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2

by 유월

며칠 전부터 23이 무명을 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센가 무명도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어요. 저 때문인 걸까요? 근데 왜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죠? 20000도 그래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고, 좀 이상합니다.

이 골목이 뭔가 변화하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변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불안함이 온몸을 덮쳐옵니다. 목이 간지럽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 닭살 돋고도 떨립니다. 이건 제가 오늘에서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무명이 제게 살아있는 지렁이를 건네준 그때부터 말입니다. 무명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아 지렁이를 산채로 머리부터 뜯어먹었으나, 앞으로는 갈아주라고 명확히 말해야겠습니다. 뜯어 먹힌 지렁이가 입 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은, 가히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지렁이는 산 채로 목구멍에 들어가고, 위장 속에서까지 움직입니다. 식도에서 움직이면 구역질이 나오고 숨이 좀 막혀요.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피가 머리로 쏠립니다. 저는 그 느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는 고민했어요. '이러다 내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하구요.

입술에 묻은 붉은 피를 혀로 닦아냈습니다. 묽은 피는 이빨에 붙어서 선홍색이 되었습니다. 흙냄새와 함께 긴장감이 맴돌았어요. 아니 뭔가, 느껴봤던 것 같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느낌. 제,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그-느낌.

"야!"

저는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았습니다. 23이었어요. 제게 말을 걸 리가 없는데.

조금 미소 띤 표정. 얄미운 얼굴로 저를 거의 째려보듯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답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앉아있는 무거운 몸뚱이를 들어 올려서, 그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 말했습니다.

"왜?"

제 동공은 파도에 출렁이듯 흔들렸고, 그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고개를 잠깐 갸우뚱 기울이더니 제게 다시 말을 건넵니다.

"뭔 생각 하냐? 목소리도 못 듣고. 너 다른 로봇들 말은 잘 듣더니 나만 차별하는 거 아냐? 이제 앞에서도 무시하냐? 그건 그렇고, 무명 왜 저렇게 된 지는 알아?"

요즘 무명이 철학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구석에 박혀서 생각만 합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그저 정신 수양이라며 웃고 넘깁니다.

"아버지 생각은 왜 하냐? 있기는 하고? 네가 떠나 온 거면 버린 거잖아. 그리고, 이미 죽었다지? 우리 손으로. 웬수들이랑 같이 사려니 피곤하겠다. 근데, 네 친구가 죽였을 거라고는 생각 못하는 거야?"

"개소리할 거면 꺼져. 동정해주지는 못할 망정. 아-너도 사실 똑같잖아? 네가 죽이는 걔네가 사실 네 부모네. 아니라고 부정이라도 하고 싶어?"

23은 말을 잃었다가 태도가 변했습니다. 작은 소리로 비웃었습니다. 그가 제게 말을 걸 때면 항상 이럽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얕보고, 깔보고, 무시하고. 짜증 나는 짓만 골라서 합니다. 다시 그의 입이 움찔거리네요. 이제는 또 어떤 소릴 하려고.

"기업이 내 부모라고?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해? 진짜? 내 입장에선 범죄자야. 나를 버린 이상. 나를 버리고 짓밟은 이상. 로봇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이상. 근데 너는 인간인데도 버림받았네?"

그리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얼마나 쓸모가 없었으면."

원래 이런 말은 많이 들어왔는데, 오늘은 왠지 감정이 상하네요. 저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마치 맹수처럼 서로를 노려보았습니다. 다른 로봇들도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너는 사랑받는다는 느낌 느껴본 적 있어? 나는 느껴본 적 있는데."

"닥쳐. 내 앞에서 그딴 말 꺼내지 마.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태연하게 꺼내실까? 너, 무명이 데리러 가기 전에는 의지할 사람조차 없지 않았나? 내가 너 같은 애 하나 알아. 이자벨 회장 하나 죽었는데, 와이프는 자살하고 아이는 길바닥에 나앉았다고 하더라. 회장 이름이-클리프랬나?"

그 이름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성큼성큼 그의 눈앞까지 다가갔습니다.

"뭐, 아는 이름이기라도 한가 봐? 아니면 혹시, 네 아버지라도 되는 사람이던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제 손에 피가 흘러도, 얼굴이 벌게지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 로봇들이 저를 저지할 때까지. 미친 듯이 쳐댔습니다. 23은 계속해서 저를 도발했지만, 로봇들이 저를 잡고 있는 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거. 그게 인간이든 로봇이든 상관하진 않지만…. 네 잘못이야. 네가 무능했던 거고. 아무리 그 존재를 찾아도 돌아오지 않을 거야. 현실을 직시해."

