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4

by 유월

아프리카 땅에 다다르자, 부드럽게 흔들리던 선박은 덜컹이며 땅에 다다랐소. 짐을 챙기고 나서는 무리 사이로 억센 발음이 귀에 꽂히지.

Va te faire foutre(ㅸ마 테 페ᄙ느ㆄ무트ᄙ네)

사람들은 간단한 욕으로 그에 응수했다네. 얼마 있지도 않을 리비아 땅. 여기서만이라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겠소? 이미 미카엘은 노아로 살고 있네만, 고된 생활을 꺾고 나선지라 몸이 홀쭉해져 그의 지지자들조차 몰라볼 지경에 이르렀으리외다. 그는 나에게 신분 숨기고 사는 거 그리 어렵지 않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어. 뭐, 가장 큰 공신은 내게 가라 여권을 건네준 부랑자 친구겠지만 말이오.

아이고 더워라.

내리쬐는 햇볕은 내 피부를 서서히 불태우오. 나 원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있어야지. 내가 가본 곳은 내 조국 프랑스와 영제국이 전부요. 하지만 미카엘은 이 더위가 익숙하다는 것마냥 거리를 활보하더군. 많은 시민들이 그가 전체주의 졸개인 줄 알고 째려보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들창코로 모래와 신선한 산소 섞인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이래 가냘픈 백성들은 울분찬 표정으로 어디론가 떠났으리오. 아마 다들 튀니지로 넘어가려 하는 거겠지. 탈리비아(脫/利比亞)행 열차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모두가 그래 떠나면 우리가 어찌 피란민으로 살아갈 수 있겠소. 군인이 멈춰 세웠는데 대 프랑스 국민인 걸 알게 된다면 총부리 들이밀고 일단 무슨 용무인지 심문하지 않겠습니까? 조마조마한 마음과 함께 우리는 오늘 밤에 있을 튀니지행 탈출을 계획했지요.

_미카엘. 자네는 이미 국경 넘어봐서 어떻게 넘는지 알지 않나. 좀 도와주면 고맙겠네 그려.

국경을 넘는다는 게 적응이 될만한 일은 아닙니다. 한 번 안 넘어본 초보도, 이래 넘어본 사람도 똑같이 운이 다하면 죽는 겁니다. 조언이 있다면 정신 차리라는 말 빼고 할 수 있는 게 없지요.

그래. 알겠네 알겠어./

원래 홀로도 갈 수 있는 이에게 붙어가면서까지 조언을 구한다는 건 조금 무례한 일이었소. =허나, 아무리 목숨 버린 몸이래도 죽는 건 두렵지 않겠으리이까? 제 몸에 달린 것도 머리입니다. 이래도 미워하지는 마시게./ *자네가 아무리 날 증오한다고 하더라두, 나도 미카엘을 좋아하는 건 분명하니 말이오./

암튼 한 처량한 부랑자와 한 청년은 시간을 지낼 겸 산책을 시작했다오. 이때가 미카엘이 나에 관해 가장 많이 알았을 때였겠지요. 둘 다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둘 모두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실컷 떠들어대기 시작했으리이다. 프랑스어로 떠들어대는 프랑스인 하나와 등창코 하나를 보면 독일 장병들이 이상야릇하다 여기겠습니다. 하지만 그딴 게 중요하오? 우리는 가족이 어땠냐. 어떻게 잃었나. 아직도 상사병을 못 이겨냈다. 등등의 이야기로 시간을 지내었으리외다.

가족 떠나보낸 날이 언제요?

내가 물었지.

11월 10일(크리스탈 나흐트 당일)이외다.

아-. 알겠소. 혹시 아내가 독실한 신도였습니까? 시나고그(회당)였다면 정말 유감이오.

