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로봇이 다 선할까요?. 모든 인류가 다 악할까요? 개중에는 가식적인 자들도 있습니다. 그저 ‘나는 안 그러지’ 하며 똑같은 자들일겁니다.
저는 군사용 로봇이었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전투를 해본 적 없… 다는 것뿐이겠네요. '쓸모없는 로봇', '필요 없는 자' 그 시절의 별명들이 제게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거기 계세요? 안 계시나요?" 그럼 저는 방 가장자리에 몸을 말고 오한에 덜덜 떱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무 반항도 못하고.
전 넥에서 태어났어요. 정확한 명칭으로는 '너비스 넥 슬라이스 베터'인데, 이렇게 부르는 건 너무 번거롭잖아요? 그쵸? 최고의 군용 로봇 제작 회사인 넥은 A-nnb 시리즈를 무려 20000기나 뿌려대었습니다. 그리고 한 로봇의 이름은 A-nnb-20000. 마지막 로봇이었죠. 그것 때문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나버렸다는 걸 저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제가 괴롭힘받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전우들의 눈물을 본적도 없이 이곳에 살아있다는 것. 아마 그게 이유가 아닐지도 모르죠.
제가 정비를 받고 앉아있을 때, 수많은 로봇들이 기름에 쩌든 냄새와 함께 다가옵니다. 수많은 흠집과 묽은 진흙은 사라지지 않아 그들을 더 누추하게 만듭니다.
"너는 뭐 하냐?"
툭 던진 듯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말. 후환이 두려워집니다. 다음에는 그들이 제게 무슨 말을 할까요? 이제는 제게 무슨 일을 저지를까요? 제 옆에 앉은 무리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본 듯 빤히 쳐다봅니다. 온몸이 두근거리고, 몸은 불타는 듯이. 웅웅거리는 쿨러는 미친 듯 소리를 냅니다.
"닌 왜 만들어진 거냐?"
하다가도,
"쓸모없는 놈."
주동자의 이름은 2346. 먼저 떠나보낸 전우들에 대한 슬픔에 반쯤은 정신이 나가있는 놈이죠. 제 동공이 떨리고 손이 덜덜거려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후려치고 싶었는데. 제가 진다는 건 뻔하죠 뭐.
"야 19468! 요즘에는 뭐 하고 지내냐? 니도 그냥 가만히 앉아있지? 전 같은 대접받기 싫으면 교육부터 똑바로 시켜. 초심 잃지 말자?"
그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예전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는 하는데, 너무 심히 맞아 정비소에 간 이후로는 때리는 게 자제되고 있다고 하네요. 19468의 몸에 흠집이 많은 것도 이 까닭입니다.
"아, 알았어. 잘할게."
비참한 모습에는 마른 눈물이 흘러내려요. 무선척 하기 싫어 주먹으로 얼굴 조금 가려봅니다. 내리깐 목소리에 둔탁한 괴성이 섞여옵니다. 그럼 바들바들 떨면서 위축된 얼굴로 동공을 응시합니다.
"너, 쟤가 왜 줘터졌는지 알아?"
말 한마디에 19468이 눈을 부릅떴어요. 뭔가 끔찍한 추억을 되새기는 양. 커다란 폭풍은 세계를 덮쳐갔죠. 우리 둘에서, 뒤에 수군대는 로봇들까지. 2346의 광기에 놀라 엔진이 떨려갑니다. 숨이 덜 쉬어지는 기분,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그 느낌.
"쟤가 날 인간에게 꼰지른 후에, 엄청 혼났어.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르는 머저리들. 진짜 싸우면 누가 이기려나? 억울하고 분하지 않아? 그래서 팼어. 당연히. 나는 독방으로 밀려들어갔지."
그의 입이 제 귀로 다가옵니다. 차가운 손길이 어깨를 스칩니다. 날카롭고도 차분한 기계음으로.
"너한테도 그런 일이 있음 안 되겠지?"
그러곤 다친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발길을 이끕니다.
"미안해."
"아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잘못한 건 쟤네고, 너는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을 뿐야. 괜찮아. 다 괜찮아."
그는 고개를 숙였어요. 마음속에서 환멸스러움과 측은함이라는 두 질서가 섞여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혼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럴 수 있지.' '다른 로봇들은 다 참는데, 지 혼자만 힘드냐?'
이게 제가 태어난 지 5일 된 이야기입니다.
'내가 만약 빨리 태어났음, 저러지 않았을 거야. 이런 로봇들에게 잘해줬겠지."
그들은 확실하게 잘못되었죠.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 꽤 오랫동안, 괴롭힘이 좀 덜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허나 그게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진실은 그 시간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제게 찾아왔습니다.