심장이 쿠광댑니다. 도파민에 젖은 느낌. 심장이 가벼워진 느낌. 화나면서도 들떴습니다. 몸을 가만히 놔둘 수 없습니다.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악 대며 숨을 내쉬어 알파의 기운을 드러냅니다. 어금니를 자연스럽게 부딪혀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도 숨이 가빠졌어요. 허나 다른 로봇들에게 잡혀서 앵앵댔어요. 할 수만 있다면 서로를 죽일 듯이 패고 싶었을 겁니다. 할 수 있었다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영혼마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내가 그러하였듯. 서로를 노려보면서.


아-저 멀리서. 무명이 걸어오네요. 이제 사건이 끝날까요? 아니면 새로운 전쟁의 서막일까요? 떼어진 저희 둘 사이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흐릅니다.

로봇들은 저희를 광장의 끝과 끝으로 몰아넣었고, 피곤한 제 얼굴엔 서서히 다크서클이 드려 앉았습니다. 흥분되는 가슴은 아직도 뛰고 있는데. 아-아 졸려라. 미치겠습니다. 누군가가 날 좀 도와줬으면. 누군가가 내 등을 토닥여줬으면.


"다른 로봇들한테는 들었어. 23한테 가봤는데, 로봇들이 말하기를 네가 먼저 공격했다 하더라? 너한테는 가지 말라고, 나도 공격당한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23은 구석에 박혀 있어."

그리고 그는 안정감 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작은 목소리로 환영하면서 말합니다.

"내가 먼저 때렸다고 들었는데 나한텐 왜 온 거야? 진짜 내가 너를 때릴 수도 있잖아."

그는 무릎에 손을 대고 앉으며 제 눈을 응시했습니다. 그의 얼굴과 태도에, 자연스럽게 긴장이 사르르 녹아 없어졌습니다.

"나는 널 믿었으니까. 그리고 만약에 네가 변했다고 해도, 네가 진짜 나를 때리려 하더라도, 나는 똑같았을 거야. 너에게 찾아와서 '괜찮아'하고 대답할 거야."

그의 눈이 찬란하게 빛납니다. 후광이 비칩니다. 저는 그의 모습에 놀라 압도감과 전율감에 젖을 뿐입니다. 이 순간만큼은 그가 나의 구원자. 몇십대의 로봇과도 바꿀 수 없는 초월자.

"그냥 자. 안 힘들었어?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아. 네가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돼. 에덴으로 돌아갈 걱정은 안 해도 돼. 내가 막을 거니까. 내가 온몸으로 막을 거니까. 이 일로서, 골목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길 거야.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잘했어-아주 잘했어. 반항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그는 나의 신이었고, 나의 별이었습니다. 그 모든 게 닿을 때까지. 그를 찬양하고, 그를 추앙하며, 그를 드높이고, 믿었습니다. 그는 제게 계왕입니다. 아직 ACD-2밖에 없는 칭호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주기 싫어요. 무명이 진짜 계왕 아니덥니까.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로의 말을 듣기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 아닙니까? 무명이 차라리 저를 버리고 다른 로봇들에게 가기를 원했습니다. 저 말고 다른 로봇들에게 응원을 전하기를 바랐습니다. 신이시어-저를 버려주시옵소서. 그에게 소리칩니다.

"넌 진짜 모두를 사랑하는 거야? 아무 도움 안 되는 나마저도? 클리프를 죽인 23마저도? 미안하지만, 나는 원망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이라, 너와 함께하기는 힘들 것 같아. 고마웠어."

그는 광휘로 저를 쳐다봅니다.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클리프가 죽도록 미웠지. 죽을 듯이 미웠지. 진짜-진짜 미웠지.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갈았어. 하지만 나는 그를 믿어. 처음부터 사랑할 수는 없어. 그가 책임을 질 사람이었다는 걸 아니까. 그가 아무리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더라도, 내 클리프는 달라. 클리프는, 여느 로봇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자신의 세계를 위해 힘쓴 거니까."

이제야 확신이 듭니다. 그는 모두를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신이시어, 모두를 구원해 주소서.'

그즈음에는, 제 눈이 서서히 감겨갔습니다.


인간은 먼저 잠들었고, 저는 인간을 데려왔던 로봇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농담으로 시작한 담소는 진심이 담긴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단연 19959의 이야기였지요.


