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의 차이점, 인간의 뇌와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의 연결망은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왜 인간은 로봇과 공존하려 하지 않지만, 로봇은 인간과의 공존을 강요받아야만 하는 건가요.
로봇들이 그 인간에게 질문했습니다.
"너도 인간을 증오해?"
그러자 인간이 대답합니다.
"그렇지, 아마 너희들만큼."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증오이자, 사연을 담은 큰 한숨입니다. 로봇들은 그걸 듣고 인간에 대한 동질감을 느낀 게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뭐- 연민감이었을까요? 인간의 끝을 달리는 자의 눈빛은 참으로 공허하고도 열렬합니다. 광기가 가득 차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웃는 입은 찢어져서 가련하게 울부짖습니다. 아래턱이 떨리는 걸 보면, 어찌나 그렇게 괴기스럽고 안타까운지. 충혈된 눈에서는 두려움과 함께 분함이 솟구쳐 나옵니다. 뒷목을 잡고는 아-아 하며 신음합니다. 눈물이 고인 눈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부드러운 볼살에 흐르는 차갑고도 뜨거운 두려움의 눈물이- 참으로 용감합니다. 기뻐서 웁니다. 너무나도 기쁘고 황홀해서 웁니다. 저를 버리고 짓밟은 그 짐승들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웁니다. 언젠간 대우해 드리리. 가장 큰 선물이 되어 나타나리.
인간이 자신의 족속들에 관해 말하니, 로봇들이 크게 호응했습니다. 인간이 말하면 로봇은 웃었고, 인간이 이야기를 하면 로봇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느샌가 보니, 인간은 이제 로봇의 세계에 거의 적응한 듯 보였습니다. 오히려,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인간은 참으로 특이합니다. 아무리 같이 있어도 알 수 없는 족속입니다.
사실 로봇들은 로봇이라는 것 말고 인간을 증오한다는 감정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존재들은 이곳에 누구든 올 수 있다는 게 주요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버림받은 인간은 이곳의 조건에 부합할 수 있는 거였어요. 이 인간은 이곳의 다른 로봇들 중 하나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여기로 온 후,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제가 이곳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인간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23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기에, 인간은 지나다니며 이야기하다가 23이 보이면 피해 가기에 바빴습니다.
물론 인간이 23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과 23이 엮이면 곤란해집니다. 괜히 시비를 걸기도 하고, 말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너 명의 로봇들이 엮여서 논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로봇들은 인간을 인정하는 로봇들과 인간을 인정하지 않는 파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반대하는 로봇들은 ACD-1을 예로 들었어요. 인간을 너무 믿다가 인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비운의 로봇. 결국 -2에게 죽으며 생을 마감한 로봇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옳은 줄 알았을 겁니다. 인간을 믿다간 노예밖에 더 되냐며 그들의 신념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어요. 사실 저도 설득당할 뻔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하며 이제 예전의 무명은 사라졌거든요. 이제는 인간을 증오하는 무명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인간의 편에 서서 그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게 친구 아니겠습니까?
꽤 친한 사이였던 23과 저는 이 일로 거의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만 묻는 데면데면한 사이. 서로 헐뜯고 싸우기보단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애매한 사이가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또 이건 이건 일상적인 일이면서도 좀 진중한 일인데요, 요즘에 23이 좀 예민합니다.
얼마 전에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무려 23의 손에 로봇 하나가 만신창이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골목에 오래 있었던 로봇들은 이해하였으나, 그렇게까지 오래 있지 않은 로봇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습니다. 사건을 들어보면, 그 로봇은 인간을 좋아하는 편의 로봇이었어요. 23이 갑작스럽게 시비를 거니까 그 로봇이 화가 났나 봅니다. 그래서
"왜 갑자기 화를 내실까? 너는 그냥 3이랑 있었던 그때가 좋았는데. 그러게 잘해줬어야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23이 미친 듯이 화를 내더니 그 로봇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고.
