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비디아
오베디안은 대번에 낮고 거친 웃음을 터뜨렸다. 비소 섞인 웃음과 함께 꼬리가 힘차게 솟구쳐 검은 바닥을 내리쳤고, 그 충격에 바닥이 갈라지며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가소로운 도발이 그의 긴장감을 폭발 직전의 팽팽한 실선처럼 당기면서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이며 가르바를 노려보았다.
"크하하하! 여전히 변한 게 없군. 배신자들의 무녀였던 그 시절에도 탐욕으로 권능을 잃어버린 주제에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거냐?"
잠시 서늘한 정적이 흘렀다. 가르바의 턱 끝이 살짝 흔들렸으나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치밀어오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 이야기... 다시는 꺼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날이 서린 가라앉은 음성에도 불구하고 오베디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깊은 경멸을 담은 채 천천히 가르바 쪽으로 다가섰다.
"왜? 부정하고 싶나? 아직도 그때의 자격지심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인가? 한때 어리석은 필멸자들을 이끌었다는 말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었군. 여전히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야."
독을 머금은 듯한 조롱이 끝난 순간, 가르바의 얼굴에서 감정이 무너졌다. 눈가를 가리고 있던 붕대 아래에서 용의 숨결이 살아나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애써 억눌렀던 감정은 한순간에 바람에 불붙은 장작처럼 타올랐고, 손끝에서 피어난 붉은 기운은 무력하게 퍼진 공기를 단숨에 갈랐다. 날이 잔뜩 선 가르바의 목소리는 차분함을 완전히 잃고 분노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닥쳐라! 감히 너 따위가 나를 폄훼하다니. 그 더러운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
가르바의 외침과 함께 팔이 치솟았다. 억눌러 왔던 분노가 폭발하며 손끝을 타고 뿜어져 나온 것은 단순한 불꽃도, 빛도 아니었다.
붉은 번개. 살아 있는 생물처럼 들썩이는 뇌격의 기세는, 마치 하늘을 찢고 내려온 벼락의 숨결처럼 불길과 함께 솟구쳐 가르바의 팔을 감싸고 치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전격이 아닌 태고의 하늘을 지배하던 존재가 품었던 뇌격이었다. 천장을 찌를 듯이 부풀어 오르는 붉은 벼락의 섬광이 간헐적으로 터지면서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바닥은 열기를 이기지 못해 붉게 달아올랐고, 공기조차 떨리는 듯 진동하며 홀 전체를 이글거리게 만들었다.
"네놈이야말로, 주제도 모르고 매번 나를 시험해?"
가르바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그녀의 분노는 폭풍처럼 번개를 몰아쳤고, 홀 전체를 뒤덮으며 위압감을 뿜어냈다. 하지만 오베디안은 전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붉은 벼락 사이에서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섬광 몇 번 번쩍이는 게 전부냐? 네년의 벼락이 사브라트님의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하나?"
그의 말투는 여전히 낮고, 칼끝처럼 날카로웠다.
"그 힘이 스스로 얻은 것이었다면 조금은 평가해 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결국, 네년은 과거의 오만에 갇혀 허세를 부리는 무녀일 뿐이다. 날 쓰러뜨릴 수 있다면 해봐라.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주지."
오베디안의 말을 끝으로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그 순간, 어둠의 너머에서 천천히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나타났다. 뒤이어 거대한 존재의 의식이 떠오르며 무게를 더하자, 홀 전체가 그 절대적인 힘 앞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군.」
단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 마디는 협곡을 짓누르면서 공기의 온도를 단숨에 바꿨다.
오베디안은 곧장 날개를 접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르바도 그에 뒤질세라 무릎을 꿇고, 붉게 빛나던 벼락을 거두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냉혹한 동시에 정적을 베어낼 듯 날카로웠다.
"죄송합니다, 사브라트님."