아내는 정말 독실했지요. ~*제가 시나고그에 도착하여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찾을 때엔, 내가 결혼 기념으로 사준 목걸이가 반짝 빛나고 있더라./ _나는 그나마 조부의 피 중 아리아인이 섞인 편이라 그리 빨리 배제되진 않은 게 다행이었지요. 아내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으니-. 만일 내가 순수 유대인이었다면 끌려가 매질당하기가 먼저였을 것이지 말입니다./

슬하에 자녀는?

없었습니다.

다행이구만 그려. 있었다면 슬픔이 배(倍)였을 테지.

자녀가 죽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겠지요. 그것도 눈앞에서 딸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고통은. 정말 공포스런 점은, 이런 고통을 제가 아니라도 수많은 이들 또한 겪었다는 겁니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일 것이오.


시간이 다 와버렸습니다. 리비아의 물결은 참으로 차갑고도 덥더라. 달빛에 비춰 오묘한 빛깔은 마치 청산유수 미카엘의 언변같이 눈을 밝게 비추오. 미카엘마저 제 생각하는지 모른 채 내게 아름답지요? 하며 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별 하나하나를 보며 생각하지요.

제가 런던에 있을 때, 샬럿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샬럿. 그대여. 그대는 내게 저 하늘의 별들 같은 존재요./

네?

샬럿. 별은 손에 닿지 않기에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밤마다 고개를 들게 하기에 아름다운 것이오. 그대는 내게 길을 잃을 때마다 방향을 가르켜 주는 별이었소. 가까이 오라 부르면서도, 멀고도 먼 존재였다는 말이오.

*별이 자기 빛을 모르듯, 사람은 종종 자기가 비추는 세계를 모릅니다. 달빛 아래 리비아의 물결이 왠지 모를 핓빛으로 물든 것처럼 내 눈시울은 붉은 노을마냥 점점 색조가 강렬해진다오./

내가 미겔에게 끌린 이유가 이것이 아니었으리?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밤마다 고개를 들게 만드는 그였으니까. 그래 그래. 그대에게 미겔은 한낯 지나가는 태양이었을지 모르나, 튀니지행 피란 때에는 영락없이 별 그 자체였지. 시민들은 전체주의 정부에 의해 통제되었지만, 독일 가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미카엘과 나는 손쉽게 포위망을 벗어나 뛰쳐나왔소. 이 늙은 나이에 그리 뛰쳐나올 때 되니 어느새 국경선이었지요. 국경선을 넘어서 조금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걸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 둘-. 모여들어 그래 괜찮은 표정으로 행복해하니 아직 남은 여정이 태산이나 마치 탈출을 손에 쥔 양 떠들었지요.

미카엘. 이제 어쩌면 좋소.

아는 친우가 이곳에서 밀항선을 운영합니다. 제가 보이면 태워줄 테니, 알제항까지는 앉아서 편히 가시지요.

우리가 건넌 이 국경이 나중엔 연합군과 추축군의 최대전선이 될 수도 있겠으리다. 허나 이곳을 보시오. 편하고 선한 풍경은 우리를 잡아채어 눈길을 이끌지 않소? 나는 전쟁이 밉소. ~우리 아내와 딸들 앗아간 그 전쟁이 너무나도 밉소./

^하미칼! 여기네 여기!/

미카엘? 자네가 왜 여기 있어?

하미칼은 미카엘이 리비아에 유학 왔을 때 친해졌던 친우라 합니다. 그의 오똑한 코와 총명한 눈을 보고 저는 참 미남이구나 생각했지요. 고풍스럽고도 눈길이 가는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 이 불쌍 한 유대인 알뢰ᄙ느(haleur)는 만일 전쟁 없으면 가수라도 했겠다 생각했으리외다.

흔들거리는 중형 배 위에 하미칼이 올라타자 배는 부드럽게 출렁거린다오. 배에 타자마자 나는 통성명을 하고는 미카엘의 옆자리에 착석해 졸기 시작했지. 그럴 때도 되었소. 트리폴리에서 나올 때가 새벽 때였는데, 지금이 황혼이지요. 졸고 있는 나와 미카엘을 미소와 함께 스윽 쳐다본 하미칼은 반쯤 감긴 눈으로 선원들과 대화하다 같이 잠에 들었다네. 단숨이었어. 꿈에 그리던 알제에 도착한 순간은 말일세.


