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혈월의 적광은 나랄 헤집어놓소. 마ᄙ느세유의 바닷가는 불타는 동족의 땅과는 다르게, 달빛에 비춰 오묘한 빛깔을 띠오. 그럼 나는 그 풍경을 살며시 바라보고는 입술을 꽉 깨물고 소름을 만끽한다오. 여관에 들러 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즐기는 긴장 속 여유가 내 눈을 저절로 감기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이유는 없지만 죽을 수는 없는 이 느낌이 나를 이승에 잡아챕니다. 서린 바람은 찬 손끝을 움켜쥐고. 찬 손끝은 뜨건 머리로 달려가 천천히 고뇌를 식히오. 스륵 감긴 눈에서 이젠 눈물이 새어 나오지 않기를./
=뤼카. 뤼카. 절대 포기하지 마./ ~그들이 원하는 게 포기하는 거겠지. 너는 굴복하지 않아./
근데 말이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 하여 정말 승리하는 겁니까? 이미 정신은 붕괴되었고, 터진 입술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나오는데. 결국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던 걸까. 우린 그들의 손아귀에 휩쓸려 이리저리 치이고만 살아야 하는 걸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드오./ 내가 그들의 패망을 진심으로 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패망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럼 저와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받아들이세. 우리는 그들과 다름 없었다구 말이오./
곤히 잠든 미카엘의 모습. 혹시 그도 그들과 다름없었던 것일까? 생각을 해보시오. 전쟁은 그 자체로 극 전체주의적인 행동이었소. 반전운동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틀린 일이었습니까? 그럼, 땅을 저 나치당에게 홀라당 넘겨주는 것이 진정 옳은 일이었단 말입니까?
=ㆅ아아-. ㆅ아아-./ ~(!)이젠 나도 잘 모르겠소.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내가 하는 행동이 진정 정의로운 행동인지도 말이오. 앞뒤 꽉 막힌 상자 속에 갇힌 채 버둥거리는 느낌입니다. 팔 움직일 공간도, 몸 돌릴 공간도 없는 그 상자에서 말입니다./
미카엘은 정답을 알았을까 하오. 근데 뭐, 이미 죽은 이에게 무엇을 묻겠소. 그대와 내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거지.
깨어난 미카엘은 허둥거리며 짐을 챙기고는 밖으로 향했지. 약 20년간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던 나에게는 참 적응 안 되는 인간이었소. 그러고는 사람들을 모집하거나 제 주장을 펼치는 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참 멋지고도 참된 젊은이오.
6월 26일 들려온 소식. 생각보다 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프랑스가 함락되어 버렸으리다. 붉은 쇳덩이들이 마지노 전선을 우회하여 대도시에 들어오는 꼴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니. 전직 군인에겐 이것보다 침울한 상황이 있을 수 없소. 27일 날 들어오는 독일의 졸개들, 비시의 군대들이 마ᄙ느세유 곳곳에 보초를 섭니다. 다행히도 파리는 아닌지라 경계가 삼엄하진 않으나. 요소요소마다 즐비한 그들이 눈엣가시인 것은 마찬가지지 않소?
선량한 시민들은 그들을 보고는 진심 어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새 앞날을 죽을 듯 고대한다오. 입술을 꽉 깨물고 현실을 부정하겠지. 현실감을 가장 먼저 되찾은 것은 미카엘이었소. 내게 -이 파리를 버려두고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하고 소리 지르던 성인은 어디 가구 제게 알제리로 도피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함락당한 정부에서 반대운동을 하는 꼴은 대영의 검은 땅에서 수레국화 심기나 마찬가지라고.
알제에 가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하오.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구. 아프리카에서는 알제가 가장 이쁘다던데 말이오. 아름다운 도시의 사람들은 다 아름다울까도 의심 가는 부분이오. 이미 검정색으로 물들어서 우리에게 총부리를 건네면 내가 어쩔 수 있냐는 말입니다.
