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형상
콰르르르릉—— 콰과광————
공간을 찢어발기는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섬광이 대지를 향해 내리 꽂혔다.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 아닌, 고룡의 마력의 기운이 깃든 벼락이었다. 푸른빛의 격류는 하늘에서부터 땅끝까지 하나의 거대한 창이 되어 오베디안의 거대한 날개와 하늘을 가르는 용인들, 그리고 뒤편에서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던 가르바의 뒤틀린 육체까지 단번에 꿰뚫었다.
아텐시아의 힘이 깃든 벼락은 하늘을 가르는 용인들을 단숨에 압도했다. 푸른 섬광이 강철 같은 비늘을 찢고 태워내자 공중에서 절규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추락하는 그림자들이 대지로 곤두박질쳤고, 공기마저 마력의 잔혹한 떨림에 휩싸였다.
폭발 한가운데서 오베디안은 날개를 활짝 펼쳐 버텨내려 했으나 뇌격은 이미 날개 끝까지 스며들어 근육을 마비시켰다.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이 휘청거리며 분노 어린 포효가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 무녀에게서 이런 힘이—"
숨소리는 거칠게 끊겼다. 고룡의 피를 잇는 자신들에게 벼락 따위가 통하지 않을 거라 단정했던 그의 확신은 온몸을 휘감은 푸른 뇌격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용인들은 무력하게 땅으로 추락했다. 평원에 나동그라진 그들의 몸에서는 여전히 전류가 잔잔히 튀었고, 비늘마다 뇌격의 잔광이 일렁였다. 사브라트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오베디안조차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날아오르려 애써도, 부서진 날개 끝이 덜컥이며 균형을 잡지 못했다.
한편, 모든 힘을 쏟아부은 시즈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발밑의 감각이 희미해지며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려는 순간, 아로스가 바람처럼 달려와 그녀를 붙들었다. 시즈는 그의 품에 기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무겁게 내려앉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았다.
"무녀님! 괜찮으십니까!"
시즈의 모습은 위태로움 그 자체였다. 검탁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손을 잡았을 때 전해진 감촉은 뜨겁고 거칠었다. 양손은 마치 벼락을 직접 맞은 듯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으며, 손바닥과 손등 곳곳에는 불꽃이 삼키다 만 듯한 화상자국이 선명했다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고, 피부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 창백함 속에는 육체의 고통보다 훨씬 깊은, 마치 영혼의 일부를 억지로 뜯어낸 듯한 정신적인 부담이 묻어 있었다.
아로스의 표정에는 분노와 걱정이 뒤섞였다. 시즈를 탓하는 분노가 아니었다. 방금 전 쏟아낸 힘이 생명을 갉아먹는 대가라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것을 홀로 짊어진 그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이 아로스의 눈빛을 짙게 물들였다.
그때, 시즈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귀공... 여기서 멈추면 안 돼요. 금방 저희를 잡으러 다시 올—"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즈의 몸이 경직되었다. 옆구리를 무언가가 관통한 것이다.
"무녀님!"
아로스의 시선이 시즈의 어깨너머로 날아갔다. 벼락을 맞아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그을린 가르바가 뒤틀린 오른팔을 촉수처럼 길게 뻗어 시즈의 옆구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용인들과 달리 벼락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은 와중에도 마지막 남은 힘으로 팔을 뻗은 것이었다. 촉수 같은 팔은 집요하게 생기를 빨아들이듯 울컥이며 꿈틀거렸다.
아로스는 번개처럼 칼을 뽑아 시즈를 꿰뚫고 있는 팔을 힘껏 자른 뒤 재빠르게 뽑았다. 뽑혀 나온 촉수 끝이 축 늘어지는 순간, 가르바의 몸은 마치 생명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시즈를 품에 안은 아로스는 급히 노아로부터 받은 가방을 열어 깨끗한 수건을 꺼냈다. 그는 거칠게 접은 수건을 관통된 상처 양쪽에 급하게 감싸 눌러 출혈을 막았다.
"꽉 누르셔야 합니다.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아로스는 그녀의 손을 수건 위로 끌어올려 단단히 눌렀다. 한 손으로 시즈를 감싸 안은 채 레클레스에 올라타 고삐를 세게 당기자, 다리아가 치명상을 입은 주인을 걱정하며 바짝 뒤따랐다.
