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자의 외침. 그리고 끝끝내 인간이 된 자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는 소박하고,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알리스! 오랜만이야!"
알리스. 과거에는 4902였던 로봇의 이름이죠. 이제 로봇들은 자신의 이름은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그걸 '자유'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그걸 '인간의 흉내'라고 부르며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일련번호로 살아가니까 무슨 상광이 있겠습니까?
"X-23. 신원 확인 완료."
제 이름은 러프-X-23. 이자벨의 부회장입니다. 나이는 50을 넘어 아이가 하나 있고, 이디는 아이가 둘 있는 아빠가 되었지요. 시간은 야속하게도 참 빠르게 흘러갔고, 우리 모두는 나름의 방식대로 늙어 갔어요.
그 일이 있은 후, 이디는 전재산의 9할을 사회에 환원한 채 모두의 권리에 집중하는 운동가이자 이자벨의 당당한 회장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이디의 옛 모습에 관해 알려줄 때에는 이제 믿지도 않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러면 저는 놀람과 행복에 잠겨 은은한 미소를 짓죠. 아-. 이디, 건강해야 하는데.
이디는 현재 원인 모를 질병으로 인해 앓고 있는 상태예요. 의사도 암이나 성인병을 의심해 보았지만, 검진 결과 이상이 없어 제가 회장직을 대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에 한 번, 출근할 때에는 회사 내부의 병원에 들러 그의 상태를 확인하죠.
"이디, 오늘은 좀 괜찮아요?"
"아니."
저는 바닥에 가방을 팽개쳐 두고, 옆에 놓여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 미련과 아픔이 가득한 표정. 또, 마지막을 직감한 사람의 눈.
"러프."
"네?"
"난,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제 손이 파르르 떨립니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그의 가족사진 속 이디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오한기 가득하여 수척해진 그와는 완전 딴판인 미남의 모습이었죠. 저는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는 그를 축축하 눈길로 바라보았어요. 슬픔보다 먼저, 이상하리만큼의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러프.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가 클 때까지는 네가 회장을 해 줘. 원한다면, 평생 해도 좋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 모두 헛웃음을 짓습니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우스워어, 그리고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걸 애써 부정하고 싶어서. 만약 이게 우리가 함께 지을 수 있는 마지막 웃음이란 걸 알았다면 박장대소하며 바닥을 이리저리 굴렀을 텐데 말이죠.
"이디. 전 당신을 존경해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그리고 전 당신을 사랑해요."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주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잘 사셨네요."
무릎을 짚고 일어나 정장을 정리한 저는 페르노트씨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병원에 와봐야 할 것 같다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회사에서 벗어나 가족으로 회개한 인물인데, 회사 동료가 임종일에 같이 있으면 무례하지 않겠어요? 가방을 잡아들고 재빠르게 방에서 나온 이후에는, 벽에 대고 주저앉아서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처럼.
이성도, 체면도, 직책도 모두 잊을 채.
미친 듯이.
그때부터였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성인(聖人)'이라고 부르게 된 건.