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
그 끔찍한 손길에 로엔나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단순한 화상이 아니었다. 뜨거운 자극에 반응해 미친 듯이 날뛰는 뱃속의 것들이 안쪽에서부터 내장을 긁어내고 차올리는 듯한 생생한 격통이었다. 핏발 선 눈이 커다랗게 떠졌고, 떨리는 입에서 끊어진 음절이 흘러나왔다.
"그... 그만... 이건... 끄읍...! 너무......!!"
말문이 막히며 비틀리는 호흡 속에서 로엔나는 신음했다. 그러나 가르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바닥을 더 깊이 눌러내며 주문의 열기를 밀어 넣었다.
"제발... 제발 멈춰줘... 부탁이야...!"
"감당할 수 있잖니? 최대한 버텨 보렴."
"제발... 으읏...! 안돼......! 아아아아아아악!!"
산란실 벽에 처절한 절규가 메아리쳤다. 검푸른 혈관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얇아진 복부의 아래에서는 단단한 알들이 서로를 밀쳐내며 자리를 잡는 기괴한 태동이 고스란히 보였고, 안쪽을 밀어내며 안간힘을 쓰는 듯한 이질적인 압박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악! 그만!! 제발 멈춰—!! 아아아아아아아악——!!"
"그래, 그렇게... 옳지... 조금만 더......"
안쪽에 자리한 알들이 점점 커지며 무게를 더해 가자 로엔나의 복부는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부풀어 오르듯 팽창해 갔다. 가르바는 바닥에 앉아 터질 듯한 복부에 다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살갗 아래를 파고든 붉은 기운이 알들을 자극하며 부드럽고도 기이한 진동을 만들어내면서 붕대 너머의 눈매가 희미하게 풀렸다.
가르바는 한동안 그 소리에 집중하는 동시에 집요하게 음미했다. 미약한 심장 소리들이 점점 커져갔고, 불규칙하지만 또렷한 그 맥동은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형의 자장가처럼 귓가를 간지럽혔다. 손끝 아래에서 자라나는 이 기이한 생명들만큼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허무한 현실의 벽에 밀려 끊임없이 부서지던 내면 속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만끽할 수 있는 유흥거리였다. 누군가는 혐오라 부르겠지만 가르바에게 있어선 그것이야말로 본인의 기준에 맞는 새로운 생명의 잣대였으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로엔나의 비명조차도 그 어긋난 윤리 앞에서는 소음에 불과했다.
그러나 짧은 망각이 끝나는 순간, 잊고 있던 현실은 다시 파도처럼 밀려왔다. 손끝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사그라지면서 가르바의 미간이 조용히 일그러졌다.
'안 돼... 이걸로는 부족해.'
수를 늘려야 했다. 속도를 당겨야 했다. 하지만 이 가녀린 몸 하나에 기대어 만들 수 있는 유생의 한계는 이미 보이고 있었다. 수년간 혹사당한 여인들은 더는 알을 품을 수 없었고, 로엔나는 마지막 남은 도구였다.
"......이래선 안 돼. 어떻게든, 더 끌어내야 해. 어떤 방식이든..."
가르바는 속삭이듯 내뱉으며 일어섰다. 붕대 아래의 눈꺼풀이 느리게 떨렸고, 조용히 손톱을 물어뜯으며 천천히 산란실을 둘러보았다. 짙은 피비린내와 축축한 숨결이 여전히 공간을 메우고 있었지만 이미 한계가 임박한 이곳에는 더 이상 그녀가 원하는 형태의 '기적'을 약속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가능성을 짜내듯 고개를 돌리자, 산란실 반대편 어둠 아래 쪼그려 앉은 유생들이 가르바의 기척에 미세하게 몸을 들썩였다. 비늘이 움트고 날개를 펼친 지 오래였던 유생들은 이미 인간과 용의 형상을 반쯤 뒤섞은 존재로 성장해 있었다. 아직 덜 여문 눈빛, 그러나 본능은 또렷이 살아 있는 그들에게 말없이 손을 들어 몇을 가리키자 지시에 익숙해진 유생들은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유생들과 산란실을 나서기 전, 가르바는 다시 로엔나를 돌아보며 낮게 웃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란다. 금방 다시 올 테니... 잠깐 쉬고 있으렴."
