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속부터 썩는다-1

by 유월

나무가 커지면, 속부터 썩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보고 강인하다 하지만, 그 나무는 조금에 바람에도 무너집니다.. 이건 어떤 것에서나 적용되는 법칙이죠. 무엇이든, 언젠가는 썩습니다.


죽은 19959의 불꽃은 화려하게 빛나다가 골목에 흩뿌려졌습니다. 분란의 씨앗도-이곳에 녹아들었죠. 안타깝고도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틈만 나면 웃고 떠들었던 골목의 분위기는,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건물 하나에 고이 안치된 19959의 시신은 점점 녹이 슬어갑니다. 중앙 건물에도 출입하기 무섭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정말-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반대편에서는 출장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센가 그중 둘이 저희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친 것들. 친구를 죽여놓고 말을 거는 게 무슨 염치입니까? 중요한 일이라며 들으라고 설득했지만, 저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원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거죠. 경멸의 눈빛으로 째려보는 것, 내가 너를 금방이라도 죽일 수 있다는 살기를 품을 것. 우직하게 서있을 것.

그런데 그들의 동공이 떨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알아챘습니다. 증오 속에서도- 그 선세한 반응을. 특이하네요. 이런 기능까지 넣어놨다는 게. 인간은 미묘한 감정선과 작은 동요 속에서 고뇌했을 겁니다. 죄책하고 있다는 저 표정과, 상반된 과거. 제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제가 용서할 수 있을까요?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입술을 바스라질 듯 깨뭅니다. 아래턱이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왼손이 거절과 찬성 사이에서 흔들려옵니다. 싸늘한 공기가 기도에 흘러들어와 폐를 긁습니다. 숨 쉬기도 어려워졌을 그때—

"뭔데?"

고뇌 속에 비치는 작은 목소리입니다. 어둡고 탁한 분위기를 찢고 한줄기의 빛이 쏟아집니다. 이제는 마음을 다잡은 거겠지요.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한 거겠지요. 사실 그가 말한 것도 아닙니다. 가끔은 그렇지 않습니까. 얼떨결에 목소리가 나오는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무의식의 의중을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는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상처 입은 저들에게, 손을 건넵니다. 아직 모두가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단 둘이라면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아니— 단 둘이라도.

"우리 쪽에서 출장을 갔는데, 인간들이 우리를 침략할 눈치더라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러웠고, 그럴 이유도-계기도 없었거든요.

인간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겁니까.

"그럼 걔네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말이,

"모르지만, 아는 눈치였댔어. 23은 왜인지 알고 있었고."

23이 알고 있었다니요. 일단 멍청한 추측이나 상상은 아니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 일을 빨리 다른 로봇들에게 발려야 합니다.

이게 그 일이 일어나기 4일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센가부터 이자벨은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로봇 제작 공장은 항상 돌아가지만, 로봇은 팔리지 않기 때문이었죠. 이디는 이 모든 문제를 사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당장이라도 직원들을 자르고 싶었으나, 지금은 사건을 묻어야 하는 단계이고-만일 직원들을 대거 해고한다면 모든 시선이 이자벨에 끌림은 당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편안한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디의 잘생긴 얼굴에는 이제 주름이 꼈으며, 그의 젊은과는 반대로 60대의 험악한 할아버지 얼굴을 띠게 되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호통을 쳤고, 원래 예민했던 성격은 더 예민해졌어요. 이제 눈빛엔 열정 대신 한기와 공허가 짓눌립니다. 다른 이들은 그에 대해 "꼴 뵈기가 싫다.", "싹수가 없다."라고 뒷담 했습니다.

오늘은 뭔가 이상한 날입니다. 유명 언론사의 헤드라인에 "이자벨 이디-인간 납치, 살인은 모두 거짓, 유언비어 퍼트릴 시 강경 대응할 것."라는 기사가 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극 효율중심적인 방식 아닙니까? 하지만 엄청나게 명확하고, 현실적입니다. 그가 이자벨의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사유도 이것이겠죠.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강단과 리더십이 배겼으며, 화투는 마치 도시를 휩쓰는 폭풍입니다.

일은 모두 이디가 원한 대로 흘러갔습니다. 기자들이 주목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의 말은 사람들을 움직였지요. 기자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언론사의 이름이 박힌 마이크는 그의 입은 중심으로 맴돌았습니다. 수많은 플래시는 그곳을 가득 채웠지요. 시선은 칼날이었고, 질문은 뼈를 때리는 곤봉이었습니다.