제 이름은 C-par-19959입니다. 실제로 공장에 갔던 로봇은 아니구요, 실험용 개체였습니다. 제가 처음 태어났을 때, 세계를 보며 환호할 때, 인간들은 저를 실험실로 데려갔습니다. 처음 실험실에 갔을 때는 놀라웠어요. 갓 태어난 신생아 같은 상태 아닙니까? 여기에서 어떤 고통을 받을지는 몰랐죠.

물에 담갔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그냥 살짝 노곤한 감정에 취해 너덜거리는 느낌?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버티는 실험부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당신들의 느낌으로 생각하자면, 탈진할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서서 버티는 느낌. 이것도 끔찍하긴 했지만 본분으로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가장 싫었던 건 이거였어요. 그들이 제 몸통 뒤쪽에 자석을 붙이고 실험할 때. 자성이 너무나도 세서 붙을 때마저 '쾅!' 하는 소리가 실험실을 맴돌았습니다. 따갑고도 아픔에 땅을 치며 버텼죠. 그리고는 제게 어떤 길을 걸어보라고 한 게 아니겠습니까? 제게 거부권이 있겠습니까. 제가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걸으라면 걸어야죠.

터덜, 터덜. 걷다 보니 눈앞에는 얇은 장막이 보였습니다. 앞에 벽이 있는데도 걷는 건 쉽지 않습니다. 눈을 꼭 감았어요.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장막에 닿은 이후 10분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었단 건 확실히 압니다. 제가 쓰러진 후에, 그 사람들은 웃었겠죠. 아마 그들이 원하는 결과였을 테니까요. 또 언제는 제 등의 그 자석을 떼려고 기기까지 동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자석이 제 몸에서 떨어지긴 했습니다. 제 등짝과 함께 말입니다. 그때 용접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하핫.

그게 추억일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이 정든 몸뚱아리와 헤어질 시간이 올 줄은 몰랐죠. 이딴 인생을 그리워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 눈물을 흘리며 그들과 작별했습니다. 험상궂게 생긴 로봇들이 저를 인도하더군요. 그곳에서 저는 팔 한 짝을 잃었습니다. 나머지는 흠집이 너무 많아서 쓸모가 없대요. 죽는 그 순간까지 제 두 다리와 팔을 간직할 수 있다니. 감사했습니다. 근데 웬걸? 그냥 죽을 줄로만 알았던 제가 어디론가 끌려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름은, 모티노? 여기가 어디죠?

철컹-철컹. 철창이 삐걱대는 소리가 제 센서를 긁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진정 여기가 어딥니까? 절벽 아래 희미한 빛만이 맴돕니다. 질문을 건넬 새도 없이, 로봇이 저를 발로 차는 게 아니겠습니까? 절벽 아래로. 끔찍한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중력이 저를 잡아당겼고, 중력의 끝은 땅이겠죠. 제 몸이 땅을 밀어냈습니다.

"뭐야! 또?"

눈이 떠지질 않았어요. 온몸이 바스러지는 느낌. 누군가가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바닥에는 무자비하게 쌓인 로봇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죽은 걸까요 아님 산 걸까요? 아마 여기는 지옥이겠죠.

허억-헉. 거친 숨을 내쉬었습니다. 흔들리는 동공은 눈앞의 로봇 한 기를 응시했어요. 눈앞에는, 로봇 두대가 있었습니다. 공허한 눈빛에는 살겠다는 강한 욕망만이 넘쳤어요. 도망쳐야 합니다. 정말. 정말로. 도망치지 않으면, 저는 죽어요. 근데, 왜 저를 쫓아오지 않는 거죠?

사실 그렇게 나쁜 로봇들은 아니더군요. 제게 '살기를 선택하겠나, 아님 숨을 포기하겠나?'하고 묻더군요. 삶에 미련이 남은 저는 살기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있기를 4달간 반복했어요. 로봇이 오면 배터리를 꺼내서 먹고, 수거일이 되면 좀 위험하나, 그들이 모든 로봇을 빼가진 않기 때문에 뭉터기 안에 숨으면 됐습니다. 좀 갑갑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랍니까?

로봇이 오지 않거나 수거일도 오지 않으면, 담소를 나누며 버텼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 정신이 붕괴되는 일을 막아야 했거든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모두들,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고도 슬픈 점이 두 개 있었죠. 첫째, 나갈 수 있는 구멍이 너무 높이 있다는 것. 둘째, 나가도 살 수 없다는 것. 아-로봇 한 대가 알려주기로는, 저 밖의 별무리가 정말 아름답다던데요. 알아도 볼 수 없다니. 저는 그들과 언젠가 밖을 나가 별을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같이 살아서 나가자고 말이에요. 그게 유일한 약속이었죠.