알제의 풍경은 정말 멋졌다오. 영국군은 우리를 보고 총부리를 들이미었으나, 하미칼이 안전하다는 의미로 손가락 네 개를 피고 멈추라는 신호를 짓자 우릴 빈 방 하나로 안내했지. 슬프지만 하미칼은 뱃일 때문에 손가락이 하나 잘려 오른손 검지가 없다오. 오자마자 물과 빵 몇 조각을 내려놓은 그는 산책을 나가버렸지요.

*ㆅ아아-. 오랜만에 여정이라. 돌아버리게도 힘들군. 그래 나는 모래바람과 함께 내리쬐는 햇빛으로 드디어 잠을 청했소. 간만에 단잠이구나. 단잠이야./


단잠에서 일어나자 석양이 지오. 근데, 미카엘은 어딨는 건가? 작은 방에서 벌떡 일어나선 문을 박차고 나와 산책을 하기로 했으리다. 미카엘도 찾는 겸, 뭐 착잡한 심정도 달랠 겸. 방을 나가 동네라도 한 바퀴 돌아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던 미카엘은 놀랍게도 바로 앞에서 군장병들, 독일인 하나와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아리아인으로 보이는 그 남성은 연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그게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입니다. ~너무 역겨웠지요. 총력전을 소리칠 때 모두가 하일! 하며 받아치는 거 말입니다./

이건 그가 말하는 그 연설의 모습이오.

^영국인들은 독일인들이 종전을 원한다고 주장합디다! 그들은 독일 국민들이 총력전이 아니라 항복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거짓말이다!/

시민들이 목이 찢어져 갈라질 듯하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오. 소음 속에 이미 질식해 버린 이성은 그들을 짐승과 다름없는 열광덩어리로 만들어버렸으리다. 괴벨스는 그 파도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아니 그 파도를 해일로 키워내기 위해 목이 갈라질 듯 팔을 마구잡이로 흔들며 소리 질렀지요. 그의 말은 도끼질과 다름없소. 미친 용의 역린이 무섭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그래. 여러분들에게 묻겠으리다. 그대들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그대의 머리에 박힌 그 애놀음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전투를! 그대를 갈아서 연료로 써버리는 진짜 전투를 원하느냔 말이오!/

전투 하나 없는 곳에 이리 피비린내 나는 곳은 아마 굶주린 독일국민들의 뒷골목 말구는 없었을 것이외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서 오른팔을 번쩍 들더니만 하일! 하고 소리 지르오. 수천 개의 목소리가 하나의 의지를 향해 울려 퍼졌고, 우레마냥 들려오는 광인들의 천둥음은 세간을 물들일 듯 열광적이고 단단했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 그 모두가 재물이 되어 총통을 따라갈 각오가 되어있소? 전쟁통에 군대가 무너져 그대 하나만 남은 전선에서 기꺼이 우리 대 독일의 국가을 힘차게 불러줄 각오가 되어있소? 광기와 투지로 전투에 참여하여 저 머저리들을 찢어발길 때까지 기꺼이 싸워나갈 각오가 되어있소?/

그가 요구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자기 말소였습니다.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 대신, 죽음으로 충성을 바치라는 선언.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소리는 개인의 이름과 얼굴을 지워버렸지. 남은 것은 깃발과 구호, 그리고 끝을 향해 질주하라는 집단의 거대한 그림자뿐이었으리오.

^하일!

국민들이여! 폭풍에 맞서시오!/

허나 폭풍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소. 연단에서 만들어져 이 홀에서 태어나 바로 이 사람들을 삼키는 그게, 바로 폭풍이었단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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