"그 일들이 모두 유언비어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은 뭡니까? 증거가 다 있지 않습니까?"

이디는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고, 입꼬리를 억지로 잡아당기듯 미소를 유지했어요.

“저희 내부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VIP 분들의 건강을 위해 저희가 직접 제조한 약이,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제조 중이고, 앞으로 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서걱서걱, 서걱서걱. 펜소리가 귀를 긁습니다. 글씨는 기록이었고, 기록은 무기였으니까.

"그럼 이자벨 클리프의 아들이자, 과거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이자벨 러프의 실종사건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그것도 약 문제라고 치부하실 겁니까?"

이디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그 떨림은 본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플래시가 터지는 카메라는 그 떨림을 잡아내었습니다.

"그 사건은 아직 수사 중입니다. 정황상으로는, 극단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미제 사건이니, 로봇들의 소행으로 치부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로봇은 우리의 친구니까요."

거짓이 섞인 말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신뢰감이 어린 말투였습니다. 그 짧은 틈에도 로봇은 인간의 친구라는 말을 끼워 넣음으로서 사람들의 뇌에 박힌 감각을 자극했습니다. 천성 장사꾼.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점점 어딘가의 구석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디가 모를 리 없었지요. 거짓을 감당하려면, 거짓 이상의 무언가를 감당해내야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계산을 믿었어요.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확신'. 그러나 그 확신은 너무나 낡았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기자들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선대 회장들이 하던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돌아섰고, 로봇에 대한 신뢰는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넥과 파르테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지요.

"묘수가 필요해."

이디가 중얼거립니다.

"뭐라도 더 할 수는 없을까? 시간을 더 끌 방법이…."

하지만 비서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로봇 생산을 중단하는 게…."

그 말은 이디를 무너뜨렸어요. 얼마나 많은 것을 걸었는데,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렸는데.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내 잘못이 뭘까?'

그는 생각했습니다.

'너무 분석만 하고, 너무 실속만 챙기려 한 거겠지.'

“돈은 그냥 다~ 버리고, 우리 다 거지되는 거야. 좋아? 그럼 그냥 그렇게 하던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보던지.”

비꼬는 어투. 눈빛은 짜증으로 가득했고, 말끝은 위협처럼 차가웠습니다. 비서는 그 자리를 피신하듯 빠져나옵니다. 폐가 조여왔고, 심장은 쿠광대었어요.

"내가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건데…. 개 같은 거."

작은 욕설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들, 그는 직업을 바꿀까도 고민했을 겁니다.


이디는 잠시 창 밖을 바라봅니다. 숨이 박히고 답답합니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우주는 참 무정합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요. 고통은 쇠사슬마냥 그를 옥죕니다. 압박이 지그시 가름을 누릅니다. 자신도 과거에는 저 나무들을 보면서 행복해했죠. 이제는 그 여유를 즐길 새도 없다는 게 참 억울하지 않습니까? 기억 속으로 도망치는 겁니다. 별로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오늘 같은 날에게 다시 선물합니다. 15년 정도 전의 이야기였을까요?


푸른 초목의 빛은 제 동공에 고였구, 나뭇잎의 그림자는 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 초목 사이의 빛이 눈부시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차가운 공기는 제 코를 찌릅니다. 그때무에 싱그러운 녹색의 향기는 가려지지만, 그 냉기 또한 느끼기에는 좋았죠. "짹짹"거리는 소리는 제 귀를 뒤덮습니다. 제 고막까지 흔듭니다. 새소리가 잠잠해지자 하천의 물소리가 빼꼼 고개를 내밉니다. 바람이 제 손을 잡았고, 신발 밑의 흙이 포슬거립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저는 이자벨 가문에서 놀고먹는 사람이었기에, 공부 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돈 또한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과는 참 다른 모습 아닙니까?

"이디!"

친구가 부르는 소리입니다. 내가 짝사랑하는 친구.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겠죠. 달릴 때의 머릿결은 바람에 찰랑거렸고, 그녀와 함께 듣는 새소리는 고풍스런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의 제가 소위 말하는 '콩깍지'가 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제 말 몇 마디의 그녀는 미소를 지어줍니다. 제가 무슨 실수를 하든 항상 밝고 명랑하게 대해줍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 아닐까요? 저희는 정말 친했기에, 가끔씩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는 했습니다. 언젠가는 그녀가 제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푸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소리 냅니다. 우리는 벤치에 않아 먼 곳을 바라봅니다. 파라란 공원이었지만, 정말 먼 곳이었지만, 나에게 신경이 쓰이는 건 오직 그녀였으니까.