그 말을 끝으로 가르바가 사라지자, 산란실에는 음산한 정적이 깃들었다. 사슬에 묶인 채 힘없이 늘어진 로엔나는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배를 응시했다. 알들은 점점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려는 듯 안쪽을 묵직하게 밀어내고 있었고, 폐는 압박에 눌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사지는 저릿하게 굳어가고, 허리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꺾였으며, 가르바의 기운이 스친 피부는 불에 덴 듯 달아올라 긴장해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피로 얼룩진 손끝이 사슬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더 이상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몸은 더 이상 그녀의 뜻에 반응하지 않았고, 뱃속의 것들이 지닌 이질적인 본능이 희미한 속삭임처럼 의식의 틈을 파고들었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고통이고, 어디부터가 저것들의 생명인지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로엔나는 점점 흐려지는 시야를 떨구며, 무너진 목소리로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어디에 계신 거예요......?"
협곡 안쪽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썩은 내는 점점 더 지독해졌다. 코를 찌르는 시체 냄새는 부패의 독기와도 견줄 정도였다. 바닥은 비룡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수인 등 온갖 짐승들의 뼈가 가득했고, 날카롭게 솟아오른 절벽의 암벽들은 틈마다 날짐승들의 발톱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파트로곤이 멈춰 서며 바닥을 짚었다. 그 아래에는 뒤틀린 채 부서진 척추 뼈가 파묻혀 있었고, 옆으로는 비늘 조각이 묻어난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도 남아있군."
그는 비늘이 묻어난 뼛조각 하나를 집어 들며 낮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비늘을 가진 용은 아우로라를 지배하는 두 고룡뿐이라 들었다. 하지만 아까 그 시체를 보면... 애써 덮으려 했던 의문이 다시 떠오르는군. 해명할 수 있겠나?"
시즈는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그림자가 낀 듯 어두워졌다.
"......제가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아우로라와 연관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개를 천천히 돌린 시즈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저 또한 그들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잃었으니까요. 권속들을 지키기 위해 대륙을 끊은 지고의 존재께서 그런 참혹한 일을 벌이실 이유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들 또한 서쪽 대륙 내부가 아닌 에스트라 가도 밖에서 나타났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용의 형상을 띤 짐승들이 어떻게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시즈는 파트로곤이 들고 있던 뼛조각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한 뒤, 짙은 안개로 뒤덮인 상공을 바라보며 답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태고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용의 잔재가 세상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시즈의 말끝은 바위벽에 부딪혀 흩어졌고, 한동안 누구도 입을 잇지 않았다.
"용의 기운은 단순한 힘이 아니에요. 만약 그토록 오랫동안 잔재가 남아 있었다면, 그것은 오래된 분노와 멸망의 기억이 스며든 저주에 가까울 거예요. 그걸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이가 손을 댔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파트로곤은 조용히 시즈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어딘가 모를 불안과 직감이 어른거렸다. 그들 뒤편에서 아로스는 말을 아낀 채 시선을 주변에 고정시켰다. 날짐승의 발톱자국이 이어지는 절벽 위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듯한 기척이 번지고 있었다. 그 불안이 허상이 아니었다는 듯, 안개로 자욱한 절벽 위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드문드문 흘러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비집듯 음산한 울림이 틈틈이 귀를 파고들었고,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도사리고 있던 무언가가 본색을 드러내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아로스는 말없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고, 그 조용한 동작 뒤로 검이 서늘하게 빠져나왔다. 파트로곤 역시 곧바로 기척을 감지한 듯 조금의 동요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뭔가 오고 있습니다."
아로스의 낮은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공의 안개가 갈라지며 날개 달린 그림자들이 폭풍처럼 쏟아져내렸다. 번개처럼 내리 꽂히는 속도로 낙하하는 짐승들은 도마뱀과 인간이 기형적으로 뒤섞인듯한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아까 보았던 사체들보다 훨씬 더 인간에 가까웠고, 그만큼 더욱 끔찍한 혐오감을 자아냈다.
카아아앙———
파트로곤은 놈들의 습격에 익숙한 듯, 날카로운 발톱을 능숙하게 튕겨내며 그중 한 마리의 날개를 단칼에 잘라내면서 아로스를 향해 외쳤다.
"놈들은 오직 본능으로만 움직인다! 특히 몸집이 작은놈일수록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니 처음 습격만 피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어!"
수직으로 쏟아진 짐승들은 파트로곤의 말대로 땅에 닿자마자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본능에 이끌린 듯 바로 일어나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세 사람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광경 속에서, 시즈는 마치 시간에 박제된 듯 얼어붙어 있었다. 다리는 덜덜 떨렸고, 숨소리는 가슴께에서 턱 끝까지 차올랐으며, 초점을 잃은 시선은 계속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협곡의 하늘을 뒤덮은 공포가 다시금 그녀를 집어삼켰다.