비디아는 언덕 위에 멈춰 섰다. 하늘을 가르며 내리 꽂히는 푸른 벼락이 저 머리 먹구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불길처럼 피어올랐고, 그 빛이 잦아들기도 전에 비디아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잿멍울이 작게 떨리더니 스스로 터졌다. 소리를 낼 틈도 없이 부드러운 재가 허공에 흩날리는 동시에 실낱같던 생명줄이 한순간에 끊어진 듯 사라졌다.
시선은 천천히 벼락이 떨어진 방향으로 향했다. 가면에 가려진 얼굴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 시선은 이미 결론에 닿아 있었다. 땅을 스치는 듯 말 듯 한 몸이 가볍게 떠올랐고, 바람결에 옷자락이 휘날리며 비디아는 둥실 떠다니듯 빠르게 평원의 능선을 넘어갔다. 바위틈과 골짜기를 연달아 가르는 움직임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디아는 쪼개진듯한 대지 위에 쓰러진 가르바를 발견했다. 그는 발끝으로 바닥을 스치듯 다가간 뒤 검게 타버린 살덩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살고 싶다고 발악하시더니... 마지막 순간의 처절함이 무색하지 않으십니까."
목소리엔 연민도, 분노도 없었다. 단지 기대보다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담담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곧 길게 뻗은 팔 너머로 잘려나간 부위로 향했다. 절단면은 날카로운 검에 순식간에 베인 듯 매끈했고, 그 안에서 미세한 마력이 아직 숨을 쉬듯 맥동하고 있었다.
비디아는 천천히 다가가 손끝을 그 위에 드리웠다. 남아 있는 힘의 결이 그의 피부를 타고 스며들자, 가면 너머에서 숨이 아주 미세하게 높아졌다.
"오오... 이 힘은......!"
목소리는 낮았지만, 억누른 환희가 번져 나왔다. 비디아는 손끝을 타고 스며드는 힘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하루빨리... 당신을 제 손안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때, 저 멀리서 거친 포효가 터졌다. 평원을 울리는 짐승의 울음 속에는 날 선 분노가 서려 있었고, 비디아의 시선이 천천히 소리의 방향으로 옮겨졌다. 검붉은 날개를 지닌 거대한 용인들이 황폐한 대지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으며, 그 선두에는 포효의 주인 오베디안이 있었다.
오베디안은 날아오르려 발버둥 쳤지만 거듭 비틀거리며 땅에 착지했다. 온몸이 무겁게 짓눌렸고, 날개는 여전히 힘을 받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수많은 용인들이 대지에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목숨은 건졌으나 비늘은 벼락에 갈라져 있었고, 전신에 뇌격이 흐른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런 용인들의 모습에 오베디안의 두 눈은 핏발이 서며 붉어졌다.
"크윽... 제기랄... 어째서... 어째서 우리가 그 힘에...!"
분노는 형언할 수 없이 커졌다. 패룡의 피를 이은 드높은 자존감이 단번에 박살 나서 추락한 심정이었다. 순간적으로 팔에 힘이 돌자 오베디안은 거대한 손톱으로 바위를 후려쳤다. 바위는 쩍 갈라지면서 요란하게 부서져 내렸다.
"용서할 수 없다...!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 주겠다. 몇 배로, 몇 번이고 되갚아 주겠다!"
포효가 대기를 가르며 메아리쳤다. 그러나 날개는 여전히 저릿하게 무거웠고, 아텐시아의 벼락이 남긴 잔재는 몸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때, 바람결을 가르며 낮고 유려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예기치 못한 일격을 당하셨군요."
오베디안의 고개가 번쩍 돌아갔다. 그 시선 끝에는 가면 아래로 옅은 미소를 품은 비디아가 서 있었다. 이토록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발소리 하나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잠시 당혹감을 안겼으나, 비디아 특유의 나긋한 말투가 귓가를 스치자마자 당혹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도리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주교,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이냐? 날 조롱하러 온 것이냐!?"
비디아는 오베디안의 모습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아닙니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실지 궁금했을 뿐이죠. 고룡에 가까운 존재가 이 정도의 일격에 휘청이는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니 말입니다."
"한 번만 더 그 입을 놀린다면,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비틀어버리겠다!"
오베디안은 이를 갈며 성큼 다가섰다. 거대한 몸집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비디아를 완전히 삼켰지만, 비디아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그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애초에... 제가 신호를 드리기 전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지켜보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깔린 날카로움이 오베디안의 숨을 순간 멎게 했다. 마치 그의 속내를 꿰뚫어 본 듯한 기색이 가면 너머에 서려 있었다.
