죄책감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용기.


나는 햇볕이 없다고 불평했고,

몸이 아프다고 속상해했고,

회색 하늘을 탓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아도 빛을 느끼는 사람,

돌아갈 수 없어도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Alan은 시각을 잃었지만 세상을 잃지 않았다.

Mariana는 고향을 떠났지만 사랑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통해 불평을 조금 내려놓았다.


비 내리는 맨체스터 근교의 회색 하늘 아래로 돌아가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 것 같다.


파도 위 저녁 식탁에서,

보이지 않는 빛과 돌아갈 수 없는 땅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현실로 돌아설 준비를 했다.




작가의 이전글A Blind Gu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