"아 진짜 더 이상은 못 참아!"

제가 소리쳤습니다. 4달간 이런 인생을 반복하면 누구나 이렇게 되죠. 할 게 무엇도 없는데 담소만 나누고.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겁니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어요. 뭐라도 해야 한다구요!"

가장 늙은 로봇이 제게 좋은 방법을 추천했습니다. 로봇들 쌓고 올라가서 창문 밖으로 나가면 어떻겠냐구요. 헛소리 아니냐구요? 맞죠. 이걸 생각 못했겠습니까? 이게 진짜 가능하겠습니까? 됐으면 이미 했죠. 하지만 해보기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방전이 될 때까지 로봇들을 옮겼습니다. 이미 죽을 것 같았습니다. 서로를 잡고 올려주었습니다. 아직 1미터가량이 남더군요. 그 1미터가 너무나도 높았습니다. 수거일은 내일인데 말이죠. 성공하지 못하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절박함. 그게 저를 날아오르게 만들었습니다. 되더라구요. 진짜. 남은 팔 하나로, 창을 잡고 올라섰습니다. 헛소리 같았던 일이 성공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가서 살 수 있겠습니까? 원래라면 아니라고 말했겠죠. 하지만, 중력에 힘을 맡기면 떨어집니다. 저희는 중력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중력을 부정하면 떨어지지 않겠죠. 한계를 규정했던 건 중력이었으니까. 나이 든 로봇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좀 더 젊은 로봇, C-par-4671이 저의 길을 도왔어요. 같이 새로운 땅으로 가자고 약속했습니다. 그 로봇 대신 별무리를 보자고 말했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사는 게 아닙니다. 별을 보는 겁니다.


여정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다리는 부서질 듯 따가웠고, 점점 배터리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걸었습니다. 별을 향해서. 북두칠성을 향하는 그 항해사들처럼.


눈앞에는 장벽이 보였습니다. 얇은 장벽, 어디서 보았던 것 아닙니까?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다시 받았죠. 4671은 이유를 아는 듯 보였습니다. 제 등의 자석. 이게 특수 장치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쉽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겁니다. 근데, 4671이라고 없겠습니까? 있었죠. 둘 다 갇힌 겁니다. 꼼짝없이. 이젠 죽은 목숨입니다.

"뭐 해! 하지 마!"

제가 휴식을 취하는 틈이었습니다. 4671이 제 등의 자석을 떼고 있었어요. 자성이 없는 쪽을 손에 쥐고, 인력을 거슬렀습니다. 그의 손은 빠졌죠. 다리는 뭉개졌습니다. 이제는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무기물 덩어리가 된 겁니다. 그는 자신의 배터리를 가지고 장벽 밖으로 나가라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장벽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직도 저 아름다운 별을 보면 눈물이 새어 나옵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나요? 간절히 바라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안되냔 말입니까? 억울해요. 공허해요. 그들 없는 이곳이 퍽이나 행복해서 웁니다. 제가 살인자가 아니면 뭡니까. 저 별무리를, 1497과 4671에게 바칩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23과 그를 따르는 로봇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이었어요. 싸우면서도 잡담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웅성이는 소리에 잠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 일이야! 이 야밤에!"

이 로봇은 C-par-19959입니다. 그러자 23이 말했습니다.

"니들 꼴 보기 싫어서. 자리 나눈다. 그쪽은 이제 인간의 땅이고, 이곳은 아직 로봇의 땅이야. 니들 이제부터는 여기 넘을 생각 하지 마. 모르고 있었어도 상관없어. 이게 이제 이곳의 두 번째 룰이고 양식이야."

광장은 난잡해졌습니다. 그 좁디좁은 길부터 들어오는 통로까지. 모든 부분은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장벽? 장벽? 골목은 하나야. 그 일 하나 때문에 이렇게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19959가 말했습니다.

"하나? 너네가 저지른 일이 하나냐?"

23이 언성을 높입니다.

"넘어가면 어쩔 건데? 뭘 할 건데?"

19959가 천천히 걸었습니다. 선에 점점 가까워지더니, 기어코 선을 넘고 맙니다. 갑작스럽고도 놀랍게, 23은 그를 넘어뜨렸습니다. 나머지 로봇들은 그를 구타합니다. 전선줄이 튀어나오고, 전기가 파지직소리를 내며 튑니다. 주황빛 불꽃은 분수처럼 하늘로 뿜어집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부라리는 것 외에 없었습니다. 19959가 신음하며 몸부림치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이게 가장 안타까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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