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생(未生)인 삶에 대해서
다시 또 시작인 나에 관하여
1990년에는 짜장면의 가격이 1,200원이었고, 지하철 요금은 250원이었으며, 새우깡은 300원이었단다.
2023년 올라버린 물가처럼, 꾸준히 먹어온 나이 덕분에 1990년생인 나는 34살이다.
어릴 적에 나는 어른이 되어 교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27살에는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유난히 이런 기억이 또렷한 이유 중 하나는 진심으로 내가 만 27살의 해를 넘기는 그 순간까지도
인연이 있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연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나의 소망을 수정하고, 꿈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수정했더랬다.
20대에 결정한 나의 진로는 조금씩 그 결을 달리했어도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생각하고 삶을 꾸려나가는 나를 대단하다고도 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원하는 것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차선을 선택하는 데 대한
스스로의 부채감이 있(었)다.
어느덧 서른을 넘기고 보니, 이제는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기로 한 지금, 후회보다는 받아들임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수많은 삶의 시험을 통과해왔다고 생각한 나는 여전히 미생(未生)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쌓아온 능력들로 새로운 직장에서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받기 위해 지원서를 쓰고,
80:1이 넘는 경쟁률을 보며 '나는 아직도 사회 초년생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직도 어여쁜 나의 가정을 만들겠다는 소망을 품고, '좋은 사람은 어디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집안 한구석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기타를 둘 자리를 생각하며, '집은 언제 살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이력서에 어느 하루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생인 나의 삶에 대해서
나는 기대하면서도, 안타깝고, 그럼에도 응원을 보낸다.
누구나 고요하고도 치열하게 자신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지만,
긴 연휴를 앞두고 또다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내일의 내가 많은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여태껏 그러했듯 잘 이겨나가기만을 바란다.
2023.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