오베디안의 목소리는 낮았고, 가르바는 침묵한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홀을 뒤덮은 거대한 의식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울림은 천천히 벽을 타고 퍼지면서 이 공간의 절대자임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었다.
「필멸자들이 협곡에 연결된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너희의 자만이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협곡은 나의 것이니 모든 행동은 나를 기준으로 판단될 것이다. 가르바, 네가 그들을 상대했으니 이 문제를 끝까지 마무리하라. 오베디안, 너는 네 자리에서 협곡을 지키는 데만 집중해라. 서로를 겨누며 불필요한 힘을 낭비하는 반목은 용납되지 않을 터이니 너희 둘 모두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공간을 뒤흔드는 경고와 함께 오베디안과 가르바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긴장의 고리는 끊어졌지만 주변 공기는 여전히 팽팽한 압박감을 품고 있었으며, 의식을 뒤 흔들어 놓았던 사브라트의 존재감은 여전히 홀을 짓누르고 있었다. 가르바는 억눌린 숨을 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것은 오베디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갈등의 불씨가 잠시 사그라들었을지 언정, 홀 안의 공기는 여전히 긴장을 머금은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브라트의 황금빛 동공이 가늘게 변하면서 어둠을 뚫고 빛을 반사했다. 말은 없었으나 그 시선은 다가오는 무언가를 향해 응시하고 있었다.
동시에 홀의 가장자리 또한 서서히 스며드는 기운으로 미세하게 변화했다. 처음에는 기척조차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희미했지만, 협곡 내부에 머물던 용인들이 갑작스레 등줄기를 낮추며 몸을 움츠렸다. 사고는 단순해도 본능만큼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들에게 있어서 그 기운은 명백히 낯선 것이었다. 무언가 이질적인 균열이 영역을 밀고 들어오듯,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공기 속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태생적으로 진동과 초음파를 통해 감각을 나누는 본능을 지니고 있던 용인에게는 감각을 어지럽히는 진동이었기에 피부를 거슬러 파고드는 이물감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닌, 경계를 넘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강력한 존재의 '입장'을 알리는 불길한 전조임을 직감했다.
"......이게 뭐죠? 외부의 침입이라도 있는 겁니까?"
가르바가 떨리는 등골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불안이 아닌 분노에 가까운 날이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겠군. 예사롭지 않은 놈이다."
오베디안은 으르렁거리듯 낮게 대답했다. 꼬리가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쳤고, 뼈마디 사이로 검은 돌이 튀어 올랐다. 그 낯선 기운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중앙 홀의 입구에서 고요하게 걸어 들어오는 하나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보랏빛 로브에 온몸을 감싼 장신의 인물의 얼굴을 가린 기묘한 가면은 마치 신들의 가면을 닮아 있었으며, 그를 따라붙는 기운은 생명의 온기를 꿰뚫는 듯이 서늘했다. 그것은 홀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남자가 홀 한가운데로 들어서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표정들이 말이 아니군요.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는 고개를 들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뒤, 말을 이어갔다.
"저는 공허의 신도를 이끄는 자, 주교 '비디아'입니다. 협곡에서 발생한 유감스러운 사태에 대해서 직접 해명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비디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베디안이 날개를 절반쯤 펼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황금빛 눈에는 날 선 적의가 담겨 있었다.
"이곳에 스스로 들어왔다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러 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오베디안의 위협적인 모습에 불구하고 비디아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럴 리가요. 다만, 가르침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약간의 소란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몇몇 분들은 대화를 나눌 준비가 안 되어 있더군요."
비디아는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손을 들어 말했다.
"그래서 약간의 훈계를 드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모두 무사하니, 안심하시지요."
가르바의 눈빛이 번뜩였다.
"무단 침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겁니까? 이 협곡은 우리에게 있어 신성한 거처입니다. 이교도들은 그 선을 넘었고, 그들의 수장인 당신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되어 있겠지요?"
"침범이라니요. 저는 협의라고 말하고 싶군요. 물론 제 신도들이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음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오해는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지요."