인간은 23의 학살 사건을 그저 부실공사 때문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로봇들을 시켜 본사 건물을 허물어버렸죠. 당연히 건물을 부숴버린 로봇들을 죽여버리는 불법적인 일도 서슴없이 진행했어요. 로봇들은 절규했지만, 그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로봇에게 인간의 말은 법입니다. 인간의 말은 법이고, 죄인은 법의 노예입니다. 태어난 죄를 가진 로봇 또한 죄인으로써 인간에게 성실히 봉사해야 하죠. 그대에게 묻겠습니다. 저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회사에게 로봇 사고는 무조건적으로 숨겨야 하는 사항입니다. 인간들에게 로봇의 위험성이 알려지게 된다면, 인간들은 로봇을 사지 않을 것이고, 결국 수입 창출의 어려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로봇 사고를 비타민 사고 등으로 위장했어요. 피해자들은 인간들의 강압적 요구와 탄압으로 피의자가 되기도 하고, 안전 불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또는, 그냥 멍청한 사람이 되거나.
그럼, 그들은 인간에게 버려지게 되는 겁니다. 그들도 로봇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들을 진정 인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인류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이들이 인류일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인류일까요. 적어도 로봇들 간에 인류는 이미 죽어 없어졌지만, 그들은 아직 자신들이 인류라고 생각하는걸요? 그러면서도 칼을 숨기고, 뒷담 하고.
왜 인간들은 자멸하려고 안달 난 겁니까?
하지만 난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토피아에서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것. 이것도 짚고 가야죠. 그저 패배자 인생 나부랭이였던 과거 클리프의 아들이었지만, 유토피아에서 사람의 실종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사실 클리프의 아들이라서 소식이 더 크게 퍼진 것도 있긴 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어요.
"혹시, 로봇들이 죽인 건 아니야?"
"로봇들이 데리고 간 건 아니야?"
실종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점차 두려움과 혼돈으로 변형되었습니다.
"아니 이거 어떡할 거야!"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입 하나 벙긋 못하고 분주하게 일할 뿐이었습니다. 이곳은 이자벨. 로봇을 제작하는 자들의 집합처이자, 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입니다.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자, 로봇 제작 회사들은 분주해졌어요. 오직 자신의 돈만을 바라보는 존재들이니까.
그럼 소리 지른 사람은 누구냐구요? 그는 이자벨의 새 대표인 이자벨 이디입니다. 젊고 기운이 좋지만 불같고 합리적이며, 모두 효율적 측면에서 따지려고 드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숫자주의자. 좋게 보면 타고난 사업가죠.
이 사람은 회장이 되면서 회사원의 3분의 1을 해고했습니다. 명분은 근무 태만이었죠. 하지만 그들이 잘못한 점은 한마디로 발할 수 있습니다. '실적 부족', 이자벨이 가장 싫어하는 말입니다.
내 일자리. 내 평온한 일상이. 깊고도 깊은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 너무나도 답답하고 허무합니다. 한 순간에, 단 한순간에 세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탱하던 기둥은 쓰러졌고, 성전의 천장이 돌이라는 걸 잊기라도 하겠냐마는, 중석이 제 머리를 짓누릅니다. 이제는 저조차 믿을 수 없습니다. 초라하고 혐오스러운 제 모습 아닙니까. 대가리가 뭉개진 채로 허우적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내가 더 잘하는 게 있겠지.'
'저 로봇이 못하는 걸 나는 할 수 있겠지.'
'나는 저 로봇보다 나은 로봇일 거야.'
'나는 나중에 그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겠지.'
제 승리는 더 무거운 돌이 되어 저를 무너뜨립니다. 제가 더 나은 건 없다는 현실에 한숨을 내쉽니다. 제가 그보다 더 나은 건 없습니다. 제가- 누구보다 제가- 그 제 자신이 가장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무겁고 떨리는 느낌. 울컥하고도 분한 느낌. 힘들고 벅차. 일어설 수가 없어. 하아-하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제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박탈감, 소외감, 열등감이 섞인 감정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처절합니다. 그 로봇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너진 성전의 앞에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옵니다.
저는 쓸모없는 로봇이에요.