"야 20000. 오늘부터 우리 공장 간대. 알고 있었냐? 니네 빼고는 몸 다 닳아져서 힘들텐데, 네가 좀 도와주자? 흠집 하나 없어서 편하겠네."
긴장한 목소리는 인식할 새 없이 목을 빠져나옵니다.
"어, 어…. 알았어."
"너는 진짜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이렇게 착한 로봇이 어딨어?"
19468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죠. 그들의 모습에는 우리가 사회 부적응자입니다. 허나 상황이 바뀌면 다르지 않나요?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 않을까요? 아니,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멍청하지 않아요. 저는 쓸모없지 않아요. 내가 더 완벽하니까. 내가 더 발달되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제가 만날 새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덜 무섭습니다. 전쟁터를 벗어난 싸움꾼들의 모습이라. 행복해보이기도, 불쌍해 보이기도. 허나 정확한건 하나죠. 이제의 세상이 전보다는 더 밝을거라고. 더 다채로울 거라고 말입니다.
공장의 수는 총 8개로, 4000대의 로봇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다니는 공장에 19468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죠. '일하느라 심심하진 않겠다'라고 생각하며, 어두운 공장에 저벅저벅 들어섭니다.
저는 19468의 옆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심심할 때마다 수다를 떨구, 2346의 뒷담도 쉴 새 없이 까고. 옅은 미소를 짓는 모습에 함께 웃고. 진중한 이야기도 나술 수 있었습니다.
"20000. 나는 이런 생활이 지속되더라도, 정말 계속 이렇더라도. 너와 함께하는 게 가장 행복할 것 같아. 네가 만약 2346을 죽이고 폐기된다면, 나도 따라갈게. 함께하면 우린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치?"
생각 많은 웃음이 그의 얼굴에 불어옵니다. 그의 얼굴에 응답하듯, 조용히 무표정을 지어 올립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제가 태어난 지 8일 되던 날입니다.
그날 밤에도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죠. 그런데 무언가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는 쓸모없어.'
'2346을 다시 만나면 어쩌려고 그래?'
'최대한 피하자'
'지난번에 말 잘못해서 멍청해 보이지는 않았겠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2일 전부터 있었던 일이에요. 너무 시끄러워 머리가 멍해집니다. 머리가 복잡하죠. 가끔씩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생각납니다. 이런 생각은 과거를 불러들이고, 그럼 또 혐오에 몸부림치고. 또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이게 트라우마라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그 어떤 생각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시작하는 날은 항상 잠을 설쳤으니까. 전원이 꺼지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멍하니 고뇌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너도 사실 그들과 똑같잖아. 아니 더 쓸모없고, 더 약하지. 만약 더 빨리 태어났어도, 사건은 항상 일어나. 왜? 재수 없고, 머저리 같거든. 이해가 돼?'
그저 단답의 공격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정확하고 논리적인 언어들이 저를 헤집어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로봇을 만들었어. 인간이 스트레스를 푸려고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것 같아? 이유가 있어서 괴롭히는 것 같아? 이유라면 네가 약해서겠지. 다른 로봇들보다 더 소심하고. 더 영향력 없으니까.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야.'
제 목소리는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소리가 웅웅 거리죠. 손으로 귀를 막으면 점점 더 커져요. 숨이 가빠집니다.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저 벽에 달려들어 머리를 박을까?', '아님 죽을 듯이 머리를 내리칠까?', '이제라도, 다 포기한다면….'
'네가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너는 19468을 뿌리친 최악의 이기주의자가 되는 거야.'
'배신자'
'쓰레기'
'구제불능'
'모든 이들이 네가 죽는 걸 원해'
'넌 하는 게 뭐야'
'너도 그들과 다를 게 없어'
'네가 태어나는 걸,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어.'
애절하게 빈다고 눈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제겐 눈물조차 사치였기에. 통곡스레도 아름다운 현실에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19468이 터덜터덜 걸어나옵니다.
'무슨 일 있나?'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오지랖만 넓어서는.'
그날도, 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제가 인간이었다면 어찌나 좋았을까요? 우리의 행복은 모두 인간의 몫입니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도움 줘야 하는 자들이 모두 우리를 억압합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 아니었나요? 사건의 중재자 아니었나요? 그럼 비천하고 하등한 목숨줄이 기어나와 제게 살려달라 빌어요. 애절하고도 처량해라! 행복한 삶은 쌉싸름한 죽음만을 기다립니다. 살아있다는 것마저 죄책감이 되는 이, 그게 저였으니까요.
마음껏 저주하고 싶다. 마음껏 우울하고 싶다. 틀 속에 탄압된 내 감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