*어쩔 수 없으리이다. 리ㅸ미아는 이미 물들었다는데./ 두 손 꼬옥-, 잠고 하나님을 향하여 ^제발-제발. 하늘이시어! 천지신명이시어!/ 하는 수밖에 더 있으리오? 암튼 이번 주까지는 마ᄙ느세유에 남아 졸린 눈을 이끌고 불쌍한 족속들이 무음으로 탈 당하는 꼴을 구경해야 합니다.
그 생각이 지나서기도 전에 마을 곳곳 명령이 들려오오.
무슨 일이지? 미카엘. 저것은 무슨 일인지 알어?
_뤼카. 아아-. 죄송하지만 저는 좀 숨죽이고 있어도 됩니까?/
그의 말과 함께 나치당 앞잡이들의 성난 고함소리가 골목을 헤집으며 나타납니다. 그러자 미겔의 공포 어린 동공이, 멈춘 숨소리의 정적과 함께 주위를 사로잡았지.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은 들으십시오! 지금 당장 중앙 광장으로 모이셔야 합니다!
허나 미카엘의 코는 매부리보다는 들창코에 가깝지 않습니까? 당신도 알지요. 그래서 나는 그가 유대인이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소. 이름도 미겔. 할례 여부는…. 뭐 그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고. 특출 나게도 좋은 머리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 총명함에, 유대인 같다며 칭찬할 뿐이었지.
맹한 눈으로 나온 유대인들은 즉시 어디론가에 끌려갔습니다. 아마 채석장이었으리오. 그리고 또 다음 날부터는 한 여관 한 여관씩 앞잡이들이 곳곳 여관을 돌아다녔소. 매부리코를 들킨 유대인들의 가냘픈 신음소리가 마르세유의 바닷비린내를 긴장감으로 덮어씌우지.
근데 마카엘. 왜 내게 유대인이라고 알려준 것이오?
프랑스에 단 하나뿐인 지식인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겠소.
내가 만일 저자들에게 일러바친다면?
잘 들으시오 뤼카. 나는 이미 독일에서 프랑스로 국경 몇 개를 넘어오며 총탄에 휩싸일 각오로 임하였소. 근데도 내가 그깟 고문과 총살을 두려워할까? =ㆆ아아-./ ^오히려 연합국 만세! 소리를 지르며 장렬이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지요!/
정말 멋지지 않나? 내가 이래 그에게 빠져버렸다오. 영광을 위하여라면 내가 유대인이오! 하며 숭고히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영광보다는 실적과 성과로 세상에 임하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지식인이었으니까 말이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건만, *제 쓸모없는 정신병이 가만히 두지를 않으니-. 아~아-. 사실 이것도 변명이겠지요./
아니, 솔직히 고백하겠으리다. ~_나는 죽기 싫소. 내가 프랑스의 무구한 영광을 위해 귀중한 목숨을 바칠 필요가 무엇 있겠습니까? 그래서 군대를 떠났는데 말입니다. 생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욕구인데. 저버린다면 그것이 저 검은 나치놈들이나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희생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이, 프랑스를 위해 더 옳은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제게 불어왔습니다./
미카엘…. 자넨, 참 멋진 사람이오.
아닙니다. 과찬이지요.
아니야. 나는 자네에 비하면 시장의 벼룩만하지.
그러자 그는 미소로 응답하였다오. 누군가가 했으면 건방지다 욕했을 터인데, 그가 하니까 오히려 겸손으로 보이지요. 몇 마디의 말로 강경 전체주의파들을 모두 민주주의파로 돌려놓을 수 있는 그 성인이 어찌 저래 겸손하단 말입니까?
별일 없었던 유대인 색출이 끝나고, 미겔은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갔습니다. 저는 그럴 때면 여관에 하나 있는 원반 음반 재생기 앞에 푹 늘어져 앉아 커피와 함께 신문을 즐겼지요. 이런 호화로운 삶을 살아본 것이 얼마만이겠습니까? 이래도 놀아봐야 놀 줄 안다고 놈팽이 시절 시간 때우는 기술은 어디 가지를 않았구먼 그리오.