"나는…."

말이 멎어버렸습니다. 사실 장래희망 따위는 상상도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나중에 무엇이 되든, 그게 지금의 저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무엇을 하든지, 유토피아 안에서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뭐, 회장?"

어림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때의 회장은 이자벨 클리프. 저의 삼촌으로, 너무나 완벽하고 멋진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절대로 달성할 수 없었겠지요.

"회장? 좋은 꿈이네."

그녀가 아름답게 미소 짓자, 저도 같이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묻자, 그녀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군인."

전쟁은 사라지고 있었고, 이제 군인은 모두 로봇으로 교체되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실상으로 말하면, 미래가 없는 직업이라는 뜻입니다. 경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죠.

"왜?"

"할 수 있다면 의사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별로 그만큼 공부하기는 싫고. 또 의사 계열에서는 인간이 극극소수잖아? 포기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1명이라도 도우며 살고 싶어서. 그리고, 내가 원하는 길이니까. 내가 생각하는 길이고. 언젠가는 군용 로봇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럼 나는 제일 돈이 많은 회사에 들어갈 거야. 그래, 내가 군용 로봇을 만들게 되면, 그때는 네가 이자벨의 회장이겠지? 만약에 그때까지 이자벨이 가장 돈이 많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래."

"약속해."

저희는 손으로 약속까지 맺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끔찍했지만, 함께하는 그 순간만으로 행복했거든요.

그렇게 그녀는 사관학교에 들어갔죠. 사관학교는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녀의 뒷모습은 참 씁쓸하고 처량하지 않덥니까? 그 꿈은 서서히 변질되어 저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지만요. 언제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아름답고도 처량한 기억이죠. 잘생긴 얼굴에 눈물이 고입니다. 부은 심장에 못이겨 붉어진 볼은 이미 뜨겁습니다.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볼을 적시죠. 그는 따듯한 이마와 눈가를 손으로 가려냅니다.

'나 이제 어떡하냐. 연애도 해야 하는데. 결혼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살다가 혼자 죽는건지도 모르겠다. 어휴-. 과로사만 안 하면 그만 아니냐? 하핫.'


추억은 집어 치웁시다. 현실을 직시하자구요. 그는 결심했습니다. 조금은 미친 듯 해요.

"그래! 악의 근원을 부수면 되잖아!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이디는 비서를 불러 자신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당연한 반응을 남깁니다.

"이건 최고 회의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설마 회의를 건너뛰시겠다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이디는 억지고 고개를 끄덕였죠.

"그럼 회의는 언제 하실 건가요?"

"오늘, 1시간 뒤."

"…네?"

회의는 긴급히 소집되었습니다. 임원들은 짜증을 내며 자리에 앉았지만, 회장은 이디였기에, 누구도 핀잔주지 못했습니다. 안 그래도 예민한 그의 성격인데, 지금 훨씬 더 심해졌으니 말이죠. 나이만 믿고 싸웠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지금 골목의 로봇들과 전쟁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만 보고 살아야 합니까?"

그 말에 한 임원이 벌떡 일어납니다.

"이 시대에 부슨 전쟁입니까? 농담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디는 같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말 좀 들어보세요. 이 사태를 가만히 두면, 당신들의 목숨까지 위험해집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로봇들이 앞으로 모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구요. 만약 사고라도 나면, 우리 회사-책임 못 집니다."

임원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생존 본능은 무엇보다도 강하죠. 본능은 모든 율리를 잠식시킵니다.

"그들은 무기가 없습니다. 총 한 자루로도 위협할 수 있어요. 대장 역할하는 몇 놈만 폐기시키면 돼요. 아무도 죽지 않는다니까요?"

수군거림이 일었습니다. 임원들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합니다. 수십 년의 이자벨 생활에서 배웠듯이 말입니다. '잘못되면 이디 탓으로 돌리자.' 남는 장사입니다. 책임도, 대가도, 모두 회장에게.

"하지만, 골목의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골목의 위치는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로봇 하나를 보내서 재확인하면 됩니다. 우리에겐, 로봇을 아-주 증오하는 로봇 하나가 있으니까요. 배신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예전부터 철저한 복종을 보여줬어요."

회의는 마무리됩니다.

10명.

만장일치 찬성.

이 고요한 세계에 피바람이 불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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