비디아는 잠시 가르바를 바라본 뒤, 천천히 손끝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손짓은 마치 보이지 않는 문장을 공중에 그리는 듯 의식적으로 절제되어 있었다.
"제가 섬기는 분께서 이 협곡의 주인 되시는 분께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만약 그 뜻을 함께해 주신다면, 오래도록 갈망해 오신 것을 제공해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베디안이 으르렁거리며 날개를 완전히 펼쳤다.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비디아를 찔렀고, 꼬리의 끝이 바닥을 스치며 천천히 고리를 그렸다.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는군. 네놈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이 협곡의 존재가 세간에 드러나는 걸 얼마나 꺼리는지 뻔히 알고 있을 텐데. 그걸 이용하려는 것을 모를 줄 아나?"
비디아는 조용히 오베디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는 여전히 정중했으나,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그 의심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신 정도의 존재가 감히 제가 섬기는 분의 뜻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도를 넘는 무례지요."
비디아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걸음걸이는 부드러웠지만, 발자국마다 공간의 밀도가 달라지는 듯한 무형의 중압감이 따라붙었다.
"제가 섬기는 분은 이 협곡의 어둠 따위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계획을 경솔하게 판단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는 단순한 촌극 따위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베디안의 날개가 다시 한번 으르렁거리듯 들썩였다. 비디아가 조금도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가르바는 그 틈을 파고들며 냉소를 흘렸다.
"그럴듯한 제안으로 포장해도, 결국은 협박이군요. 협력을 핑계 우리를 흔들려는 의도 아닌가요?"
"협박이라니, 그런 오해는 유감입니다."
비디아의 목소리는 이전과 다름없이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흐르는 기류는 분명하게 변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가르바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고정시켰다. 가면 뒤로 가려진 눈빛이 그녀를 꿰뚫었다. 그 응시는 냉랭하고, 무언가를 꿰뚫는 외과적 단면처럼 정확하고 집요했다. 가르바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붕대로 가려진 시선은 무미건조했지만 표정에 그려지는 불쾌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다만…"
비디아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 안에 담긴 어조는 조용하면서도 작은 실망이 묻어 있었다.
"조금 아쉽군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더라면, 제 의식에 훨씬 유용했을 텐데 말입니다."
"...예전의 모습이라니, 대체 무슨 뜻이죠?"
가르바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자, 비디아는 한숨을 내쉬는 듯 고개를 저으며 손끝을 무심히 흔들었다.
"별것 아닙니다. 본래의 무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면 적합한 그릇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두 잃어버린 것 같군요. 순수함도, 사명도 말이죠.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순간, 가르바의 손끝에서 섬광이 피어올랐다. 비디아를 응시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 그 모습은 단숨에 가면을 뚫어버리려는 듯한 기세였다.
"무녀들을 찾아 납치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요.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당신의 기준에 못 미친다? 그래서 옛 모습을 떠올리며 현학적인 말장난으로 조롱하겠다는 건가요?"
비디아는 그 반응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마치 시험대 위에 놓인 피실험체를 관찰하듯, 시선은 차분했고 미소는 여전했다.
"조롱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지요. 선택한 길 끝에서 지금의 모습에 도달한 것이라면 과거의 사명은 그리 어울리지 않겠죠. 한때의 고귀함과 강직함은 이제 흔적도 없으니... 오히려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더 흥미로운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제물로서 말입니다."
가르바는 숨이 막히는 듯한 억압된 감정을 삼켰다. 손끝은 뇌격이 터져 나올 듯 번쩍였고, 떨리는 목소리에는 더 이상 감정의 제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단자 주제에 감히... 네놈이 무녀에 대해 뭘 안다고?"
외침은 불길처럼 튀어 올랐다. 붕대 아래 텅 빈 왼쪽 눈의 자리에서 붉은 기운이 살아나며 미세하게 떨렸고, 동시에 단단히 누르고 있던 감정의 밑바닥이 일순간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