언제쯤 이 프랑스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라고 생각할 시점은 아직 아프리카에 도착하지도 않아 이야기가 시작될 시점이었지만. 괜한 걱정이란 것을 알았을 때는 지금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는 알지도 못했다는 말이지요./
또, *언젠가 내 내 아내와 딸들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생각할 시점은 아직 내가 신문을 손에 꼭 쥐고 있을 시점이었지만. 커피와 신문을 내려놓고 급작스러운 서정감에 빠져 축축한 눈가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는 그리 얼마 되지 않을 시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픈 무언가가 다시 제 가슴을 후벼 판다는 것이지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리 잘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차원에서 태어나기라도 하였단 말이오? 어이구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무덤을 걷어차고 올라와 기겁할 노릇이지.
=불쌍한 내 딸들아. 불쌍한 내 아내-샬럿./ ~이 못난 놈이랑 연애한다구 대영부터 먼 이국 땅까지 건너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을 텐데./ 아직도 그녀의 모습이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1차 세계대전 전에 긴장 고조시기. 특급 엘리트로 부대에 들어와 휘황찬란한 청춘기를 보내고 있던 뤼카. 영국에 교육받으러 출장에 갔다가 눈이 맞아버린 그녀와 나. 참 아름답고 달짜구리한 사랑 이야기인데-. ~왜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면 췌장부터 오장육부가 떫은지. =이제는 참으로 궁금할 노릇입디다./
그렇구나. 샬럿. 제가 그녀를 목격한 마지막 모습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딸들에게 가라며 소리치는 그녀였으니까. 당연히 생각날 수밖에 없는 거요. 그 얘기만 나오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술을 꽉 깨물고 ~지난 일은 잊었소. 접힌 입술 사이로 잔잔히 새어 나오는 이빨의 충돌음은 나의 평안한 심상을 상징한답니다. 떨리는 동공과 새어 나오는 눈물은 그저 지금의 프랑스에 한탄하는 나의 작은 투쟁입니다./
*하아-. 내가 들고 있었던 그 총이 그리도 무서워서. 내가 들고 있었던 그 총이 그리도 원망스러워서. 내가 애인처럼 다뤘던 그 총이. 내 전우이자 친구가 되어줬던 그 총이/
짐을 싸들고 올라선 선채엔, 나와 비슷한 사람부터 전혀 다른 사람까지 모두 이주에 긴장합니다. 도착지는 리비아. 도착하더라도 격전지를 뚫고 국경을 넘어 알제에 도착하기를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하기만 하다오. 그런 사이에서 창 밖을 묵묵히 쳐다보며 고뇌에 빠져있는 미겔은 한 송이의 아이리스이외다. 아니, 국경을 제 집 앞마당인 듯 드나들었으니 이제는 긴장도 되지 않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소. 허나 그가 그 사이에 겪었을 고난과 상실의 인생을 나는 가늠할 수 없었기에 물어보지는 않았읍니다.
뿌-우.
성난 뱃고동소리는 안 그래도 주린 배를 진동시켰소.
뤼카. 요깃거리라도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마침 미겔이 그러니 나는 티 낼 필요도 없이 배를 채울 수 있었지요. 그가 유창하고도 억센 발음으로 무언가를 주문하자, 리본 모양의 빵 하나가 소금에 절여진 채 등장하는 것이 아니리오? 내가 그게 물었지.
이건 무엇이오?
본토에서는 프레첼이라고 부르지요. 좀 짜긴 하지만 입맛에 맞을 겁니다.
선채에 타있던 몇몇 프랑스인들은 나를 째려보기도 하였지. 그래 어떤 프랑스인 하나와 아리아인 하나로 보이는 남자가 타더니 독일 빵을 먹으니 이상하기도 했겠지 않소?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오. 큰 뜻을 이루려는데 그깟 영광과 체면이 뭐가 중요하냐고. 그래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견뎠습니다. *뭐, 하핫-. 굶주려 그런 것이라고 해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