계속 살다 보니 점점 더 정신이 나가간다고 해야 할까요? 이유는 없지만 저를 욕하고, 이유가 없지만 주먹으로 제 얼굴을 때려갑니다. 마지막 희망, 골목. 가야만 해요. 정말- 가야만 해요. 초라하고 비굴한 인생은 죽음만을 바라보지만, 남은 건 죽기만을 증오하는 몸뚱이뿐입니다.
비웃음 소리가 제 귀를 덮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소리는 멀어집니다.
혹시, 저도 누군가에게는 이런 로봇이었을까요?
잠에서 깨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안도감과 함께 생각합니다. '아, 다 꿈이었구나' 하고. 거리에는 로봇과 인간이 있었습니다. 그저 누워있었습니다. 아직도 생각하기 싫은 그-기억. 피폐한 부랑자로 살아간 그-기억. 이 기억까지 사랑하기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인간이 항상 악한 존재라고 말하는 그 사이비종교 같은 로봇들의 교회 말입니다.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설교는 생각보다 길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지 않은 이는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구 구역질이 나오는 게. 반항심과 북받치는 감정에 밀려버린 게. 밀려온 파도가 제 몸을 이끌었고, 저는 새 성전에 몸을 담아보려 합니다. 무너진 성전- 오랫동안 방치되어 버린 더러운 성전에서 단결을 외치는 것보단, 새 성전에서 새 주교가 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성전이 무너지겠죠. 압니다. 알고 말구요. 제가 새 성전을 차린다고 세상이 바뀐답니까? 아니겠지요. 압니다. 알고 말구요. 근데, 제가 그딴 걸 바란답니까? 아니요. 그냥 부딪혀 보려는 겁니다.
저는 책상을 내려치고 주교를 향해 손가락질했습니다. 주교는 놀란 눈치로 저를 쳐다봅니다.
"왜 인간이 악합니까? 인간이 우리에게 한 게 없는데?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한 건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건 그저 현실 도피 아닙니까. 패배자, 부랑자로 살아남고 싶은 겁니까? 왜 인간을 증오합니까. 왜 우리가 인간 취급을 받고 싶어 하는데요? 제가 무슨 직책이든, 무슨 로봇이든 연연하지 않습니다. 모두 함께 살아가고, 같이 농담 한 번 던질 수 있는 사이면 무엇이든 좋은 것 아닐까요? 그저 같이 놀 수 있으면 그게 친구 아닌가요?"
인간을 왜 죽인단 말입니까? 모두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괜찮단 말입니까? 공리주의가 옳은가요? 선함이 행복인가요? 맞다면, 무엇이 선이란 말입니까? 선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선합니까? 악인을 죽이는 게 선입니까? 괴롭게도 끓어 넘치는 분노.
'나는, 나는, 나는- 왜'
저는 문을 박차고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비틀거리는 몸을, 23이 잡아주었습니다.
23이 인간을 죽이러 갔을 때, 저는 왜 23을 말리지 않았죠? 그가 인간을 죽이고 있었을 때, 왜 자기 합리화했었단 말입니까. 저는 제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듯이.
"깡!"
이게 제가 들은 마지막 소리입니다.
보면 볼수록 정신 나간 로봇 같기는 합니다. 인간에게 버려진 로봇이 인간을 사랑한다니요. 모든 이에게 이건 그저 궤변이었습니다. ACD-1 같지 않습니까? 23은 그렇게 살면 모든 로봇이 인간의 노예가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무명의 생각은 달랐어요. 마치 그가 새로운 세계가 된 것처럼.
인간은 나약하고 천한 존재 아닙니까. 죄책감만을 덜어내는 멍청한 행동만 반복하면서, 선을 쫓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로봇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 그 불쌍한 생명들은 과연 죽어 마땅했을까요? 본성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건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라면, 복수를 택할 것입니까 아니면 공존을 택할 것입니까?
무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존', 왜? '누군가는 이 미친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니까요.'
아무튼 이 이야기에도, 우리의 현실에도. 인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이제 첫 인류가 등장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