"사고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을 뿐이야. 무녀가 그 정도 힘을 가진 줄 알았다면 나도 준비를 달리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걸 말하지 않은 너도 문제 아니냐?"
얼토당토않은 적반하장에 비디아는 한쪽 어깨를 느릿하게 들어 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대지가 진동했다. 바람이 무겁게 일렁이며 불길한 기운이 서서히 주변을 덮자 오베디안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수백의 망령 기마대가 파론 성채 쪽에서부터 평원을 가로지르며 몰려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땅 위에는 스멀거리는 안개와 어둠이 깔려 들었고, 그 속에서 희미한 괴성이 메아리처럼 번졌다.
"기마대라... 왜 하필 지금이지? 설명해 보실까?”
"겨우 기마대 한 무리에 놀라시면 곤란합니다."
비디아의 시선이 천천히 하늘을 향했다. 오베디안도 따라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눈에 기괴한 생물들이 들어왔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는 뒤틀린 기사 넷이 각자 울루니아들을 타고 있었다. 그것들의 몸에는 두족류처럼 셀 수 없는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머리에는 산양처럼 구부러진 두 개의 뿔이 양쪽으로 솟아 있었고, 그 표면은 녹슨 금속과 흑요석이 뒤섞인 듯 음침하게 빛났다. 피부는 양서류나 도롱뇽처럼 축축하고 매끈했지만 곳곳에서 바늘 같은 돌기가 돋아나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고, 찢어진 날개로 공중을 활보하며 촉수를 휘두를 때마다 허공에는 흐릿한 점액질 같은 흔적이 끈적하게 남았다.
그 형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너무도 강렬하고 섬뜩해서 용인들마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저게 대체 뭐냐?"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심연의 군주의 기사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비디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감출 수 없는 흥미와 은근히 번져 나오는 쾌감이 묻어 있었다.
오베디안의 시선이 다시 네 명의 기사들에게 향했다. 검은빛은 울루니아 위에 걸터앉은 그들의 손에 쥔 무기에서는 기묘한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다가가오는 망령 기마대를 감싼 검은빛은 그 위에 탄 기수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투구의 그림자 속에서 번뜩이는 보랏빛 눈은 살아 있는 불꽃처럼 타올랐고, 그들의 형체는 불길하게 비틀려 있었다. 몸을 휘감은 짙은 어둠의 기운은 보는 이의 정신을 서서히 잠식하는 것만 같았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꿰뚫는 한기가 오베디안의 등골을 타고 스며 내렸다.
"이것들이 감히...!"
그는 이빨이 부서질 듯 턱을 악물었다. 바로 그때, 보이지 않는 무게가 사지를 억눌렀다. 단순히 육체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내뿜는 기운은 심리 깊숙이 파고들어 오베디안의 의지를 서서히 잠식하려 들자, 비디아의 가면 아래로 엷은 미소가 번졌다.
"네놈, 이 모든 걸 알고 있었기에 나를 비웃었던 것이냐!"
비디아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저었다.
"전혀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감상 겸 잠깐 정리 중일뿐이죠.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이니까요."
조곤조곤한 어투는 변함없었으나, 그 말이 떨어질 때마다 오베디안의 분노는 한층 깊어졌다. 평원을 감싸는 어둠과 기사들을 바라보던 비디아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제 그 두 사람에게 희망은 없을 터. 머지않아 더 큰 혼란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럼, 네가 말한 혼란이란 것이 바로 저 기사들과 관련된 것이란 말이냐?"
"그리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저는 저들의 등장을 단순한 혼란 이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들은 심연이 빚어낸 부산물이 아닙니다. 심연의 군주께서 직접 부여한 힘과 의지를 부여하신 존재들이지요. 또한, 그분께서 원하시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완벽한 도구입니다."
비디아의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오베디안은 기사들의 형체를 다시금 주시했다. 인간의 틀을 지녔음에도 뒤틀린 균열이 가득한 갑주 아래에서는 문드러진 살점이 억지로 이어 붙여진 듯 꿈틀거렸고, 투구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마치 그를 비웃듯 번뜩였다.
그들이 품고 있는 검은 오오라는 평원을 둘러싼 어둠을 더욱 짙게 물들였다. 그 기운은 단순히 위협이나 공격성을 넘어 본능 깊숙한 곳에서부터 경고했다. 네 명의 기사는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압박을 뿜어냈다. 그들의 존재감 속에는 심연의 가장 깊은 층에서 기어오른 악몽의 흔적이 스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