피비린내, 날갯짓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절규. 잊으려 했던 그날의 지옥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날개를 펼친 괴물이 시즈를 향해 튀어 올랐다. 아로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져, 검날로 짐승의 턱을 막아섰다. 거칠게 밀어붙이는 힘을 역이용해 검을 비틀자, 위턱과 아래턱이 단번에 분리되더니 피와 이빨이 허공으로 튀면서 괴물은 처참히 쓰러졌다.
"무녀님, 서둘러 벗어나야합니다!"
하지만 시즈의 눈동자는 여전히 깊은 두려움만이 어른거렸다. 입술은 바싹 말라붙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는 그 순간, 아로스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단단하고 차가운 손끝이 떨림을 누르듯 시즈를 현실로 되돌려 세웠다. 가까워진 그의 시선이 그녀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간절한 외침이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얇은 안개처럼 덮여 있던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타는 마을과 피비린내, 떨리는 목소리...
여긴 위험해! 어서 빨리 나와......!
그날에도, 어둠 속에서 작은 손을 잡아주던 이가 있었다. 무서워 도망칠 수 없던 자신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던 따뜻한 온기. 그 감각이 자신의 얼굴을 감싼 아로스의 손끝으로부터 되살아나고 있었다. 현실과 과거의 기억이 겹쳐지면서 그의 눈동자에 어쩐지 낯익은 무늬가 떠오르려는 찰나의 순간, 시즈의 얼굴 왼쪽을 가린 가면의 중심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고, 심장 끝에서 무언가가 요동쳤다. 푸른빛이 가면 중심의 문양에서 흘러나와 주변으로 번져나가더니, 강렬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퍼어어어엉————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짙은 푸른 섬광이 폭발하듯 시즈의 주위로 퍼져나갔다. 덮쳐오던 짐승들은 순식간에 튕겨 나가 절벽에 처박혔고, 괴성을 지르며 처참히 나동그라졌다. 공기 중에 휘몰아친 뇌격의 잔향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하자 문양에서 흐르던 푸른빛 또한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파트로곤은 얼어붙은 듯 시즈를 바라보았다. 단숨에 짐승 떼를 무력화시킨 광경에 그의 눈빛은 혼란과 놀라움으로 뒤섞여 있었다.
"방금 그 힘은 대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로스가 시즈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녀님, 괜찮으십니까?"
그 물음에 시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끝에 남아 있는 떨림을 애써 눌러 담은 채 짧게 숨을 고르고 나서야 입술이 열렸다.
"......괜찮아요."
짧은 대답 속, 뇌리에 스친 어린 날의 기억이 파문처럼 번져나갔다. 어둠과 불꽃 속에서 손을 내밀던 누군가의 목소리. 그 온기가 아직도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 시즈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푸른빛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 중심에는 아직 잔광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절벽에 처박혔던 괴물들이 다시 꿈틀대며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찢어진 날갯짓이 공기를 갈랐고, 부러졌던 다리까지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다시금 달려들 기세였다.
"징그러울 정도로 질긴 놈들이군."
파트로곤이 검을 치켜들며 중얼거렸다. 상공에서는 안개를 헤집고 새로운 그림자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 수는 갈수록 불어났고, 날갯짓 하나하나가 바람의 칼날처럼 협곡을 휘몰아쳤다.
"뒤쪽도 막혔습니다."
아로스의 말에 고개를 돌린 시즈는 협곡 너머까지 짐승들이 들끓고 있음을 확인했다. 퇴로는 완전히 차단된 상황이었다.
파트로곤과 아로스는 반사적으로 양쪽에서 검을 휘둘렀다. 발톱과 이빨, 날개와 비늘이 얽혀 터지는 비명과 쇳소리 속에서 두 사람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파트로곤은 도약해 내려오는 한 마리의 머리를 단칼에 가르며, 이어진 놈의 가슴을 베고 발로 밀쳐냈다. 아로스는 검의 옆면으로 짐승의 턱을 내려찍고, 기민하게 돌아서며 목을 날려버렸다.
그 순간, 이상한 기척을 느낀 시즈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저건......!"
시선이 뻗은 방향으로 바닥이 희미하게 갈라져 있었고, 그 아래로 깊고 좁은 통로 같은 길이 이어져 있었다. 바위들 사이로 드러난 좁은 공간은 이 지독한 협곡 속에서 유일하게 놈들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처럼 보였다.
"저쪽이에요! 저곳에 틈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